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동 한정식 전원의 마지막 인사
세상 멍청한 사람이 늘 바쁜 척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다. 일부러 바쁜 척 하는 건 절대 아닌데, 이런 저런 일로 정신없어서 모처럼 반가운 친구나 동료를 만나면 "언제 밥 한 번 먹자"고 해 놓고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다. 문득 돌아서서 생각해보면 그 '언제'가 도대체 언제인데... 빈 말이나 하다니, 나라는 인간은 형편 없다고 반성하게 된다.
처음 입사했을 때 상사가 점심을 사주었던 곳, 새로운 직원이 합류하면 축하하느라, 퇴사하는 직원이 있으면 송별회 겸해서 밥을 먹는 곳, 회사로 손님이 오시면 맘 편하게 찾아가는 곳이 회사 바로 옆의 작은 한정식 식당 전원이었다.
그런데 그 전원이 이제 문을 닫는다. 장충동 일대에 이런저런 개발 소식이 들려서 조만간 정리할 것 같다는 사장님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 벌써 일년 전이었는데, 코로나로 마음 심란한 요즘 또 심란한 소식을 듣게 된다.
30년쯤 전 작은 집을 개조한 만든 전원은 1층에 테이블이 5개, 2층에 2개가 전부다. 2층은 신발을 벗고 사다리 같은 계단을 올라가야 하고 키 큰 사람은 머리가 천장에 닿기도 한다. 그날 장을 봐서 그날 음식 준비를 하기에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밥을 먹을 수도 없다. 매일 조금씩 바뀌는 한상차림이라 뭘 시키나 고민할 것도 없다.
통영 출신 사장님 덕에 방앗잎 넣은 부침개와 바로 버무린 잡채를 애피타이저 삼아 먹고 있으면 흰 밥과 국이 나오고 전어와 주꾸미, 석화 등 계절에 맞는 해산물이 메인 요리로 등장하고 일년 내내 빠지지 않는 고등어 구이와 담담한 밑반찬과 나물과 김치가 이어지며 눌은밥으로 마무리하고 나면 후식으로 나오는 과일과 추억의 믹스커피.
원래 육고기를 좋아하지 않으셨다는 사장님은 "내가 못 먹는 걸 어떻게 맛있게 만드냐"며 해산물과 채소로만 상을 차려낸다. 자리는 좁고, 아래위층 올라다니기도 쉽지 않고 음식이 잔뜩 나오니 서빙하는 분이 놓은 접시를 마음대로 이리저리 옮겼다가는 손님이 야단 맞는 집. 먹다 보면 늘 반찬이 남아 아까운 마음에 “집에 싸가고 싶다” 하면 “냉장고 들어갔다 나오면 맛없어지니 여기서 실컷 먹고 가라”는 이야기를 듣는 집.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가까이 있고 좋아하는 곳이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좋아하는 분 중 아직 여기에서 밥을 사지 못한 분들이 한참 남아있는데 이렇게 문을 닫아 버리다니.
늘 "언젠가" 혹은 "여유 생기면" 혹은 "시간 나면" 하고 미뤄놓았었다. 그런데 ‘언젠가’라는 때는 없다. 어차피 늘 시간도 없고 여유도 없다. 그러니 그냥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전화 걸고 문자 보내 밥 먹자고 약속을 잡으면 되는 거였다. 유대인들은 "미뤄 놓아도 좋은 것은 결혼과 죽음밖에 없다"고 했던가. 그냥 생각 날 때 오늘 바로 할 일이다.
내일은 있겠지만 아니, 없을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