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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Report May 04. 2020

우리는 과연 사람을 얼마나 잘 알 수 있을까?

말콤 글래드웰 신작 <타인의 해석> 해설

지난 주 목요일(4/23)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마지막 장면은 나이 많은 흉부외과 치프 레지던트 도재학(배우 정문성)이 짠돌이로 살아가면 마련한 집이 전세사기였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끝난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처음' 만나게 되고, 함께 일하던 사람으로부터 생각지 못한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다. 말콤 글래드웰의 신작 <타인의 해석> (Talking to stranger)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우리는 생각보다 다른 사람을 잘 해석하지 못한다"이거나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가 된다.


이 책의 내용을 한 문단으로 줄여보면 이렇다.


인간은 사람들의 표정을 통해 이 사람이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안다고 생각(투명성 가정, 3부)했지만, 이는 실패한 이론이다.


그보다 우리는 낯선 사람을 기본적으로 정직하다고 믿는다(진실기본값 이론, 2부). 이렇게 될 경우 때로 누군가 의도적으로 나를 속이려 할 때 우리는 취약해질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것이 도움이 된다. 우리가 서로를 늘 의심한다면 조직이나 사회가 움직이기 힘들기 때문이다.


타인의 행동을 진정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행동이 장소와 같은 맥락에 따라 다르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말콤 글래드웰은 "낯선 사람을 보고 곧바로 결론을 내리지 말라. 낯선 사람의 세상을 살펴보라" (347쪽)고 말한다.


이제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보자. 이 책의 핵심은 2, 3, 5부인데, 순서는 3-2-5가 이론의 발달 순서로 놓고 보면 맞다. .


1. 투명성 가정 (3부)
투명성 가정이란 쉽게 말해 첫인상처럼 얼굴 표정을 보면서 상대방을 파악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얼굴에 그 사람의 진실이 투명하게 드러난다는 가정이다.


이 분야의 선구자는 심리학자인 폴 에크먼(Paul Ekman)이다. 그는 1970년대 얼굴 근육의 움직임을 통해 거짓말인지 아닌지 등을 판별할 수 있는 FACS (Facial Action Coding System)을 개발하여 경찰, 정보기관 등에 많이 보급하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나는 몇 년전 영국의 맨체스터에서 에크먼의 FACS를 배울 기회가 있었는데, 배우면서도 이 시스템의 실용적 가치에 대해서는 일부 의문을 가졌었다. 상대방의 표정을 녹화해서 몇 번이고 돌려보면서 분석하는 것이 일상적으로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코딩 작업도 복잡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 투명성 가정을 말하면서 폴 에크먼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이 나는 살짝 의아했다. 그 이유를 미주에서 찾았다.


그는 하나의 미주 항목으로 무려 4페이지 반을 할애하여 그가 <블링크>에서 심도 있게 다루었던 폴 에크먼에 대한 심리학자의 반발이 최근 심리학계에서 있었다는 점을 비롯해 여러 가지 문제점을 해설하고 있다. 아무튼 3부의 제목을 "투명성 가정의 실패"로 잡은 것으로만 보아도 <블링크>이후 그가 에크먼이나 투명성 가정에 대한 입장이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2. 진실기본값 이론 (2부)
올해 초 화제 속에 끝난 <스토브 리그> 초반에 백승수 신임 단장과 이세영 운영팀장 사이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스토브 리그)
백승수: 팀장님은 고세혁 팀장을 믿습니까?
이세영: 네, 믿어요. 오래 봐온 분이에요.
백승수: 확인도 없이 정에 이끌려서 그럴 사람 아니야. 그게 믿는 겁니까. 그건 흐리멍덩하게 방관하는 겁니다.
이세영: 확인하는 순간 의심하는 거죠. 확실하지 않은 근거들보다 제가 봐온 시간들을 더 믿는 거예요.
백승수: 확실하지 않은 근거… 그걸 확실하게 확인할 생각 안 하셨어요?
이세영: 단장님은 의심 안 받아보셨어요? 그때 기분 좋으셨어요>
백승수: 저는 아무 의심도 없는 흐리멍덩한 사람하고 일하기 싫습니다. 차라리 나까지도 의심하고 다 확인하세요. 떳떳하면 기분 나쁠 것도 무서울 것도 없습니다.


이세영 팀장이 동료인 고세혁 팀장(스카우트 업무를 맡은 그는 결국 학부모들로부터 뒷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해고당한다)을 믿는 태도를 보여준다. 반면 백승수 단장은 그에 대한 의심하는 태도를 보이고, 결국 그가 맞는 것으로 드러난다.


진실기본값 이론은 국내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의 교수이기도 했었고 현재는 알라배마 대학교 교수인 팀 러바인 교수가 만든 것이며, 이 이론을 만드는 데 기여한 사람 중에는 고려대학교의 박희선 교수도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다른 사람과 소통할 때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이 정직하다고 가정하며, 거짓말의 분포는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분산되어 있다기보다는 소수의 '거짓말장이'에게 쏠려있다. 사람은 진실을 말하는 타인을 맞히는 데는 보다 유능하지만, 거짓을 밝혀내는 데에는 무능하다. (왜냐하면 대다수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점에서 진실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럼 일반적인 사람들은 언제 의심을 하기 시작할까? 러바인에 따르면 계기(trigger)가 있어야 의심을 시작한다. 즉 상대방이 거짓말을 해야 하는 목적이 드러나거나, 합치(correspondence), 즉 팩트와 다른 이야기를 한다든지, 일관성(coherence), 즉 과거 다른 발언과의 일관성이 떨어지기 시작할 때가 되서야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


반면에 항상 낮선 사람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책에 나오는 마코폴로스라는 독립적인 사기 조사관이 그런 유형이다. 그는 2009년에 드러난 미국의 폰지 사기에 대해 2000년부터 미국 증권 거래위원회에 지속적으로 경고를 보냈던 사람이다.


이처럼, 기자나 경찰, 검찰, 감사관 등은 항상 의심하는 자세를 견지하면서 조직이나 사회에 기여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 '아웃사이더'로 분류되지만, 불편한 진실을 밝혀내고 일반 사람들이 당연시하는 것들에 의문을 던지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타인을 잘 해석한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사기꾼이 아니기 때문이다.


3. 결합
마지막으로 결합이론은 사람의 행동이 특정 맥락과 연결되어 있으며, 따라서 타인을 이해할 때에는 그 사람의 세상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래드웰의 결론에 해당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는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가 자살 명소가 된 사례를 되짚어본다. 1937년 개통 이후 이 다리에서 자살한 사람만 1,500명이 넘는다. 만약 이 다리에 구조물을 설치해서 금문교에서 떨어내리려는 사람을 줄어들게 만들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은 다른 다리나 다른 방식으로 자살을 재시도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금문교에서 자살을 시도한 515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심리학자 리처드 사이던)에 따르면 그 중 재시도한 사람은 25명이다. 즉, 금문교에서 자살하려는 사람은 대부분 그 다리가 아니면 자살을 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결합'이론의 한 예이다. (샌프란시스코시는 금문교에 이런 방지시설을 설치하기로 2018년에야 결정했다. 다리가 개통하고 80년이 지났고, 1500명이 넘는 사람이 이 다리에서 자살을 한 뒤였다. 완공은 2021년 1월이었으나 최근 2년을 연기하여 2023년에 완공할 예정이다)


여기까지 요약을 읽고 나면 글래드웰의 기존 독자라면 "설마 그렇게 끝났다고?"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글래드웰이라면 단지 우리가 낯선 사람을 해석하는데 서투르다는 것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과거 <아웃라이어>를 통해 "1만 시간의 법칙"이 화제가 된 것처럼, 그럼 어떻게 타인을 해석해야 하는지 멋진 처방이나 도구를 내놓았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는 우리가 왜 서투른지를 이해하는 이론들은 소개가 되지만(대표적인 것이 2장의 "진실기본값이론 Truth Default Theory이다), 타인을 어떻게 잘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처방은 나오지 않는다. 이런 점이 이 책에 대해 일부 독자들을 당혹스럽게 하거나 실망하게 만드는 지점이기도 하다.


최근 이 책에 나오는 주요 에피소드와 관련된 넷플릭스나 HBO 다큐멘터리, 관련 영화와 논문까지 살펴보면서 이 책을 천천히 읽을 기회가 있었다. "YG와 JYP의 책걸상"에 나가 강양구 과학기자와 박재영 주간(청년의사)과 토론할 기회도 있었다.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사례를 끄집어 내어 들려주거나, 익숙한 사례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도록 만드는 그의 스토리텔링 능력에 대해서는 "여전하다"는 말을 할 수 밖에 없다. 이 책을 읽고 타인의 판단에 대한 나의 능력에 대해서 보다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에 만족한다면 이 책은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so what?"이라는 의문이 나오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독자 중 한 사람이었다.


내가 글래드웰의 신간을 꼼꼼히 읽은 이유 중 하나는 작년에 번역한 <사람일까 상황일까>(리로스, 리처드 니스벳)와도 관련이 있다. 저명한 사회심리학사회심리학자이지만 글래드웰의 책 처럼 재미나고 쉽게 읽히지는 않는 이 책을 글래드웰은 자신이 쓴 베스트셀러의 플랫폼과도 같은 책이라고 평한바 있다. 글래드웰이 결론처럼 말한 결합이론은 결국 타인을 이해할 때에는 그 사람이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과 결합하여 보아야 한다는 말로서 <사람일까 상황일까>의 핵심메시지와 일관된다. 다만 어떻게 그 세상을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타인의 해석>에서는 말하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런 부분에 대해 <사람일까 상황일까>에 나오는 통찰을 이야기하면서 긴 리뷰를 마칠까 한다. 이 책의 5장에 보면 "상황주의와 면접 착각"이라는 부분이 나온다. 우리가 흔히 면접을 통해 그 사람이 성공적으로 직장생활을 할지 알 수 있는 예측률은 얼마나 될까?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상관 관계는 0.10 정도로 매우 낮다. 즉, <사람일까 상황일까>에서도 단순히 그 사람의 표정이나 한 두 번의 면접으로 그 사람을 파악하기는 힘들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두 저자는 면접관보다는 추천인의 정보가 더 정확하며, 가능하다면 복수의 추천인과 이야기를 해보라고 말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더더욱 타인에 대한 의심과 경계가 높아지고, 소셜 미디어로 인해 우리는 수없이 많은 타인과 이방인을 만나 소통하게 된다. 우리가 어떤 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얼마나 부족한지 깨닫는 과정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신을 가진 상태에서는 결코 개선을 위해 배우려 하거나 할 수가 없게 된다. 말콤 글래드웰의 신작 <타인의 해석>은 우리의 타인에 대한 판단이 얼마나 틀릴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물론,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처방에 대해서는 실질적으로 말하는 바가 없는 점은 아쉬운 점으로 계속 남는다.


p.s. 1 이번에 <타인의 해석>을 읽고 든 생각 중 하나는 이렇다. 어느 가수가 대중의 입맛에 맞는 노래를 불러 성공하여 수십년이 지나다보면 어느 시점에는 "이제는 대중이 좋아하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를거야"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말콤 글래드웰 역시 20년이 넘는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명성을 쌓은 뒤, 혹시 이번 책을 쓸 때에는 그랬던 것은 아닐까?


p.s. 2 <타인의 해석>을 두껍고 재미있게 보는 방법
이 책에는 다양한 사건이 많이 나온다. 시간이 된다면 중간 중간에 관련 영화나 다큐멘터리, 참고자료등을 보는 재미도 좋다.

영화로는 <Paterno> (2018, 알파치노 주연의 영화, 5장 사례와 연결), 

다큐멘터리로는 <아만다 녹스> (넷플릭스, 7장 사례), <Say Her Name: The life and death of Sandra Blend> (HBO, 유투브에 전체가 공개되어 있다, 1장과 12장 사례) 등이 있다. 

서울 마포대교와 자살에 대해서는 jtbc 뉴스 팩트체크 "자살예자살예방 생명의 다리 9월 철거, 효과 없었나" (2015. 7. 7) 참조하시길.


참고 자료

"Golden Gate Bridge Suicide Deterrent Net Project Update" (2019. 12. 12)
"Malcolm Gladwell Reaches His Tipping Point After 20 years, has the author’s formula at last been exhausted?" (by Andrew Ferguson, 2019. 9. 10)
"Malcolm Gladwell’s Advice When ‘Talking to Strangers’: Be Careful" (by By Anthony Gottlieb, 2019.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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