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시대- 돌아갈 수 없기에 더 그리운 그 시절
살면서 가끔씩 난감한 질문을 받는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뭐에요?", "가장 재밌게 본 영화는 뭐에요?" 좋아하는 음식? 재밌게 본 영화? 물론 있다. 하지만 여기에 붙는 <가장>이라는 수식어가 나를 참 곤란하게 만든다. 그냥 '적당히' 좋아하면 왜 안되는거지? 돌이켜보면 나는 어렸을 적부터 회색분자적 기질이 다분했었다. 딱히 누군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해본 적도 없고, 어떤 취미에 열심히 빠져본 적도 없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거야!"라고 말할 때면, 그/그녀의 확신이 부럽기도 하고, 무언가에 빠져들 수 있는 열정이 부럽기도 하다.
이번 주제를 적기 위해 일단 카테고리를 탐색했다. 영화는 가급적 빼달라 했으니, 드라마? 음악? 아니면 책? 다 좋아하는 것들이지만 '가장'이라는 전제가 붙으면 달라진다. 너무 많은 고민은 악수(惡手)라는 걸 알기에, 5분 정도 고민 후에 드라마 <청춘시대>에 대해 적기로 마음먹었다. 이 드라마는 2016년, 내가 군대에 있을 때 방영했던 JTBC의 드라마이다. 대학가 근처 쉐어하우스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다룬 이야기로 쉐어하우스에 사는 5명의 하숙메이트(줄여서 하메)의 이야기를 다룬 옴니버스식 드라마이다. 간단하게 등장인물에 대해 소개하자면, 시골에서 갓 올라온 촌스러운 새내기 은재, 알바를 3개씩 하며 취업을 꿈꾸는 진명, 나쁜 남자와의 연애로 속앓이를 하는 예은, 모쏠 탈출이 목표인 지원, 마지막으로 유부남의 애인을 해가며 쉽게 돈을 버는 이나까지 다섯명의 여대생의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타자인 내가 보는 그들의 고민은 사실 정답이 있는 것지만, 그들에게 그 고민은 세상 그 무엇보다 무겁고 버겁기만 하다. 작가의 유려한 필력 덕분에 내가 마치 주인공 중 한명이 된 것마냥 집중해서 한 호흡으로 드라마를 끝낼 수 있었다.
작가는 처음 이 드라마의 제목을 <벨 에포크>로 지으려고 했으나, 낯선 이름에 시청자들이 거부감을 지을까봐 <청춘시대>로 선회했다고 한다. 벨 에포크는 프랑스어로 '아름다운・좋은 시절'을 의미하고 주로 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1914년)까지 프랑스가 사회, 경제, 기술, 정치적 발전으로 번성했던 시대를 일컫는 데에 회고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난 뒤엔 작가가 이 작품의 제목을 왜 <벨 에포크>로 지으려고 했는지 이해가 갔지만, 흥행을 위해서라면 보다 직관적인 <청춘시대>로 짓는것이 더 나았다고 생각한다.
글을 마무리하는 이 시점이 되면서도 사실 이것이 과연 내 최애 콘텐츠가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최애 콘텐츠임에는 의문이 있지만, 글쓰기 모임 회원분들에게는 추천하고 싶은 콘텐츠임에는 분명하다. 이렇게 휴일 저녁에 2시간 반이나 시간을 내서 다른 사람이 쓴 글에 공감해주는 분들이라면 MBTI가 F임이 분명할테고, 그렇다면 5명의 '하메'들에게도 쉽게 공감할 수 있을것이다.
30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나한테 있어선 10대~20대 초중반의 그 청춘을 다룬 이야기가 나의 가슴 속 뜨거운 무언가를 차는 킥(Kick) 포인트다. 뉴진스나 데이식스의 노래를 들으면 어딘가 가슴이 뛰고, 학교에서 뭐가 그리도 좋은지 꺄르르 웃는 학생들의 모습을 볼때면 가슴 속 어딘가가 아련해진다. 서툴고 어리숙하지만 그 존재만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들. 하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다시 청춘의 한가운데로 돌아가겠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선뜻 그렇다고 답할 수 없을 것 같다. 나에게 있어 지금의 최선은 그저 나의 '최애 콘텐츠'인 청춘물을 주기적으로 한번씩 봐주는 것. 말 그대로 벨 에포크(Belle Époqu), 돌아갈 수 없기에 더 애틋하고 소중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