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야마/구라시키 여행
구라시키는 큰 도시라 할 수 없지만 작은 도시라고도 할 수 없다. 3박 4일의 대부분은 역에서 미관지구로 이어지는 극히 제한적인 지역에서 보냈는데 별로 지루하지 않았다. 오래 전 창고로 쓰던 흰 벽의 옛 건물들이 늘어선 수로는 항상 고요하고 깨끗하다. 버드나무 늘어선 수로를 따라 산책하다 커피 마시고, 작은 가게들 구경하고 아무 데나 들어가 밥 먹고. 쉬다가 책도 읽었다가 멍 때리기도 하고. 버드나무가 상징이라 그런지 도로의 상하수도 맨홀 뚜껑도 예쁜 버드나무가 그려져 있어서 한동안 구경하기도 하고. 단조롭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 오카야마나 오사카 등 연계해 여행 다니는 분이라면 기차로 하루 정도 돌아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만.
오하라 미술관과 옛 저택이 관광의 중심이지만 단게 겐조가 지은 구라시키미술관과 아무나 이용할 수 있는 구라시키도서관은 여행 기간 중 오며 가며 자주 들렀던 곳. 야구팬이라면 오래 전 주니치 드레곤스와 라쿠텐을 맡았던 호시노 센이치 감독의 기념관을 가볼 수도 있고(호시노 감독이 구라시키 출신이다. 선동열과 이종범 때를 생각하면 솔직히 좀 화도 나지만...) 만화팬이라면 <캔디>를 그린 이가라시 유미코 기념관도 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들려볼 만하다. 이곳에는 드레스 체험도 할 수 있고 드레스를 입은 채 카페를 이용하는 '프린세스 카페'도 영업중이다.
'아베 총리 때문에...' 이곳 사람들도 한숨을 쉬며 이야기를 잇지 못한다. 한국과의 관계가 나빠지면서 관광객도 줄었고 중국 관광객은 아직 이곳까지는 많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정치는 사람들을 원하지 않은 방향을 몰아간다. 이웃이 싫으면 이사가면 그만이지만 나라와 나라는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붙어 지내야 하는데 그렇다면 싸우고 부딪치면서도 결국 잘 지낼 방법을 찾아야 할 수밖에 없다.
오가는 사람 없는 연말 비수기의 쿠라시키. 사람들이 많지 않아 호젓하다 못해 저녁이면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어서 두텁게 내린 어둠이 무서울 정도였다. 그래서 한 해를 정리하기에는 오히려 더 좋았던, 작고 고요하고 단정한 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