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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Report Jan 11. 2020

좋아하는 소설 속 음식을 재현한다면, 어떤 맛일까?

<작은 아씨들>과 함께한 작가의 식탁


이 모든 것은 지난 11월 스코틀랜드 출장길에서 받은 톡 메시지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회사에서 함께 일한 후배이며 멋진 비즈니스 우먼이자 기획자인 거창한 국수 김상희 대표로부터 느닷없이 연말에 제가 젤 좋아하는 문학작품 속 요리를 재현해 먹으며 북토크를 하자는 것이었지요. 이 프로그램을 할지 말지는 두 번째였고 저는 바로 "그렇다면 <작은아씨들>!" 하고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단연코 <작은 아씨들>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그레타 거윅 감독에 시얼샤 로넌 주연으로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이 소설에는 1860년대 미국 가정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음식 이야기와 파티 이야기가 자주 등장해 늘 궁금했습니다. 더구나 막내 에이미가 보여주었던 '소금에 절인 라임' 스토리는 잊을 수가 없는 것이기도 했구요.  


연말이 되니 이런저런 일도 많아 참석자들도 쉽게 모으기 어려울 것 같고 더구나 <작은 아씨들> 한국 개봉이 해를 넘겨 2월로 잡히며 이 행사도 조금 뒤로 미뤄 1월 초로 날을 잡았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소설 속 짧은 소개만으로 등장하는 이 음식을 오늘날 먹어도 맛있게 어떻게 재해석하는가 였는데, 다행히 솜씨 좋고 멋진 배화여대 김정은 교수님이 맡아주어서 용기백배! 소설에 등장하는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는 프로그램에 사람들이 반응을 보일까, 참여하고 싶어할까 걱정하며 저희 세 사람의 소셜미디어에 공지를 올렸는데 다행히 바로 15자리가 다 차버려서 한숨 돌렸습니다. 이제 저만 잘하면 되는 건데...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필이면 날씨가 많이 추워진 저녁, 김정은 교수님의 작업실로 참가자들이 한분 두분 찾아오고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작은 아씨들>을 좋아하는 이유를 소개했습니다. 영원히 고전이며 영원히 현대적인 이야기, 개성 강한 자매들 중 나를 동일화시키는 묘한 매력, 일과 사랑과 돈과 결혼에 관한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막연히 낭만적인 기대와 선택. 이 소설에 관해서라면 얼마든지 오래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얼른 이야기를 마치고(네, 책보다는 밥이니까요^^)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소설 속 등장하는 에피소드에서 추리고 추려 정한 메뉴가 하나씩 등장했습니다. 김정은 교수님이 음식과 조리법에 관해 설명을 해주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 허세를 부리고 싶던 에이미가 친구를 초대할 때 꼭 있어야 한다고 고집했던 '바닷가재샐러드'
* 전쟁터에서 깜짝 귀향한 아버지를 위한 점심식사에 등장한 '로스트치킨과 브레드푸딩'
* 조가 로리와 크로커씨를 초대해 대접했다가 망한 '아스파라거스 구이'
*크리스마스 날 옆집 로렌스 할아버지가 차려준 멋진 디너의 '빅토리안 케이크와 아이스크림'
* 조가 대고모 유산으로 받은 저택에서 벌인 사과 따기를 연상시키는 '사과국수'
* 약간의 알콜과 에이드
* 그리고, 에이미가 그토록 원했던 피클드 라임


식사를 하며 그날 처음 본 참가자들이 서로를 소개했습니다. 이 소설을 좋아해서 온 분도 있었고, 소설을 구현한 디너가 궁금해서 온 분도 있었으며 행사를 주최한 세 사람과의 친분으로 참석한 분들도 있었는데 나이도, 하는 일도, 배경도 모두 다른 여성 20여 명이 한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자신의 사업체에서 열심히 나름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사는 여성들은 서로의 일에 관해 묻고 예상치 못한 공통점을 찾아내기도 했고 서로가 만들고 홍보하는 물건들의 공구 계획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작은 아씨들>의 식탁'이라는 계기 하나로 이렇게 모여 예상 시간을 훨씬 넘겨 이야기를 나누다니 참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마음 편한 네트워킹, 자연스러운 유대, 무조건적인 응원이 맛있는 음식과 함께 하는 자리라니요. 자매애는 강하다, Sisterhood is Strong이라는 말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거든요.


소설 속 막내 에이미가 12살로 나오는데 저는 그보다 어린 나이에 처음 이 소설을 읽었고 그 후로 20대에도, 30대에도, 이제 40대를 보내면서도 이 소설을 가끔 다시 꺼내 읽습니다. 저에게 <작은 아씨들>은 단순한 소녀 취향 소설, 여자아이들을 위한 동화가 아닙니다. 이루지 못한 꿈에 관한 이야기, 상실과 선택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서로 연락처와 sns 주소를 교환하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보자며 쿨하게 헤어진 모임. 새해를 멋지게 시작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ps. 남성분들 중에 <작은 아씨들>이나 <제인 에어> <빨간머리 앤>을 읽는 분은 적은 듯해서 아쉬워요! 그냥 "소녀들이 읽는 이야기"로 넘기기에는 너무나 재미있는 소설이니 한번 읽어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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