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나를 임신했을 때 내도록 잔치국수를 먹었다고 했다. 따끈한 멸치육수에 담긴 가느다란 국수를 후루룩, 후루룩 질리지도 않고 먹었단다. "니네 오빠는 고기. 너는 항상 면이었어." 내가 뱃속에 있었을 때 얘기를 물으면 엄마는 국수 얘기를 빼먹지 않고 했다. 내 면 사랑은 거기에서부터라는 걸 알려주듯이.
기숙사에서 나와 자취생활을 시작하면서 내 면식(麵食)은 성장기를 맞이했다. 한식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갔고 맛을 내기도 어려웠다. 재료를 사서 요리를 하고나면 남은 걸 처리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친해지게 된 게 파스타였다. 처음 혼자 밥을 해먹기 시작했을 땐 원팬 파스타를 많이 해먹었다. 내 첫 자취방은 6평 정도의 원룸이었는데, 원룸 구석에 딸린 작은 싱크대와 미미한 화력을 자랑하는 하이라이트 하나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파스타를 만드는 방법은 간단했다. 파스타가 잠길 정도로 커다란 웍에 물을 붓고 파스타를 삶는다. 면이 익는 동안은 파스타에 넣을 야채를 썰었다. 보통은 양파였고 가끔 양배추, 베이컨 같은 것들이 들어갔다. 손질을 끝내고 나면 면이 담긴 물을 반쯤 버리고 준비한 재료를 쏟아부었다. 물을 너무 많이 버리면 면이 설익고, 너무 적게 버리면 소스가 묽어져서 조절이 매우 중요했다. 나는 이 과정을 자주 실패해서 설익은 상태의 파스타나 토마토 홍수 파스타를 먹을 때가 많았다. 이 때의 나는 소스 간을 맞출 능력도, 새로운 소스를 도전해 볼 여유도 없어서 매번 가까운 마트에서 익숙한 토마토 소스를 사 먹었다.
실패한 파스타를 먹을 때면 너무 화가 났다. 좀 더 부드럽고 맛있는 면을 먹고 싶었고, 풍미가 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으면 했다. 요리 재료도 더 좋은 걸 사서 도전해보고 싶었다. '화구가 하나만 더 있으면 정말 좋을텐데. 냄비에 면을 삶고, 그 동안 요리를 해서 정성들인 파스타를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재료 손질할 때 싱크대랑 화구 사이의 좁은 공간에 도마를 밀어넣지 않고, 허둥지둥하지 않으면서 요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소스를 반이나 부었음에도 불구하도 밍밍하게 느껴지는 파스타를 씹어먹으면서 다음에는 꼭 더 맛있는 파스타를 먹고 말겠노라 다짐했다.
이후 이사를 하고 밥벌이를 시작하면서 내 파스타 역사도 변화가 찾아왔다. 지금 이 시기를 나는 무섭도록 변화하는 격동의 시기이자 성장기라고 표현하고 싶다.
나는 세상에 그렇게 많은 파스타의 종류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스파게티'는 면 종류 중 하나이고 파스타가 더 넓은 개념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그건 여태 스파게티만 알고 있던 나에게 혁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내가 시도해볼 수 있는 면이 이렇게 많다니! 절대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는 일이다. 당장 컬리에 들어가서 파스타를 검색했다. 내게 익숙한 스파게티를 시작으로 페투치네, 탈리아텔레, 펜네, 링귀니, 리가토니, 라자냐, 콘킬리에, 푸실리... 낯선 이름들의 면들이 쏟아졌다.
통장으로 들어오는 월급에 감사하며 달마다 다른 파스타 면을 주문했다. 면 하나를 시키면 버터나 페스토도 하나 주문해서 함께 먹어보는 식이었다. 숏파스타는 삶아도 쉽게 불지 않기 때문에 샐러드와 자주 먹었고, 소스를 흥건하게 만들어 떠먹고 싶을 땐 콘킬리에를 썼다. 면을 먹는 기분을 제대로 느끼고 싶을 땐 면적이 있는 페투치네나 탈리아텔레를 썼다.
가끔은 유튜브에서 레시피를 찾아 따라하기도 하고, 냉장고 속 야채를 때려넣기도 했다. 봄나물이 나올 때는 꼭 연두와 간장 소스를 베이스로 봄나물 파스타를 먹었다. 찬장과 TV 밑 식료품 상자를 열어 오늘은 어떤 면을 먹을지 고민할 때마다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요즘은 브리치즈파스타를 많이 먹는다. 불을 많이 쓰지 않아도 되는 점도 좋고, 야채를 많이 먹을 수 있는 점도 좋고, 치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꾸덕한 치즈의 맛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좋다. 다음엔 또 어떤 파스타를 만나게 될까. 언젠가 내 파스타 역사가 황금기에 접어들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