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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물꽃 Mar 18. 2024

소설_04

내 말만이 정답이 아니다

우선.. 금요일 연재를 날려먹은 점 사과드립니다. 소설 과제 마감을 넘기고 수업날 겨우 제출을 했습니다. 완성하고서 수업을 기다리는 동안 뭔가 해야 할 일이 남았던 거 같은데 하고서 까먹어버렸습니다. 수업을 마치고서 겨우 생각이 났지만 사실 글을 쓸 에너지도 없어서 자체 휴재를 선택했습니다. 주말 내내 조금 찔리다가도 우연히 생긴 휴식에 조금 기쁘기도 했습니다. 스리슬쩍 넘어가려다 연재 올릴 때마다 읽어주신 분들께 말씀은 드리고 싶어서 구구절절 설명하는 거 양해 부탁드립니다! 


다행히 과제는 무사히 제출했다. 썼다가 지웠다가 마감 당일에도 한 편을 거의 완성했다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내 마음속에 묻어버렸다. 겨우 생각난 아이디어로 수업날까지 질척이며 매달리다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식으로 소설을 완성했다. 가장 신경 쓴 포인트는 캐릭터들의 직업군이었지만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이 가장 만족스러웠다. 서로 해가 되는 관계, 버려야 하는데 버리지 못하는 잘못 얽힌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신경 쓴 포인트에 대해서는 좋은 피드백을 받았다. 예상했던 부분이라 감사하면서 뿌듯했다. 하지만 내가 숨기려고 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역시나 지적이 들어왔다. 사실 과제를 제출하고 다시 읽으면서 걱정됐던 부분이라 들킬 수밖에 없구나 싶었다. 감추려고 해도 결국 독자는 모두 알아낸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면서도 깨닫는 사실이었다.


나는 대사를 찰지게 쓰거나 상황을 눈에 보이는 것처럼 묘사해 내는 게 부족하다. 그 사실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이번에도 피하려고 했다. 글을 쓸 때야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핑계를 댔지만 결국은 나쁜 피드백을 듣기 싫어서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애초에 소설 강의를 들어보려 했던 건 내가 부족했던 바로 이 부분을 제대로 고쳐보려고 했던 거였는데 그걸 놓치고 있었다.


방법을 몰라서 드러내기가 더 무서웠던 거 같다. 단편 시나리오를 쓸 때도 지적을 받았지만 결국 내가 직접 읽어보며 말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나는 분명 내가 말할 때처럼 대사를 고쳤지만 다른 사람이 읽을 때는 연극 대사처럼 느껴진다는 반응을 듣곤 했다. 그 사이 몇 번의 글을 쓰면서도 사실 달라진 게 없었다. 아직 부족한 걸 알고 있다보니 숨기고 싶었다.


합평의 장점은 다른 사람의 글을 통해서 내 작품을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는 점이다. 이번 합평에서 나는 대사 쓰기가 어려웠던 점이 이건 아니었을까 하고 깨닫게 됐다. 바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는 버릇이다! 덧붙여서는 영상을 보거나 글을 읽을 때도 상황을 빠르게 파악할 뿐, 그 말 하나하나를 귀기울여 듣지 않는 습관 때문인 것이다. 


글을 처음 써보는 사람의 피드백을 하게 됐다. 우선 글을 읽고서 피드백을 해주려는데 정말로 그 사람의 글이 이해되지 않았다. 의견을 주려고 해도 이 사람의 글 자체가 파악되지 않으니 결국은 빈칸으로 남겨뒀다. 그 사람의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다른 사람의 작품을 피드백했다. 그리고 그 분이 피드백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아마도 작가의 태도가 글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됐다. 


그 분은 피드백을 할 때 자신의 말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들릴지 고려하지 않았다. 객관적인 의견을 넘어서 과한 표현을 하느라 내 작품이 아닌데도 괜히 눈치를 보는 상횡이 몇 번 있었다. 피드백을 하는 거에 객관적인 기준은 없겠지만 개인적으로 주관적인 비유를 섞어서 감정을 건드릴 만한 피드백은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대안을 제시할 때 그 사람에게 더 도움이 되는 피드백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의 피드백을 들어보면 별로다, 라는 표현 말고 건질 만한 내용이 없었다. 


합평 시간이 되고서 그 사람의 피드백 순서가 됐을 때 다른 사람들이 질문하기 전 자신이 먼저 궁금한 것들을 쏟아냈다. 사실 작품 자체에 관한 궁금증보다는 과제를 하는 동안 어려웠던 고충을 털어놨다. 사람들이 질문하지 않으면 그 시간을 자신이 모두 채워 이야기했고 그 사람의 말을 들으며 귀에서 피가 날 거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처음엔 이 사람하고 성향이 맞지 않는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피드백에 반응하는 그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이 분은 글을 쓸 때도 독자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우선 시제나 배경 같은 설정들이 그 사람의 주관적인 기준에 맞춰져 있어 오류가 생겼다. 정확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자신이 그 시대밖에 모르기 때문에 그때로 설정했는데 문제는 시대로 서술되는 내용이 그 시대와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고서 대답한 게 그런 오류가 있지만 사람들이 넘어가주길 바랬다고 말했다. 다른 것들에 대한 질문에서도 대답은 비슷했다. 독자가 이해해주길 바란다거나 모른 척 해줬음 한다는 것. 


그 순간, 아마도 그 사람의 태도가 글에도 적용됐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건 나에게도 적용되는 사실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데 나는 벌써부터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건 아마 내가 너무 내 생각과 가치관에만 꽂혀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공간이 없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 보니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생각하건 말건 나는 나대로 내가 생각하는 것들만 쏟아내게 된다. 이래서야 제대로 된 소통이라 할 수 있을까.


대사를 쓰지 못한 것도 결국 같은 맥락이다. 어느 순간부터 영상을 볼 때 자막으로 그 내용만 빠르게 파악했다. 긴 영상을 볼 때는 얼른 끝내버리고 싶은 마음에 2배속으로 돌려보기도 했다. 대사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만 빠르게 알고 싶었다.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읽는 게 아니라 이런 일이 있었구나 상황만 판단하며 훅훅 지나갔다.


대사를 잘 쓰는 사람들의 피드백은 확실히 달랐다. 상황적으로 방법을 제시하는 나와 다르게 정말 꼼꼼한 피드백을 주는 사람이 있었다.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문장으로 가져와 정확히 어떤 부분이었는지 말해줬다. 대사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를 구체적으로 언급할 때 이 분은 정말 글을 세심하게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사람들의 글은 확실히 묘사가 눈으로 보듯이 구체적으로 그려졌고 대사도 입에 잘 붙었다.


결국 대사는 말이다. 한 사람만 등장하는 건 독백에 지나지 않는다. 이야기로 나아가려면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 그 사람이 할 법한 말, 그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을 들려줘야 한다. 나는 그동안 내가 하고 싶은 말들로만 캐릭터를 만들었다. 모두 같은 사람이 같은 말을 하고 있으니 괜찮은 대사를 쓰지 못했던 거다. 


세상에 정해진 답을 찾아서 금방 따라잡으려던 요령은 버렸다. 이제 방법은 내가 찾기로 했다.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귀를 기울인다면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품었다. 우선은 말에 집중하는 중이다. 사람을 많이 만나고, 여러 일을 겪어야만 대사를 쓸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지레 겁을 먹기도 했었다. 나는 그만한 경험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경험은 곳곳에 널려있다.


유튜브만 해도 사람들의 대화에서 그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고 같은 말을 어떤 식으로 다르게 표현하는지 비교할 수 있다. 정중한 사람과 무례한 사람, 외향적인 사람과 내향적인 사람의 언어는 같은 의미를 담고서도 그 표현방식이 다르다. 나와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을 무례한 사람이라 차단해 버렸으니 그동안 공부할 기회를 많이 놓쳤는지 모른다. 내 주변 사람들이 모두 캐릭터라고 생각하고 저 사람의 말을 배우려고 하니 또 대화하는 게 기대되기도 한다. 


사건을 만들고 구성하는 능력도 예전에 비하면 훨씬 나아졌다는 걸 안다. 나를 의심만 하고 노력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못했을 거다. 글을 잘 쓰려는 건, 그래서 더 노력하고 싶은 건 내가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나아질 내 글을 위해 모든 노력을 더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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