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래도,
이미 알고 있는 과거의 나보다는
더 잘날 수도 있는 미래의 나에게
더 많이 의지해왔다.
그런데 오늘
고작 14살 된 딸의 메모를 보고
내 관념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내가 과거보다 미래에 의지한 건
과거가 못났기 때문이고
미래는 화려한 상상 속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 상상을 현실로 이뤄나가는 것이
나에 대한 예의이자 도리라고 생각했다.
미래의 나에게
네 덕에 내가 살아가,라고 했다.
어서 빨리 너의 날이 오길,이라고 기도했다.
미래의 나와 다정하게 대화하는 동안
과거의 나는 이불이 되어 걷어차이는 신세였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오늘은
단 하루만 지나면 과거가 되지만
단 하루 전 내가 상상하던 미래였다.
그 틈의 밀도를 감히 무시했던 나는
딸의 메모 한장에 후드려 맞고 말았다.
내게 있어 과거는
후회가 흘러들어간 하수구였다.
그 더러운 물을 모아
반성이라 정의하고 만족한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과거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도
그때만큼 최선을 다하지 못할 것이다.
최선을 다했던
지나간 나를 용서하고 사랑하지 못할테면
내일의 내가 무슨 힘으로 상상을 이룰 것인가.
후회와 반성은 거름이 될 수 없다.
오늘에 발돋움해 미래로 나아가려면
과거의 응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을,
30살 어린 선배에게 배웠다.
감사하게도 매일매일 새로운 과거가 주어진다.
모든 영광을 과거로 돌릴 때마다
그는 매일매일 나를 응원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