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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제생맥주 Nov 19. 2021

최소한 지킬 것을 반드시 쓸 것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대표 도장 찍혀있는 걸 어떻게 위조 입증을 하시려고요. 평소에 도장도 직원한테 맡겨 놓으셨다면서요.'


수사관은 잠깐 조사를 쉬었다가 하자고 하였다. 오 씨는 밖에 나와 담배를 물었다. 그런 오 씨를 보고 수사관이 다가왔다.


'이거... 위조 입증할 만한 증거가 이렇게 없어요? 뭐 심증은 있는데, 확실한 게 없어서 도와드릴래도..'


오 씨는 아무리 증거를 쥐어짜 보아도, 모든 서류 업무를 베트남 법인에 맡겨두어 남아있는 게 없었다.


찝찝한 마음으로 조사는 종료되었고, 수사관은 조금 더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그날 밤, 박 씨가 오 씨에게 말했다. 


'그냥 젊을 때 사업하다가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해. 강남 매장 일단 접고, 해외는 다시 도전하자.'


이미 베트남은 오 씨의 손을 떠나 있어서 정리할 것도 없었다. 박 씨 말대로 강남 매장만 해결하면 되는 것이었지만, 가슴 한편이 너무 시렸다. 너무 갑작스러운 행복이어서 마음에 자리 잡을 시간도 없었는지,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보려 하니 이미 흐릿해서 모두 어젯밤 꿈같았다.


다음 날 오 씨는 마음을 다잡고, 매장 직원들에게 사업 정리를 설명하기 위해 강남으로 향했다. 직원들에게 상황 설명을 하고 그는 자기 방으로 향했다. 책상 위에는 누런 색 봉투가 올려져 있었다. 



'... 서울중앙지방법원?'



법원에서 올 게 뭐가 있지? 의아한 마음으로 오 씨는 봉투를 뜯었다. 


'원고 A 투자 법인, 피고 오 00, 피고는 원고에게 30,000,000,000원을 지급하라'


잠깐, 일십백천만, 십만, 백만... 십억 백억.. 삼백억? 의아한 숫자와 의아한 이유였다.  A 투자 법인은 오 씨가 양도한 사업에 대해서 순이익 기준으로 3,000,000,000원의 이익을 내겠다고 약정하였으나, 그렇지 못하였으니 약속대로 10배를 갚으라고 청구했다. 


계약서에는 오 씨가 운영하던 사업체인 '강남 영업소, 베트남 뷰티 가맹 사업'을 각각 한국법인과 베트남에 법인에 인수해서 운영하는 것이 규정되어있었다. 


A 투자법인 측은 한국에 새로 설립한 법인에서 운영했던 강남 영업소에서 적자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증거로 강남 영업소에서 몇 억의 적자가 발생한 재무제표를 제출했다. 


강남 영업소가 제대로 된 사업체가 아님에도 이를 넘겨서 자신들에게 손해를 발생시켰고, 그렇기 때문에 오 씨가 약정대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유였다.


'허.. 참, 아니 한국에 돈을 안 보내서 씨를 말리더니, 이게 뭔 개소리야'


베트남 법인을 억지로 잊어보려 노력하던 그때, 그들은 오 씨를 상대로 새로운 전쟁을 시작했다. 오 씨가 금전적으로 넉넉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텐데, 궁극적인 목표가 오 씨였던 건지 알 수 없었다.  


오 씨는 소장을 박 씨에게 보여줬다.


'너, 수익 보전 약정을 했어? 아니 왜?'


그때는 30억 이익이 발생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베트남 가맹점 사업이 너무나도 성공적이었고, 오 씨는 베트남과 한국의 사업이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베트남법인에서 버는 돈은 당연히 제 때 한국법인에 송금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 쪽에서 송금을 안 하는 데 어떻게 수익이 나냐고.. '


'송금 약정은 했어?'


아니, 그건 당연히.. 사실 당연히란 없지만 그땐 당연히 베트남에서 번 돈을 한국에 넘길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들은 최소한 달성하고 싶은 것을 명시했고, 오 씨는 최소한 지키고 싶은 것을 명시하지 않았다.


'아니 한국 법인에서 100프로 출자(자본을 투입)해서 만든 법인이 베트남 법인인데, 그럼 당연히 모母회사인 한국 법인에 송금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이게 아닌가요, 변호사님?'


이게 오 씨가 나에게 가장 궁금했던 질문이었다.


'사장님은 돈 벌면 무조건 부모님께 가져다 드리시나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주식회사의 운영 방식 중에 착각하는 것은, 모母회사가 자子회사의 현금 흐름을 직접적으로 쥐고 흔들 수 있다고 오해하는 것이다. 물론 주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으면 원하는 방향의 의결을 할 수는 있겠지만, 엄격히 부모와 자식은 다른 인격체이다. 


다시 말해 내가 삼성 주식을 갖고 있다고 삼성이 버는 족족 나에게 돈을 주는 것은 아니듯이, 그들은 정관에 정해진 바에 따라 주주에게는 배당을 할 뿐이다. 그게 주주가 돈을 받는 어찌 보면 유일한 방법이다. 


내가 이 거래를 통해서 반드시 받고 싶은 것이 베트남 법인에서 발생하는 돈이라면, 


'베트남 법인에서 발생하는 매출을 반드시 한국 법인으로 보낼 것' 이 노골적인 문구만 썼더라도 어떻게든 해결되었을 일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겸양의 민족이라 노골적인 요구를 하기 어려워하고 특히나 친할수록 노골적인 요구를 계약서에 넣기를 쑥스러워한다. 친구, 가족 간의 무수한 분쟁에서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굳이 또 계약서를 쓰자고 어떻게 그래요. 말 안 해도 당연한 거고, 믿고 하는 거죠.'


그렇지만, 상대방은 안 주고 싶은 게 당연하다.



첫 번째 재판, 제1심이 시작되었다.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하지만 각색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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