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랄라 Sep 01. 2020

코로나19를 대하는 토끼의 자세

요즘 토끼는 집에서 어떤 생활을 할까?



1월 조금씩 우리 삶을 파고든 코로나19는 8월이 된 지금도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밖에 나가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거리를 두는 것이 서로를 위한 배려가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의 마음에 조금씩 어두컴컴하고 짙은 블루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걸 코로나 블루라고 부른다고 한다. 가만히 있어도 속이 답답하고 멍하니 하늘 보는 일도 잦아졌다.


다시 재택근무를 하게 됐다. 서랍에 넣어뒀던 KF94 마스크도 꺼냈다. 작은 책상 앞에 앉아 종일 일을 하고 모바일 메신저로 동료와 일 얘기를 주고받는다.


나의 반려동물, 햇살이의 삶도 코로나19 시대에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첫째는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것이다. 좋은 점이라고 해야 할까? 햇살이는 싫을 수도 있겠다. 재택을 하지 않을 때는 아무리 길어도 햇살이와 있는 시간이 하루에 12시간을 넘기기 어려웠다. 이제는 24시간 중 23시간을 함께 보낸다. 일을 하다가 잠시 의자에 앉아 스트레칭을 할 때도 햇살이에게 다가가 말을 건넨다. "너 또 자니? 엄마는 지금 돈 버느라 힘든데." 그러면 햇살이는 사료나 달라며 보채기 시작한다.


원래 토끼는 낮에 자는 동물인데, 내가 함께 있게 되면서 낮에는 깨서 활동을 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덕분에 이제 햇살이는 밤에 잘잔다. 야행성 동물인 토끼가 낮에 활동하고 밤에 자는 것에 적응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둘째는 햇살이의 주변이 한없이 깨끗해졌다. 원래도 그렇게 더럽지 않았다고 자신하지만, 코로나19 덕에 더 깔끔을 떠는 성격이 되어버렸다. 떨어져 있는 풀도 보지 못하고 줍고 있는 나를 종종 발견한다. 그러면 햇살이는 옆에 다가와 철퍼덕 누워버린다. 깔끔한 환경이 꽤나 마음에 드는 눈치다.




하늘길이 막히면서, 햇살이 물건을 사놓는 것도 일상이 되었다. 토끼 사료는 수입산이 대부분이다. 코로나19 확산 초창기에는 사료가 몇 개월씩이나 토끼 용품 사이트에 입고되지 않은 적이 있었다. 문의를 남겨도 돌아오는 답변은 "코로나19로 기약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햇살이의 사료도 동이 다 난 적이 있었다. 그때 어쩔 수 없이 풀만 잠시 먹인 적이 있었는데, 햇살이의 삶의 만족도가 크게 떨어진 것을 느꼈다. 그 뒤로는 비축할 수 있는 것들은 미리미리 사두고 있다. 특히 물 건너온 물품들에 대해서는 더 예민하게 반응하게 됐다.


햇살이 물품 칸도 따로 마련했는데 싱크대 큰 수납장을 혼자 차지하고 있다. 이 곳에는 사료와 영양제 그리고 예비용 화장실들이 꽉꽉 들어가 있다.



이렇게 햇살이의 삶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밖에 데려가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는 소망도 요즘은 소박하게 바뀌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햇살이를 안고 베란다로 나간다. 비가 온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말로 설명해주는데 잘 알아듣는지는 모르겠다. 해가 쨍쨍한 날이면 따스한 햇빛이 얼마나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것인지도 알려준다.


아마도 햇살이는 꽤나 오랜 시간을 이렇게 베란다 산책만 해야겠지. 삶이 갑자기 한순간에 변해버려서 나도 햇살이도 아직 적응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토끼 발톱을 왜 깎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