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김정미의 <햇님>
연애의 호시절, 그때의 나를 가만히 돌이켜 보면 아주 드넓은 연못이 터전인 한 마리 오리가 되었던 것만 같다. 깊은 물속까지 자맥질을 하다가 물 위로 솟아서는, 쏟아지는 햇볕을 한껏 쬐고, 활개도 좀 치고, 꽥꽥거리기도 하는, 제 멋대로의 오리라고나 할까. 그러나 유영을 하다가 물가에 가끔 닿는 일은 있어도 물 밖으로는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그 운명이란 구속이나 속박 대신 ‘안주’라는 말이 어울린다. 연인의 널따란 품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거기를 떠나는 일을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누군가 나에게 ‘연애의 아름다운 한 때’가 어떠한지 재차 묻는다면, 김정미가 부른 <햇님>을 들어보라고 대답할 것이다. 어쿠스틱 기타의 쟁글쟁글한 리프로 시작하는 이 노래를, 곡명도 모르고 처음 들었던 기억이 있다. 노래의 도입이 마음에 부딪히던 때, 햇빛이 비치어 반짝이며 흐르는 잔물결을 떠올렸다. 그 풍경처럼 명랑하고 평화로운 멜로디가 반복되다가 이후, 결코 들어 본 적 없는 목소리의 여자가 노래를 시작했다.
“하얀 물결 위에 빨갛게 비추는 햇님의 나라로 우리 가고 있네. / 둥글게 솟는 해 웃으며 솟는 해 높은 산 위에서 나를 손짓하네. / 따뜻한 햇님 곁에서 우리는 살고 있구나. […] 얼굴을 들어요. 하늘을 보아요. / 무지개 타고 햇님을 만나러 나와 함께 날아가자. / 영원한 이곳에 그대와 손잡고 / 햇님을 보면서 나와 함께 날아가자.”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노랫말이다. 그러나 이 가사가 김정미 특유의 비음 섞인 창법에 실렸을 때의 느낌은 묘하게 매혹적이다. 만약 맑고 청아한 목소리의 다른 가수가 불렀다면 빤한 결말의 동화 한 토막을 읊는다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를 만큼 말이다. 노래의 후반부, 김정미의 허밍과 그 배경이 되는 갖가지 현악 선율의 조화는 다채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김정미의 <햇님>은 제일 나다운 모습으로 사랑을 주고받던 때를 떠오르게 한다. 혼자서 자주 그 순간을 생각하고, 바라면서 이 노래를 들었다. 온화한 마음과 용기 있는 눈빛을 지녀볼 수 있던 때를.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걸어 나아가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차고 넘치던 때를.
내 마음에 화답하는 연인의 다정한 마음과, 나에게 향하는 눈빛을, 깍지를 맞추는 손의 온기를 느끼면서 “혼자서 자주 이런 순간을 생각하고, 바라며 이 노래를 들었다.”고 말하는 날이 잦은 요즘이다. 뭉근히 달구어진 마음으로, 인생에서 몇 안 되는 양지陽地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2017.07.26.
온실과 난전
온실과 난전이, 어제와 오늘이 섞인 일기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