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임 씨는 카페에서 만났다.
처음 임 씨는 자신의 회사를 미팅 장소로 제안했지만, 본래 남의 소굴에는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카페에 도착하고 보니 임 씨가 앉아있었고, 특유의 밝은 미소로 인사를 했다. 나는 혹시나 해서 핸드폰을 녹음 기능을 켜 둔 채로 자리에 앉았다.
'신수가 더 좋아지셨네요. 변론을 너무 잘하셔서.. 저희 쪽 회사일도 맡아주시면 좋겠어요.'
'아.. 네, 저야 감사하죠.'
정 씨는 나의 매출을 올려주겠다는 의례적인 인사를 해왔다. 자신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는 태도에 적개심이 풀어졌는지, 임 씨는 바로 본론을 이야기했다.
'그.. 다름이 아니라, 오 씨가 변호사 비용 청구했더라고요. 3억.. 정도였나?'
'네, 맞습니다.'
아무래도 A 투자법인 측은 한 푼도 주기 싫은 것 같았다. 오늘 미팅은 그걸 취하시키기 위함일 것이다.
'굳이.. 뭐, 다 끝난 마당에 청구를.. 서로 어차피 안 볼 사이가 돼버렸잖아요'
'네.. 그렇죠'
'자꾸 이렇게 시비를 거는 게 오 씨에게나 변호사님에게나 좋지 않고..'
협박 고소 내용도 피해 갈 수 있는 노련한 뉘앙스였다. 나는 항상 자신의 신변을 우려하던 오 씨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 씨에게 좋게 타일러 소를 취하시켜야 할까 싶었다. 그런데, 이걸 계기로 사업을 재기를 꿈꿔보게 한 건 나였다.
지난 1년이 넘는 기간 땀을 뻘뻘 흘리며 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오 씨의 얼굴, 결의에 찬 얼굴로 인터뷰를 하던 얼굴, 의료법 위반 고소 사건이 좌절되어 모든 희망의 끊을 놓으려 했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숨도 못 쉬게 하려는 건가.
어릴 때 우리 동네엔 개 사육장이 있었다. 사육장 주인은 개를 식육장에 팔았다. 우리 집은 개 두 마리를 키웠는데, 혹시나 우리 집 개가 잡혀가는 건 아닐까 그곳의 존재가 마음이 쓰였다. 어느 날 우리 집 개 중 한 마리가 사라졌고, 나는 놀라서 강아지를 찾으러 그곳을 향해갔다. 그리고 처음으로 철조망 그물 앞에 얼굴을 바짝 대고 안을 살펴봤다.
개들은 사람이 나타나자 거세게 짖어댔고, 대부분의 개들은 이미 몸의 여러 곳에 상처가 있었고 다리가 부러져 한쪽 다리를 들고 있는 개들도 많았다. 개들이 크게 짖자, 주인이 나타났고 나는 도망갔다. 다음 날 다시 와보니 주인은 짖는 개들을 응징하기 위함이었는지 개들의 줄은 어제보다 더 짧아져 있었고, 밥그릇도 치워져 있었다.
어차피 잡은 개인데, 굳이 숨도 못 쉬게 할 필요가 있을까.
'좋지 않을게 뭐가 있을까요, 저희 뭐 죽기라도 하나요? ㅎㅎ 실장님, 그래도 오 씨 덕분에 베트남에서 그만큼의 성공 거두신 거 아니에요?'
화가 났던 나는 의식의 제동 없이 하고 싶던 말을 쏟아냈다.
'실장님도 인간 대 인간으로서 오 씨 입장 한 번 헤아려 보세요. 그쪽 회사는 옷이고 가죽이고 다 벗겨가야 마음이 놓인다고 합니까? 그리고 안 좋은 일이 뭔지 모르겠지만 알아서 하세요.'
분이 풀리지 않았지만, 더 있다간 더 안 좋은 말이 나갈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 있으면 어쩌려고 그러셨어요'
'그래서 죽을 운명이면 그건 또 어쩔 수 없는 거죠'
'그것도 그렇죠, 저야 그렇지만 괜히 변호사님까지.. '
'전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게 제 일이죠. 그럼 취하할까요?'
'.. 아니요, 그냥 하죠. 정말 그것 밖에는 없는데요.'
모든 것을 잊고 지낸 3년 뒤, 갑자기 잊었던 이름에게서 전화가 왔다.
'?!, 이게 얼마만입니까, 사장님!'
'변호사님, 잘 지내셨어요?'
'그럼요, 살아있죠'
'하하하하 네, 저도요. 저도 살아있습니다.'
'안 좋은 일 때문에 전화하신 건 아니죠?'
'아니요, 이제 계약서 검토받으려고 연락드렸습니다'
오 씨는 재기에 성공했고, 지금은 중국에서 새롭게 코스메틱 사업을 하고 있다.
난 가끔 거액의 소장을 받으면, 파산 생각 부터라는 사람들에게 꼭 오 씨의 이야기를 하곤 한다.
절 대 포 기 하 지 말 것.
이 사건은 사실 관계를 바탕으로 하지만 약간의 각색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