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쌓인 이곳저곳을 들리다보니 대로변 건너편까지 가게 됐는데, 어느 순간 핸드폰이 없더라는 것이다.
고무장갑을 벗어던지고 당장에 딸을 데리고 나갔다. 후레시를 켜고 딸의 귀갓길을 밟았다. 길목은 눈이 너무 많이 쌓였거나 질척거리거나 둘 중 하나였다. 손이 언줄도 모르고 눈을 파헤치며 다녔다. 상가마다 들려서 사장님들께도 여쭤봤다. 돌아다녔다는 곳을 샅샅이 둘러보며 헤맸지만 어느 눈무덤에 빠진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쌓인 눈이 너무 높고 반경이 온동네라 애초에 찾는 의미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떨어진 순간 젖었거나 파손되었을 수도 있다.
바꾼지 한달 된 핸드폰. 나는 이 폰이 딸에게 쥐어질 때까지의 여정을 잊지 못한다.
딸은 아이폰이 너무 갖고 싶어서 용돈을 모았었다. 기껏 마련한게 10만원짜리 구닥다리여도, 완충 후 네시간을 못버텨서 당첨된 자만 연락이 가능했어도 그 아이폰을 참 좋아했었다.
제기능을 하나둘씩 잃으며 수명을 다해갔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는 중학생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그냥저냥 불편하게 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몇달째 보자니 나까지 불편해지고 안타까워 딸에게 새 아이폰을 선물하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덜커덕 사줄 수 있는 능력이 내겐 없었다.
알뜰통신사를 고수하려면 목돈을 주고 기기를 사야하는데, 신용카드를 쓰지 않는 내가 쓸 수 있는 방법이라곤 남는 돈 모으기밖에 없었던 것이다.
딸이 용돈을 모았던 것처럼 나는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글씨학원에 절반만 나갔다. 커피가게도 그냥 지나쳐 왔으니 3천원을 적립했다. 작은 공모전에서 수상해 큰 힘을 보탰다. 횡보가 주특기인 반려주식 하나가 잠시 올라주어 푼돈에 팔았다. 그렇게 열심히 한달을 모았다. 그리고 당근마켓에 들어가 그 이름도 화려한 최신 중고아이폰 특A급의 판매자에게 채팅을 보냈다. 매너온도 50도인 내가 네고를 묻지 않은 최초의 구매였다.
정말이지 새것처럼 빛이 나는 명품중고의 자태였다. 현미경이 있어야만 사용흔적을 찾을 수 있을만큼 최상의 제품을 손에 넣었다. 벅차오르는 감정에 발을 동동 굴렀다. 가방에 넣었으면서도 떨어뜨리진 않을까 조심조심 걸어 집까지 모시고 왔다. 딸이 오려면 아직 몇 시간이 남았다. 편지를 동봉할까? 아니, 좀 폼나게 주고 싶으니 츤데레처럼 건내는게 좋겠지. 그래도 뭔가 구색은 갖추고 싶은데.. 아, 케이스를 추가하자. 그럼 내일 줘야 하는데, 어떻게 기다리지. 얘는 모르니까 괜찮을거야. 어디다 숨기지?
이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주기 전의 모습이다. 바로 그 자체다. 이 이상의 모습은 없을 것이다.
엊그제 잃어버린 핸드폰은, 한달 전 그렇게 탄생한 딸의 아이폰이었다. 그걸 선물하기 위해 내가 한 것은 노력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폰이, 아직 한달밖에 안된 신생아가 어딘지 모르는 눈덩이 속에 파묻혀있다. 나는 동요했다. 그건 내게 있어 폰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새(?) 폰으로 바꾸고 다시 카카오톡을 쓸 수 있어 너무 기쁘다 했었다. 사설수리이력이 있던 불량 아이폰과 달리 페이스아이디가 되는게 딸은 신기했다. 사진은 찍었다하면 작품이 된댄다. 예쁜 카드를 투명하게 수납할 수 있는 케이스는 딸의 일상과 안성맞춤이었다.
나는 상실감에 화도 나지 않았다. 그래, 잃어버릴 수도 있지. 하지만 잃어버렸으니 최선을 다해 찾아는 봐야 하지 않겠니. 딸은 내가 서둘러 나서는 순간부터 나를 저지하기 시작했다. 엄마 내가 다 찾아봤어.. 더이상은 둘러볼데가 없어서 포기하고 온거야.. 아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나는 딸보다 30년은 더 된 안목이 있다.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거란 기대로 나섰고, 어둡고 눈쌓인 길들을 이 잡듯 뒤졌다. 지나가던 사범님이 길바닥 여기저기에 에어드랍을 보내고, 우연히 만난 친구들이 사정을 듣고 졸졸 쫓아왔지만, 결국찾을 수 없었다.
딸은 내게 계속해서 무언가를 얘기했다. 대부분은 그만 찾자는 말이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대충 들리던 그 말들 속에서 또렷이 들려온 한마디.
"뽕 뽑도록 썼는데 뭘"
뭣이라...?
나는 귀를 의심했다.
분개의 씨앗이 꿈틀거렸다.
뭐라? 한달 몇주 써놓고 뽕을 뽑았다?
내가 어떻게 마련한 폰인지 알고는 하는 말인가?
얼마짜린지는 알아?
이게 정녕 내 딸의 입에서 나온 말이 맞나?
찾아주려 애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한다는 말이, 뭐라고?
나는 대혼란에 빠졌다. 내가 너를 이렇게 가르치진 않았는데.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참견이 심하다는 것 외에 별달리 혼날 일이 없었던 딸이었는데, 나는 딸을 그자리에서 크게 꾸짖고 말았다. 네 물건의 소중함, 가치에서 시작해 상대에 대한 배려, 이기심을 거치고 후회와 실망의 내용으로 끝났다. 그리고 울고 있는 딸을 두고 나는 혼자 집으로 향했다.
다음날 아침,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홀로 다시 분실장소를 찾았다. 때마침 상가 직원들이 눈을 쓸고 있었지만 희망이 담긴 단서는 없었다. 햇빛이 내리쬐는 그 길목들은 이미 축축하게 젖어 반짝거렸고, 습한 눈은 뭉개는대로 닳아없어졌다. 살아있진 않겠구나.. 위치추적도 안되고, 전화기도 꺼져버렸고, 포기해야겠구나..
딸의 모습이 떠올랐다. 집에 와서 폰을 잃어버렸다고 말하던 표정이 그제서야 슬며시 보였다. 실의와 절망의 표정이었다. 나서는 나를 붙잡던 손은 이미 얼음이었다. 분신과도 같던 폰이 자기 손에서 사라졌다는 걸 알았을 땐 얼마나 당황했을까. 얼마나 처절히 눈을 파헤쳤을까. 얼마나 엄마에게 미안했을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평소 재간둥이 역할을 맡으며 분위기 쇄신용 멘트를 즉석에서 지어내던 둘째딸이었다. 밤사이 나와 함께 눈길을 뒤집어파며 툭툭 내던진 오만방자했던 말들은 둘째만의 언어였던 것이다.
차라리 나가놀지를 말껄. 집에 있으라할때 말을 들을껄. 엄마가 어렵게 사준건데 미안해서 미치겠어. 이 무거움에서 벗어나고 싶어. 엄마가 이 일을 털어버리게 하고 싶어. 나도 괜찮다고 하고 싶어. 지금 당장 벗어나고 싶어.
이랬을 의도와 달리 듣는 귀들에게 생채기를 준 딸은,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사춘기 중학생이었다. 아직도 어리고 그저 어린 여중생일 뿐이었다.
큰딸에게 이 혼란을 토로했다. 동생과 한방을 쓰며 가장 진솔된(?) 모습을 알고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큰딸의 의견은 확고했다. 엄마가 잘했어. 걔는 진심으로 그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도, 상황을 좀 보면서 말을 해야지. 그건 혼날만했지. 평상시에도 보면 입이 너무 방정이야. 아무생각없이 말해. 싹바가지가 없다니까?
그래, 살아가려면 사회적 언어가 필요하지. 삶에서의 필요경험이 남아있어 아직은 적당한 유연함을 찾아가는 때인가보다. 나는 14세 소녀의 실수를 이해하기로 했다. 어린 인생이 어른 인생으로 나아가며 다듬어져야 할 부분 중, 그녀가 지나가고 있는 목차가 지금의 것들인가보다. 이렇게 더해지고 덜어지며 부단히 커가는 중인가보다. 큰딸은 너무 말을 안해서 문제였는데, 둘째는 쓸데없이 요란한 수레를 끌어서 문제인가보다. 마음을 정리하고, 나는 딸을 어색하게 대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입방정을 고치기위해 사과는 하지 않을테지만 딸의 시련을 안아주고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교한 둘째딸이 조용히 편지를 주고 갔다.
'잘 다녀왔어?'여야 할 인사가 '왔어?'밖에 나오지 못한 상태였다.
편지에는 아홉번의 죄송과 다섯번의 반성, 후회, 세번의 속상, 그리고 당연하게 여긴 것들에 대한 참회가 담겨 있었다. (내용이 하도 눅눅해서 주요단어들을 세어봤다) 이제, 답장을 쓰려한다.
그 핸드폰을 살 때 엄마가 얼마나 행복해했었는지 되돌아볼 수 있었어. 그때의 행복이 너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걸 잠시 잊었던 것 같구나. 핸드폰을 찾으며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닫게 되어 좋았단다.
눈밭에 빠뜨린 핸드폰처럼, 말이란 것은 도로 주워담을 수가 없는 것임을 알았을 것이다. 나 역시 깨달은 바이다.
성장한 마음만큼 그녀의 삶도 넓어졌길 바라고, 지나고나니 그게 행복이었음을 알게 된 나의 세계도 함께 커주었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