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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희 Jun 12. 2024

내가 정체성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

나,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는 학문 분야

나는 일문학을 전공했지만, 학부 4학년이라는 뒤늦은 시기에 심리학에 빠지게 되었다. 심리학을 깊이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4학년 때는 거의 모든 과목을 심리학으로 채웠다. 심리학은 내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학문이었다.


심리학에서 다루는 수많은 개념 중에도 '정체성(identity)'에 주제에 매료되었다. 교육심리학 수업에서 마르시아(Marcia)의 정체성 지위(identity status) 모델을 처음 접했을 때, 이 모델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개인의 정체성 발달 상태를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점에 빠졌던 것 같다.


Marcia의 정체성 지위 모델


정체성 지위 모델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자신의 가치관 등을 탐색하는 정체성 탐색(identity exploration) 과정의 유무와 특정한 가치관 등을 선택한 정체성 관여(identity commitment) 과정의 유무를 통해 개인을 네 가지 지위(status) 중 하나로 분류하는 것이다.


1. 정체성 성취(identity achievement): 스스로 정체성 대안을 탐색하고 특정한 정체성을 선택한 사람

2. 정체성 조기완료(identity foreclosure): 정체성 대안은 탐색하지 않고 특정한 정체성을 선택한 사람 (예로, 부모가 원하는 직업이나 가치관을 선택한 경우)

3. 정체성 유예(identity moratorium): 특정한 정체성을 선택하기 위해 열심히 대안을 탐색 중인 사람

4. 정체성 혼미(identity diffusion): 정체성 대안을 탐색하지도, 선택하지도 않은 사람


이 중에서도 나의 이목을 끌었던 것은 '정체성 조기완료' 지위였다. 이 지위는 정체성을 탐색하지 않고도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한 경우를 말한다. 당시, 나는 공부하러 학교의 지하 도서관에 자주 갔었다. 지하 도서관에 갈 때마다 많은 학생들이 토익 책 또는 공무원 책을 펴놓고 공부하고 있었다. 나는 이러한 모습을 보고 '사회가 정해놓은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아닐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가 정체성의 하위 영역 중 직업 영역에 해당하는 진로정체감(vocational identity; 직업인으로서의 나에 대한 인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석사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가 연구하는 연구 주제가 되었다.


나는 왜 많은 대학생들이 사회가 정해 놓은 길을 가려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이를 위해 일본 유학을 선택했고, 덕분에 '대학생의 정체성 형성과정'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공부를 하며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당시 심리학, 정체성 모두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던 나에게는 답을 찾기란 너무나 어려운 과제였다. 결국 답을 찾지 못하고 석사 과정을 마치게 되었고, 이 부분은 나에게 평생의 숙제로 남게 되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일을 하다가 다시 박사과정에 진학했을 때, 최근 정체성 연구에서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이론이 제시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론을 공부하면서 내 나름대로의 답을 찾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한국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이었다.


정체성은 개인과 사회 문화의 상호작용으로 형성된 결과물이다. 나는 지하도서관에서 보았던 대학생들이 자신의 주체성(agency)을 상실한 사람이라고 줄곧 생각해 왔지만, 내 생각은 틀린 것이었다. 이는 주체성이라는 개인적 요인으로만은 설명할 수 없는 사회적 현상이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후 글에서 다루고자 한다)


우연히 관심을 갖게 된 정체성은 내 삶을 뒤흔들어 놓았다. 나를 상담으로 이끌게 한 것도 정체성의 영향이 컸다. 정체성은 내게 너무나 어려운 주제이기에 평생 공부해야 하겠지만 그마저도 기대된다.



[그림 출처]

- Marcia의 정체성 지위 모델: https://www.mdpi.com/2079-3200/10/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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