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계승성(generativity)
우리 인간은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
그렇다면 내가 죽는 순간, '나'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일까?
정체성 이론가 에릭슨(Erikson)에 따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한다.
에릭슨은 인간의 발달단계마다 이루어야 할 발달과업이 있다고 말한다. 가령 유아기에는 양육자와의 친밀감을, 청소년기에는 자아정체감을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년기(대략 45~65세)의 발달과업으로 에릭슨이 제시한 것은 바로 '세대계승성(generativity)'이다(생산성이라고도 불린다).
세대계승성이란 에릭슨이 만든 용어로, '다음 세대를 양육하는 것에 대한 관심'을 뜻한다. Generativity라는 단어 자체가 세대(generation)와 창조성(creativity)의 합성어라는 점에서, '세대를 창조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세대를 창조한다는 것은 곧 '나를 다음 세대에 남기는 것'과 연결된다.
자식을 낳아 키우는 것은 세대계승성을 자연스럽게 실현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중년의 직장인이 후배를 양성하고 이끄는 것, 예술가가 작품을 통해 후대에 영감을 주는 것, 나아가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들어내는 작은 흔적 하나하나가 모두 세대계승성의 실현이 될 수 있다.
반면 다음 세대를 양육하는데 무관심하다면 어떻게 될까? 에릭슨은 이를 '침체(stagnation)'라 표현했다. 세대계승성의 실패는 사회로부터의 소외로 이어질 수 있다. 자녀를 양육한다 해도 학대나 방임의 태도를 보인다면, 이는 세대계승성의 성취라 보기 어려울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일부 연구자들은 세대계승성이 중년기가 아닌 청소년기부터 싹튼다고 본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자신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사회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고, 또래와의 관계 속에서 리더십과 책임감을 배운다는 것이다.
결국 '나'를 다음 세대에 남긴다는 것, 그것은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만이 아닌 후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행위를 통해 실현된다. 에릭슨이 말한 세대계승성은 우리가 후대에 물려줄 씨앗이며 나의 흔적이다. 우리가 살아가며 만들어낸 작은 영향력들이 모여 다음 세대에 전해지고, 그들의 삶에 뿌리내리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비록 육체적으로 사라질지라도, 정신적으로는 후대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대계승성을 실현할 수 있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 그리고 내가 만들어내는 영향력이 다음 세대에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 성찰해 본다면, 단순히 나라는 사람의 흔적을 남기는 것을 넘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