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R Report May 10. 2020

올드 앤 와이즈

몇 년전의 일이다. 마당 있는 집에 살고 싶어 아내와 서울 시내 몇 군데를 돌아본 적이 있었다. 마침 강북의 한 동네에 매물로 나와 있는 집이 있었고, 아내에게 "저 집이야"하고 가리키며 구경을 해보자고 했다. 근데 그 집은 둘러보지도 못했다.


아내가 멀리서 보더니 "막다른 골목 집은 사지 말라고 했어"라고 하는 것 아닌가. 그러고 보니 그 집은 막다른 골목의 마지막 집이었다. 아내는 종종 외할머니로부터 어린 시절에 들었던 몇 가지 삶의 지혜를 '굳건히' 지키려고 한다. 마당에 너무 큰 나무가 있으면 사는 사람들 기가 눌린다느니...


내게는 좀 미신 같이 들리는 이야기가 있지만, 어쨌든 아내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겠다 싶어서 굳이 반박하려 하지 않는다. 당장 그런 집을 살 형편도 아니니까.


그런데 이처럼 '올드'한 사람에게서 받은 영향을 종종 발견할 때가 있다.


최근에 만난 한 독일인은 할아버지가 동독에서 서쪽 독일로 왔고, 당연히 동독에서 하던 사업을 모두 그냥 두고 나왔다고 했다. 당시 할아버지는 이미 예순을 넘겼는데, 서쪽에 와서 다시 사업을 시작해서는 돌아가실 때까지 했다고 한다. 작은 가게였지만 그런 할아버지를 보면서 그는 많은 것을 느꼈다고.


그랬던 할아버지는 그에게 "내가 너처럼 젊다면 나는 독일에만 살지 않겠다."라고 하면서 빨리 외국으로 나가서 더 넓고 다양한 세상을 경험하라고 했다고.


실제 그는 고등학교때부터 미국과 유럽, 아시아 등을 돌면서 살아왔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는 이미 20개 가까운 새로운 도시에서 일하고 살아왔다.


미국의 유명 작가인 앤 라모트의 <쓰기의 감각>을 최근 읽었다. 라모트의 아버지는 작가였다. 라모트 만큼 잘 알려진 작가는 아니었던 듯 한데, 전날 밤 아무리 늦게 까지 일을 하거나 술을 마시며 놀았다 하더라도 아버지는 새벽 5시 반이면 일어나 두 시간 정도 글을 쓰고는 가족들의 아침을 차려주었다고 한다.


그 아버지는 카툰 작가인 제임스 터버의 말을 종종 인용하곤 했는데 그 멋진 말은 이렇다. "실패하지 않으려고 너무 안간힘을 쓰느니, 차라리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까지 실패해 보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자녀가 세상을 보다 대담하게 살면서, 남의 눈치를 보기보다는 독창적이 되기를 바랬고, "자발적으로" 실수를 범하기를 바랬다고 한다.


책에 나온 아버지의 영향은 이것 말고도 있다. 글쓰기를 노름빛처럼 "체면상 갚아야 할 빛"처럼 다루고, 그 일들을 어떻게든 끝맺을 수 있도록 헌신하도록 했다고.


라모트의 아버지가 그에게 끼친 가장 큰 영향은 라모트가 작가가 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던 것 아닐까. 슬프게도 라모트가 스물 넷이 되던해 아버지는 뇌암을 진단 받는다.


이 때 아버지는 라모트에게 "너는 너의 관점대로 글을 써. 그러면 나는 내 관점을 말해줄 테니까"라고 '쿨하게' 말했다고.그는 결국 아버지와의 경험을 바탕으로 <힘겨운 웃음>을 스물 여섯에 출간하게 되고, 아버지는 출간되기 한 해전에 세상을 뜨게 된다.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그 영화의 비밀>에는 <비열한 거리>에서 배우 천호진이 노래방에서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올드 앤 와이즈>를 부르는 장면의 비밀을 영화감독 유하가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고 한다. 유하감독은 반어적인 의미로, 즉, ‘올드 앤 와이즈’ 하지 않고 추하게 살아남은 사람의 비루함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고.


나이를 들어가면서 갖는 소망이 있다면... 젊게 살기보다는 추하지 않게, 가능하다면 좀 더 현명하게 늙어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RiE1KUS-pAM&app=desktop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