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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꽃 Oct 16. 2020

나이는 숫자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친구에게서 온다

앞자리가 바뀌었다.

10대에서 20대가 될 때도, 20대에서 30대가 될 때도 그랬지만, 30대에서 40대가 될 때도 막상 앞자리가 바뀌면 별 감흥이 없었다.

오히려 19세, 29세, 39세가 더 불안정했다.

그나마 19세에는 20대가 주는 자유로움과 어른스러움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었지만, 별로 이뤄놓은 것도 없는 29세와 눈 깜짝할 사이 시간이 지나가버린 39세는 다가올 앞자리의 변화에 대한 막막함과 두려움, 약간의 서글픔과 낯섬이 더욱 크게 다가온 것 같다.

그러다 막상 30세, 40세가 되어 보니 내 삶에 큰 차이가 없으며, 그저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었으므로 또 그냥 받아들이며 살게 된 것 같다.

주변의 풍경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고 몸이 바뀔지언정 마음은 늘 그대로인 채였으므로,

'그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라고 위안을 삼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대학때 같은 모임에 있었으나 개인적으로는 별로 친하지 않은 후배가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아주 오랜만의 옛 지인의 결혼소식이었다.

모임의 멤버는 대략 스무 명쯤 됐는데, 우리 학번 10명, 아래 학번 10명 정도였다.

대학때는 막역했지만, 직장 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다보니 모일 일은 점점 줄어들었고, 결혼식이나 돌잔치가 있어야 만나졌다. 그러다 그마저도 육아를 기점으로 일년에 한번도 볼까말까한 사이가 되었다.

동기들끼리도 그러다보니 후배들과 같이 만난 것은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오랜만의 결혼소식이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선뜻 결혼식에 참석할 수가 없었다. 인원 제한도 있고 하니 동기들 중 가까이 있는 몇 명만 참석하기로 했다. 친구들을 통해 축의금을 보냈고, 결혼식에 참석한 소수의 친구들이 단톡방에 사진을 올렸다.  

참으로 오랜만의 사진이었다.

2년 전쯤 만났을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사진 속에는 중년의 아저씨들이 나이든 신랑 옆에 서 있었다. 언젠가 아버지 사진첩에서 본 아버지의 친구들과 비슷한 모습의 아저씨들이었다.

이전에 톡방에서 가끔씩 15~20년 전 사진들을 올리며 옛날 얘기를 하곤 했다. 그러면 그 때로 돌아간 것만 같아 기분이 묘했다.


현실을 깨닫는 데는 사진만 한 것이 없었다.

나이든 친구들의 모습을 보니, 나이든 내 모습이 보였다.

아직 주름이 있을 나이는 아니지만, 배나오고 후덕해진 애아빠들을 보면서 역시 배나오고 후덕해진 아줌마가 된 내모습이 보였다.

마치 이제야 내 나이를 인정하기라도 한듯, 피식 웃음이 났다.  

너 이제야 네 나이를 받아들인 게로구나!


40세의 나는 그렇게, 친구들의 사진 속에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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