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받아들이는 6단계의 법칙
필기시험에 떨어졌다. 결과가 발표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의 감정을 느끼곤 한다. 여러 감정들을 알아차리는 동안 어쩌면 내가 상실을 받아들이는 중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상실하고 그 슬픔을 받아들이는 데는 5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
필기시험 포스팅을 올리기도 전에 결과가 나와버려서 그때의 감정을 공유하진 못했지만 시험을 치르고 나왔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후련함이었다. 시험 전날 까지도 불안해서 잠도 못 들었지만 막상 당일에는 떨림을 설렘으로 바꾸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갑자기 바뀐 상식 시험 유형이나 했던 이야기를 또 풀어냈던 작문 시험에서도 변명할 생각이 없었다. 그 모든 긴장을 이겨내고 내가 당당히 맞섰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기까지 했다. 어떤 결과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결과가 나왔을 때 생각보단 덤덤했다. 시험 결과가 아쉽긴 했어도 그 과정에서 내가 배운 것들이 있었다. 너무 좋아하는 게 있으면 잘하고 싶은 마음에 긴장이 온몸을 덮쳐 무서워했던 날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엔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서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에 집중했다. 필기시험이 끝나고 짧게나마 면접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의심하는 순간이 생겼지만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답변을 채워갔다. 결과 하나로 그 모든 과정이 사라지진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필기시험에 떨어졌다는 것보다도 면접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아쉬웠던 거 같다. 면접의 기회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처음엔 결과를 부정하게 됐다. 내가 잘못 봤을지 모른다며 홈페이지에 들어가 두어 번 다시 결과를 조회했다. 거기엔 어떤 오류도 없었다. 몇 번을 확인해도 결과는 같았다. 이번 채용에선 합격하지 못했다. 면접은 없다.
의미를 찾았던 것이 무색할 만큼 화도 났다.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시험에서도 후회 없이 글을 쓰고 나왔는데? 이제는 정말 노력하는 만큼 눈에 보이는 결과로 나와줘야 하는 거 아닌가? 아무 보상 없이 계속해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데에서 분노가 느껴졌다.
과거와 협상을 하기도 했다. 상식시험을 더 열심히 해서 한 문제라도 더 맞혔다면 합격할 수 있었을까. 작문을 쓸 때 에세이 형식으로 내 이야기를 썼다면, 다른 이야기를 썼다면 달라졌을까. 혹시나 과거에 내 작문 글을 봤던 사람이 이번에도 채점한 게 아니었을까. 그 이야기 말고 더 좋은 이야기를 그 순간 찾아낼 수 있었을까. 등등
그다음은 우울이 찾아왔다. 계속해서 이 상태에 머물 거 같았다. 열심히 하지만 아무것도 손에 쥐어지지 않는 상태.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이야기는 하지만 계속 뭔가를 준비하기만 하는 상태. 내가 정말로 글을 쓰는 능력이 있는 건지. 이걸 계속 붙잡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회의감이 들었다.
몇 번의 경험을 토대로 우울을 다스리는 법을 터득했다. 집에만 있으면 끝도 없이 이 생각에 머무른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일부러 집밖으로 나섰다. 당첨됐던 공연을 보러 다녀오기도 하고 마침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가 개봉해 보고 오기도 했다. 면접을 위한 준비였긴 하지만 이왕 시작한 김에 노력해보자며 말하기 연습도 계속했다.
한 가지 정말 다행인 점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었다는 점이다. 면접과 겹친다면 취소하려고 생각했던 소설 강의는 지금 이 순간 나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다. 어찌 됐건 이 수업을 듣는 동안 나는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 늘 그래왔고 아마도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수용의 단계로 넘어갈 희망이 보이는 건 드라마 pd가 되는 것 만이 길은 아니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은 더 좋은 글, 나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채용에선 떨어졌더라도 하고 싶은 길로 걸어가는 건 다른 방법도 존재한다.
찾아보니 상실 애도 단계는 5단계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한 단계가 더 있다고 한다. 수용의 단계까지 넘어선다면 의미 찾기라는 단계에 도달한다. 아마도 내가 시험을 치르고 나서 처음 느꼈던 그 감정처럼 시험의 결과보단 그 과정에서 내가 체득했던 성장을 기억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불안함에 늘 지기만 했던 내가 이제는 그 김장감을 다스리고 더 나아가고 싶은 쪽으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그 너머의 의미를 본다면 아마도 이 과정까지도 언젠가는 이야기에 쓰게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여태껏 나름대로 여러 번의 상실을 거쳐왔고 그때마다 속상하고 아쉽기도 했지만 내가 성장할 수 있던 건 그 슬픔을 아주 꼭꼭 씹어가며 완전히 소화시킨 덕분이다.
지금 이 순간에 사실은 남들에게 증명해내고 싶었고, 나 스스로도 안정적인 환경에 속해 더 편해지기를 바랬던 마음 때문에 수용의 단계로 가는 길목에서 흔들리고 있다. 너무 갖고 싶었던 걸 손에 쥘 수 없다는 목소리가 저주를 쏟아낸다. 불안한 마음이 느껴지는 건 아마도 그것 때문일 것이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하게 되는 것. 나를 응원해줘야 할 내가 누구보다도 모진 말로 몰아세우는 것.
우선은 그 미운 감정까지도 충분히 꼭꼭 씹어봐야겠다. 상처 주는 말을 하는 나를 잘 들여다보면 그 안에 지친 내가 있다. 그 마음을 충분히 보듬어줘야겠다. 그런 후에 다시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겠다. 내가 원하는 건 우울에 잠겨있는 게 아니다. 결국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계속해서 해내는 것. 그것뿐이다. 일단은 좋은 글을, 마음에 드는 글을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