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다 다른 것 같다
Identity.
학계에서는 '정체성' 또는 '정체감'이라 불린다.
너무나 광범위한 개념이기에 정의하기 어려운 이 단어를 나는 앞으로 글에서 '정체성'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흔히, 국내의 심리학 영역에서는 정체감이라고 부르는데, 나는 정체성이라는 이름을 더 선호한다.
그 이유는, sense of identity 즉, 정체성에 대한 감각인 '정체감'이라는 용어가 따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오늘 해 볼 이야기는 '나'를 이루는 정체성에 대해서다.
앞서 정체성은 대단히 광범위한 단어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그 속에 담겨 있는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며, 당신은 누군가의 아들 혹은 딸일 수도 있지만, 어느 회사의 기술자일 수도 있고, 취미를 즐기는 사람일 수도 있고, 종교를 가진 신앙인일 수도 있다. 사실 이것도 정체성을 설명하는 이야기의 극히 일부이다.
정체성 연구자인 마르시아(Marcia)는 에릭슨(Erikson)의 정체성 이론에 기반해, 정체성은 다양한 영역(identity domain)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람들은 저마다 중요시하는 정체성 영역이 다르다고 제시하였다.
앞서 언급한 누군가의 아들딸(혹은 부모)은 '가족 영역', 어느 회사의 기술자는 '직업 영역', 취미를 즐기는 사람은 '취미 영역', '종교를 가진 신앙인'은 '종교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학업 정체성, 정치 정체성 등 정체성 영역은 무궁무진하다.
중요한 것은 사람마다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정체성 영역이 다르다는 것이다.
정체성 연구자들은 이를 중심성(centrality)이라 부른다.
내가 만약 가족을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면, 나에겐 '가족'이 내 정체성의 중심에 놓여있는 것이다. 이 경우,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거나, 가족 구성원을 위해 내가 무언가를 하는 활동들은 '나'를 정의하며, 이러한 활동들로부터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가족 구성원에게 가슴 아픈 일이 생겼을 경우(아프다거나..), 나는 승진을 못하거나 취미 생활을 즐기지 못하는 것보다 더 많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경험할 것이다. 가족은 내 삶의 중심이기에.
사람들은 자신의 중심적인 정체성 영역을 기반으로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 같다.
어떤 사람에게는 직업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이자 그 사람을 설명하는 것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직업이 취미 활동을 위한 수단에 불과할 수 있다.
정체성 영역이라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성을 제공하는 렌즈이기도 하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주위에는 열심히 종교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은 종교가 자신의 정체성의 중심에 있구나'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 나도 삶을 살며 나만의 중요한 정체성 영역이 있듯이, 그 사람들에게는 종교가 중요한 것이다.
정체성 영역은 좋고 나쁨의 기준이 없다.
나에게 그 영역이 삶의 의미와 삶을 살아가기 위한 원동력을 제공해 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