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역사학(psychohistory)
심리학은 우리 삶의 다양한 영역에 스며들어 있는 광범위한 학문이다.
심리학의 토대 학문이라 하여 기초심리학이라 불리는 발달심리학, 사회심리학, 생물심리학을 비롯해, 기초심리학을 토대로 필요 영역에 접목시킨 임상심리학, 교육심리학 등의 응용심리학이 있다.
각각의 심리학을 더 세부적으로 파고 들어가 보면 하위 분야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오늘은 정체성과 관련된 주제인 '심리역사학(psychohistory)'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모든 인간은 저마다의 인생을 살아간다.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의 장편 소설을 쓰는 것과 같다.
사람들은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스스로 인생이라는 이야기를 써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서전에는 과거와 현재에 내가 했던 행동, 가치관 등 수많은 기억이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어떤 인생이든 스스로 써 내려간 '역사'가 존재한다.
흔히 역사라고 하면 고려 시대, 조선 시대와 같은 거시적 관점에서의 역사를 말하지만, '한 사람'의 역사를 말하는 것은 미시적 관점에서의 역사를 말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간의 역사는 심리학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인간의 역사를 분석하는 학문 영역은 심리역사학(psychohistory)이라 불린다. 독일의 Rickert라는 학자가 1898년 처음 이 용어를 사용하였으며, 당시 실증적 부분이 결여된 역사학에 대한 비판으로 과학적인 학문으로서의 역사를 말하고자 심리역사학을 제창하였다고 한다.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깊숙한 무의식의 영역까지 들어가 인간의 문제(정신병적 증상 등)를 해결하고자 주로 정신분석에서 심리역사 연구를 실시해 왔다. 그중, 에릭슨(Erikson)은 인간의 행동과 가치관을 역사적 관점에서 분석한 대표적인 학자이다. 그는 심리역사뿐만 아닌 정체성과 심리사회 발달이론으로 유명하다.
에릭슨은 개인의 발달 과정을 세밀하고 역동적으로 분석하였는데, 이를 통해 수많은 임상치료와 임상연구, 발달연구를 실시하였다. 예를 들면, 미국의 인디언 부족인 Sue족에서 문제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을 인디언 문화의 역사적 관점에서 분석하여 임상 치료를 하거나, 일반 가정집에서 이상행동을 보이는 아동을 치료하기 위해 아이가 지금까지 부모 및 조부모와 어떤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그리고 그 아이에게 어떠한 주요한 사건이 있었는지 등을 폭넓게 분석하였다고 한다.
에릭슨의 이론에서 '역사'란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나 자신'을 뜻하는 개인의 역사이며, 다른 하나는 인류의 역사를 뜻한다. 개인의 역사는 앞서 언급한 미시적 관점에서의 역사이며 개인의 생활사(生活史)를 말한다. 생활사란 자기 자신이 살아가면서 체험하는 모든 것을 의미하며 그것이 곧 자신의 역사가 된다. 인류의 역사는 작게 보면 가족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사회 및 국가의 역사, 나아가서는 지구 전체의 역사를 뜻하는 굉장히 폭넓은 범위를 포함하고 있다.
모든 인간은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저마다의 정체성(identity)을 형성하게 되는데 심리역사학의 관점에서 보면 정체성 형성은 부모 및 조부모의 역사와 정체성과 관련되어 있으며, 나아가 내가 살아가는 시대의 흐름, 위기와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정체성이 형성되는 것은 '나'에 의해서도 형성되지만, 세대 및 지역사회, 국가에 의해서도 형성된다.
이처럼 '나'는 역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에릭슨의 심리역사학서 중에서 국내에 출판된 저서는 다음과 같다.
1. 간디의 진리
20세기 위인 중 한 명인 마하트마 간디를 심리역사학의 관점에서 재조명한 책이다.
비폭력을 추구한 간디의 가치관과 생애를 자서전과 여러 자료를 통해 폭넓게 분석한 책으로 에릭슨은 이 책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하였다.
2. 청년 루터
르네상스 시대의 종교개혁자이자 교육자인 마틴 루터에 관한 책이다. 400여 년 전의 인물을 심리역사적 관점에서 분석하였다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많이 놀라웠다. 루터의 아동기 및 청년기를 거쳐 그의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그러한 정체성을 중심으로 루터가 어떠한 삶을 살았고 세계에 영향을 끼쳤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심리역사학은 위의 언급한 도서 이외에 성 프란치스코에 대해 심리역사학 관점에서 분석한 논문 등 현대에서도 지속적으로 연구가 되고 있다. 심리역사학은 에릭슨 연구자(Eriksonian)를 중심으로 연구되고 있는 분야이며, 어떻게 하면 심리역사학적으로 인간을 분석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론에 관한 논문도 쓰이고 있다.
심리역사학은 에릭슨의 이론뿐만 아니라 정신분석 및 발달심리학 등 제학문에 대한 폭넓은 지식이 필요하여 접근하기 까다로운 영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리역사학을 통해 자기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온 것이 누구로부터 영향을 받았는지 등 자신에 대한 깊이 있고 폭넓은 분석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심리역사학의 관점이 아닐지라도, 나 자신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과정 자체는 나에게 삶의 의미와 교훈을 주는 의미 있는 성찰일 것이다.
사진출처
1. 에릭슨: https://namu.wiki/w/%EC%97%90% EB% A6% AD%20% EC%97%90% EB% A6% AD% EC% 8A% A8
2. 간디의 진리: http://www.yes24.com/24/goods/23021021?scode=032&OzSrank=1
3. 청년 루터: http://www.yes24.com/24/goods/101769?scode=032&OzSrank=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