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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ctio Jul 28. 2024

누구보다 아름다운 그대에게

국방의 의무로 청춘을 바치는 당신을 위해

 


  정말 오랜만에 편지를 씁니다. 학생들과 종종 편지는 주고받지만, 그것들은 주로 답장 형식에 가깝고 내가 먼저 펜을 드는 경우는 정말 오랜만이네요.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생각해보니, 8년전 처음 군대 훈련소에 갔을때가 마지막입니다. 그때의 기억을 되돌아보면 외부와 단절된 채, 유일한 소통창구인 손편지를 통해 나의 '존엄'을 잃지 않으려 애썼던 것 같아요. 그때의 시절이 다 지나고 편지보다는 손쉬운 카카오톡으로 짧은 문자들만 대체하다가 이번 기회에 다시금 긴 호흡의 문장을 적게 되었습니다.


  글쓰기 모임 마지막 주제는 <편지쓰기>였습니다. 누구한테 편지를 쓸지 정말 오랫동안 고심하다가, 청춘을 국가를 위해 바치는 당신에게 쓰려고 마음 먹었습니다. 며칠 전 마지막 예비군이 끝난 것도 어느정도 작용하겠지요. 누구보다 고생하는 당신을 위해 나의 편지가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나의 인생에서 가장 큰 시련을 고르라 한다면 군대는 아닙니다. 다만 가장 고독했던 시기를 고르라 한다면 군대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곳도 사람사는 곳이고, 하루종일 북적이는데도 정말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표현이 딱 맞다고 할 수 있겠네요. 아무리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감과, 아무리 많은 일을 해도 채워지지 않는 정서적 허기로 저는 꽤나 외로운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일과가 끝나고 티비를 볼때면 사회는 너무나도 아름다워 보이고, 싸지방에서 접속한 SNS에는 나빼고 행복한 사람들로 가득해 보였으니까요.


  아이러니하게도 나에 대해 가장 잘 탐구할 수 있었던 시간이 바로 그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나는 이 권태로움을 메우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읽어내려갔습니다. 진중문고, 제품 포장지, 훈련 요령까지 전부 다. 그 시간동안 나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었고, 그 끝은 결국 허무주의였지만 무슨 쪽이든지 깊이 사유한다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기에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혹시 영화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앳원스>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나요? 그 영화 속 악당인 조부 투바키는 모든 멀티버스의 자기 자신을 경험하고 가장 강력해진 동시에 허무주의에 빠져서 이 세상을 멸망해버리려고 합니다. 나는 그 조부 투바키의 마음이 이해가 갔어요. 나 자신에 대해 깊이 사유한 결과 어차피 모든 것은 죽거나 소멸하고, 아등바등 사는 나라는 존재가 참 가엾게 여겨졌거든요. 


  아이러니하게도 그 영화에서 제시하는 해법은 <사랑>입니다. 참 고리타분하고 뻔한 이야기죠? 나 역시도 고리타분하다 여겼지만 그 방법이 제일 맞다고 생각해요. 지금 군대에 있는 당신이 고립되고 외롭고 허하겠지만, 그 어떤 종류든 사랑으로 채워나가길 바랍니다. 가족 간의, 연인 간의, 친구 간의 그 어떤 종류라도 좋습니다. 삶이라는 것은 때때로 지루하고 권태로워서 뭔가에 취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언젠가 그 사랑이 끝날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상대방을 이상화하고 사랑하고 기대하는 그 과정에서 또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8시간 훈련받는 것도 참 힘들었습니다. 8시간동안 잠깐 있다가 나왔는데도 그 시간이 긴데 당신의 고독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겁니다. 아니 이미 그 안에서 당신만의 이유와 사랑을 찾아 현명하게 잘 헤쳐나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모든것이 나의 기우에 불과할 수도 있어요. 아무쪼록 나는 당신이 건강하게 무사히 군생활을 마무리하길 바랍니다. 당신 덕분에 나는 오늘도 안심하고 잘 자고 일어났고, 안전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항상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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