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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물꽃 Mar 01. 2024

일상_03

일단은 지금 할 수 있는 것

아직 시험 결과가 나오진 않았지만 일단은 면접을 준비하고 있다. 면접은 정말 어떻게 준비해야 될지를 모르겠다. 예상 질문을 쭉 써보고 거기에 두괄식의 단답을 쓰는 중이다. 습관적으로 웅얼웅얼거리고 작게 말하는 경향이 있어서 이 참에 이것도 고치려고 연습한다. 말하기 책을 빌려 배에 힘을 주고 최대한 단단한 목소리를 만들어 또박또박 발음한다. 


사실 준비해야 할 것들만 생각하면 끝이 없다. 면접 준비만 해도 답변은 저렇게 추리고 연습한다 해도 일단은 밀린 드라마들도 챙겨봐야 한다. 시험을 보고 있는 제작사의 작품도 봐야 하지만 인기 있었던 드라마, 또 최근에 나온 작품들을 찾아보고 전체적인 흐름도 파악해야 한다. 내가 보고 싶어서 볼 때야 아무 생각 없이 이것저것 쭉 골라보지만 취향이 아닌 걸 16시간이나 투자해 시청한다는 건 정말 공부의 의미로 느껴진다.


소설 강의도 수강 중인 만큼 계속해서 아이디어도 구상해야 한다. 일단은 과제 피드백을 받았으니 퇴고를 해야 한다. 이미 제출한 글은 정말 초안에 불과하니 완성됐다고 볼 수 없다. 애초에 후다닥 써낸 글이라 뜯어볼수록 수정해야 할 부분들이 보인다. 특히 내가 더 수정하고 싶은 방향은 단서를 차곡차곡 쌓아서 확실하게 그 장치를 이용하는 글이다 보니 더 꼼꼼히 채워야 한다.


새로운 과제도 다가오고 있다. 구체적인 배경을 설정하고 거기에 맞춰 소설을 써내는 것이 새로운 과제이다. 마감까지 꽤 여유로워서 그런지 아직 압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모든 창작자에게 최고의 영감은 마감이라고 하지만 성격상 일찌감치 초안을 쓰고서 계속 뜯어고치는 편이라 그런지 얼른 아이디어가 나와줬으면 한다. 


필기시험을 끝내고 바로 소설 과제를 제출하면서 한동안 정말 정신없는 일상을 보냈다. 첫 번째 과제를 제출하고서 겨우 시간이 생겼는데 할 건 많은데 마음이 잘 잡히지 않았다. 해야 할 것들을 모두 똑같은 정도로 완벽하게 잘 해내고 싶다 보니 어디를 어디서부터 건드려야 할지 잘 몰랐던 것 같다. 동시에 그만큼 얼른 해내고 싶지만 그동안 바쁘게 달렸던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다 소진되어 버려서 잠시 회복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뭔가를 해야 할 때 마음 놓고 쉰다는 게 참 어렵다. 물론 지금 컨디션을 챙겨야만 더 멀리 나갈 수 있다는 걸 아는데도 괜히 지금 이 시간에 손을 놓고 있으면 미래의 내가 이 시간들을 후회하게 될까봐 무섭다. 하루하루를 모두 빠짐없이 열심히 살아야만 과거를 돌아보지 않을 거 같아서 지친 나를 억지로 일으켜 세워서 달리라고 채찍질하는 것 같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건 역시나 이 일들을 왜 하는지 인 것 같다. 우선 드라마 pd 시험을 준비하는 것. 예전처럼 이 일이 아니면 안 된다는 맹목적인 생각은 아니다. 분명 드라마 pd가 꼭 되어보고 싶지만 그 중심에는 내가 연출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선배들을 보며 배워나갈 수 있고 가장 안정된 방식으로 시청자들에게 내 작품을 선보일 수 있다. 혼자만 즐기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호평받는 드라마보다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 가장 친근하고 익숙한 방식으로 작업해보고 싶다.


면접은 그동안 내가 살아온 인생을 들려줄 기회이다. 브런치에 써온 글들만 보더라도 나는 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다른 주제도 없이 나라는 사람으로 계속 글을 이어가는 중이니 면접에 대한 답변은 모두 내 안에 있다. 5년 전, 아무 준비도 없이 드라마 pd가 되고 싶다며 간절한 마음만 가지고 있던 때와는 다르다. 드라마 pd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경력도, 멘탈도 모두 준비가 됐다. 더 잘 보이려고 꾸며내지 않아도, 떨어질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나를 보여줘도 충분히 괜찮을 것이다.


소설을 쓰는 건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일로 바꿔보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다. 언론고시를 위해 매일 같이 작문을 쓰던 때도, 단편 영화를 만들기 위해 밤마다 울며 시나리오를 구상했을 때도 목표는 같았다.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더 나은 글을 만들고 싶었다. 한 뼘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답답함과 조급함의 벽에 부딪혔다. 전혀 나아지지 않는 것 같은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결국은 그 글을 완성시켰을 때, 돌아오면 늘 고통스러웠던 만큼 성장해 있었다. 


그때처럼 괴로운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진 않다. 오히려 그렇게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과정인 걸 알고 있기에 더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가짐만 기억하려고 한다. 읽기만 해도 자연히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아주 유려한 문체를 가진 작품들을 보면 언제나 나도 어서 그 수준으로 가고 싶어서 조급해지고 나를 다그치게 된다. 하지만 결국 다시 지금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건 그 정도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지금의 이 시간을 밟아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결국 그곳으로 데려가 줄 사람은 지금의 나다. 현재에서 계속 글을 써내야만 한다.


하고 싶은 일을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은 내 정체성과도 같아서 이렇게 조급해하고 닦달하는 나도 익숙하다. 한동안은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일만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오랜만에 욕심을 부리려다 보니 정리가 잘 안 됐었나 보다. 브런치를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내가 이랬구나 또 한 번 알게 된다. 아직 미래는 알 수 없고 불안하기도 하지만 다시 나는 현재로 돌아와야겠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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