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어둠이 아니었다. 어둠이 감추고 있는 빛의 실체가 있었다. 카를 구스타프 융은 그것을 '어둠의 빛'이라 명명했다. 캄캄한 시간을 통해서만 깨닫게 되는 것이 있었다. 오직 어둠을 통해서만 인도되는 빛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바다는 푸르다.(1권 107쪽)
용팔은 소설을 쓰고 책을 좋아하는 고래반점 사장이다. 불우한 어린시절로 인해 제대로 된 정규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책을 읽으며 삶의 자양분을 얻는 사람이다. 그래서일까 사춘기의 두 아들을 대하는 용팔의 태도는 다른 아버지들과 다르다. 인생이 무엇인지에 대해 포장하지 않고 날것 그대로 알려주면서 진짜 인생을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고등학생인 첫째 동현은 중국집의 건물주 최대출의 딸 서연을 좋아한다. 동현의 성적은 바닥이고 서연은 1등이다. 아이들의 성적 차이를 통해 부모와 그 가족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1등인 서연은 행복하지 않고,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이를 악물고 공부하는 반면, 동현은 공부는 못하지만 독서를 꾸준히 하고 아버지로부터 자기자신 뿐아니라 서연에 대한 마음까지 지지와 인정을 받으며 살아간다.
"동현아, 첫사랑은 별똥별의 섬광처럼 덧없이 사라져. 하지만 첫사랑의 기억은 살아가는 내내 위로가 되기도 하고 힘이 되기도 해. 첫사랑이 없다면 청춘의 기억도 없어. 나는 네가 조금 더 적극적이겄으면 좋겠다." (1권 206쪽)
용팔을 중심으로 한 인간 관계가 흥미롭다. 아내인 영선과는 둘도 없는 친구이자 동반자, 독서모임 친구인 시각장애인 인하와는 생각과 마음을 나누는 친구, 건물주 최대출에게는 철저한 을이다. 하지만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관계는 인혜와 인석과의 관계일 것이다. 용팔은 돈이 없는 인혜와 인석에게 음식을 공짜로 내어준 영선을 타박한다. 길고양이의 먹이를 챙겨주는 마음 따뜻하고 인정이 있는 용팔이지만, 어쩐지 사람에게는 인색하다. 그것은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하며 살아온 치열한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양이를 통해 내면의 따뜻함을 잃지 않은 인물로 보여진다. 그런 용팔이 처음에는 영선이 베푸는 호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불우한 자신의 어린시절과 화해하면서 인혜와 인석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팍팍한 삶 속에서도 양심과 배려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오히려 현실적이면서도 그 속에서 우리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살아야 하는지 더욱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에는 용팔 말고 중요한 인물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후천적 시각장애인 인하이다. 평범한 교사로 살았던 인하는 어느날부터 시력을 잃게 된다. 당연하던 것이 당연해지지 않게 된 인하의 절망은 상세히 소개되어있지 않다. 다만 그를 통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좀더 깊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싶다. 인하가 만난 정인이라는 여자는 시각장애인 화가이다.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것을 그린다는 것의 역설적 상황을 통해 '본다'는 것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된다.
"장애가 없을 때 그녀가 보았던 세계는 그녀 마음속에 얼마나 소중히 간직되어 있을까요? 눈을 감아도 온통 검은 하늘이고 눈을 떠도 온통 검은 바다뿐인데 그녀는 어떤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요?" (1권 191쪽)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길거리에서 만난 청년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말하라. 내가 그대를 볼 수 있도록...' 소크라테스는 청년에게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대의 외모만으로 그대를 알 수 없으니 내가 그대를 알 수 있도록 그대의 이야기를 들려주게.' (1권 195쪽)
그리고 소설 속의 소설, 용팔의 메모를 통해 작가는 '어둠 속에서도 바다는 푸르다'는 주제를 드러낸다.
'음악은 음표 안에 있지 않고 음표와 음표 사이에 있는 침묵 속에 있다.'는 모차르트의 말을 나는 신뢰한다. 슬픔과 슬픔 사이의 침묵을 노래하자. 고통과 고통 사이의 침묵을 노래하자. 체 게바라처럼. 넬슨 만델라처럼. 안중근처럼. 이순신처럼. 어둠 속에서도 바다는 푸르다. (2권 127쪽)
시각장애인, 소외 계층, 청소년, 소시민, 부자, 세입자 등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의 관계를 통해 작가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삶. 희망. 믿음. 위로. 사랑.
전체적으로 용팔을 중심으로 한 서사는 인상적인 부분이 많이 있었지만, 작품의 후반부에서 일부 등장인물 행위의 의미를 알아채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아쉬움이 남았다.
끝으로, 작가가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여러 이야기들 중에 마음에 남는 부분이 있어 옮겨본다.
매너라는 단어의 원래 뜻은 '고삐를 쥐다.'래. 그 고삐는 상대방을 컨트롤하는 고삐가 아니라 나 자신을 컨트롤하는 고삐라는 거야. 내가 먼저 나 자신의 품격을 만들면 결국엔 상대방에게도 편안함과 신뢰를 줄 수 있다는 것이 매너의 원래 뜻이래. 그러니까 뭣이냐, 매너라는 말은 누군가에게 예의를 지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는 거야. 매너는 내가 먼저 나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고, 나를 지키기 위한 존엄이 결국은 상대방의 존엄까지 지켜주는 것이니 나와 상대방 모두를 위한 것이래.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서 매너는 나 스스로 나의 존엄을 지키는 거야. (1권. 9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