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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꽃 Apr 17. 2021

아버지에게 갔었어

아버지가 알고 싶다면, 아버지가 궁금하다면, 아버지와 화해하고 싶다면.


'아버지에게 갔었어'

이 한 문장에 멈춰 차마 책을 펼치지 못했다.

시멘트 냄새가 풍기는 작은 집의 외벽. 오래된 빨간 대문과 양 옆으로 난 작은 창, 지붕을 덮고도 모자라 아래로 늘어진 풀. 짙은 풀밭 위에 단단하게 서서 하늘을 받치고 있는 표지에 담긴 작은 집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작가 이름은 몰라도 책 제목 안다는 '엄마를 부탁해'의 작가 신경숙.

거의 오열을 하면서 읽었던 책이었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이 남아있다.

그녀가 전하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궁금했지만 조심스러운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나역시 최근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고 그에 대한 짤막한 글을 쓰고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 언젠가 내가 아버지에게 당신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내가 무엇을 했다고? 했다. 아버지가 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내가 응수하자 아버지는 한숨을 쉬듯 내뱉었다.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살아냈을 뿐이다,고.


딸을 잃고 홀로 아픔을 삭이며 살아가는 주인공 '헌'이 고향 J시를 찾는다. 오랫동안 발길을 끊었던 친정. 아픈 어머니가 치료차 서울에 머물게 되면서 홀로 남겨진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서. 아버지는 일찍 전염병으로 부모를 여의고 전쟁과 4,19 혁명 등 격동의 시기를 한 집안의 장남으로 살아낸 인물이다. 위로 형 셋을 잃고 장남의 무게를 짊어지며 개인의 행복보다는 집안의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살아왔다. 가진 것은 없지만 따뜻한 아버지이자 묵묵히 자신이 맡은 것을 해내는 책임감있는 가장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는 뇌가 잠들지 않는 상태다. '나'는 그런 아버지와 함께 지내며(1장) 과거의 기억을 더듬고(2장) 오래된 나무 궤짝 속에 담긴 아버지의 삶을 들여다보고(3장) 아버지와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의 말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4장). 아버지로서의 아버지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아버지의 삶을. 그것조차도 기억과 타인에 의존한 객관적일 수 없는 것이지만, 아버지도 처음부터 아버지가 아니었으며, 그저 자신의 삶을 오롯이 살아낸 한 인간이라는 것을 인식하며 아버지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중 순옥의 등장은 다소 의아했다. 아버지는 순옥에게 갔다가 누나와 아들의 손에 이끌려 돌아온다. 순옥은 아마 아버지 자신의 행복이었을 것이다. 다른 이름을 벗어버리고 잠시나마 추구했던 개인의 행복을 뒤로 하고 다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3장 '나무궤짝 안에서'가 좋았다.

우연히 나무궤짝 안에 있는 편지를 발견하면서, '나'는 아버지의 삶에 한 발 다가가게 되는데,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마음, 개인적인 생각들이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나'는 편지를 통해 아버지를 엿보며 아버지의 마음을 느끼게 된 것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손바닥으로 글씨가 번진 자리를 쓸어보았다. 어떤 마음들이 손바닥에 사진처럼 찍히는 느낌이었다. (167쪽)


마지막 5장 '모든 것이 끝난 그 자리에서도'에서는 '나'가 그간 소원했던 아버지의 삶 속에 자리잡고 아버지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이해하고자 한다. 말미에서 '나'는 아버지가 하는 말을 받아적어내려간다. 자신의 삶이 담긴 물건을 자식들에게 남기며 삶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나지막이 읊조리는 아버지의 유언과 같은 음성이 들리는 듯하여 숨죽여 귀기울이게 된다.


살아냈어야,라고 아버지가 말했다. 용케도 너희들 덕분에 살아냈어야,라고.(416쪽)


작품 속 아버지는 작가의 아버지가 아닐 테지만 작가와 작가의 아버지의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그랬다가 다시 이건 나와 내 아버지의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다시 고개를 든다. 묵묵하게 책임을 다하고 뒤에서 소리없이 자식의 미래를 응원해주고 가정을 돌보며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

책을 읽으며 내내 나의 아버지의 '삶'을 상상해보았다. 우리 아버지는 어땠을까. 어린 시절 전염병으로 누나를 잃고 넷이나 되는 동생의 형으로서, 장남으로서, 여자의 남편으로서, 세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리고 이름 석 자 가진 오롯하고 유일한 한 인간으로서 어떤 삶을 살았을까.

우리 아버지도 왠지 삶의 끝에서 '살아냈다'라고 말할 것만 같아 가슴이 먹먹해졌다.


다시 시작할 수 없는 삶이어도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것이 숨을 받은 자의 임무이기도 하다는 것, 그 곁에 읽는 것과 듣는 것과 보는 것이 있기도 하다는 것, 그것이 예술이라는 것.('작가의 말'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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