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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꽃 May 08. 2021

사람들은 왜 이어폰을 꽂고 있는 것일까

나는 음악을 크게 듣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워낙 귀가 예민한 편이라 작은 소리에도 충분히 반응할 수 있기에 어느 정도 데시벨 이상의 소리에는 피로감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이어폰을 꽂고 공부한다는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줄도 모르고 한참 공부에 매진해야 할 고3때, '패닉'과 라디오에 꽂혀 내내 이어폰을 꽂고 있었더랬다.(이적은 여전히 애정하는 뮤지션이다)

대학 이후 생계를 위한 공부를 할 때에서야 비로소 내 귀가 예민하다는걸 깨닫게 되면서 대중교통 이외의 곳에서 귀에 이어폰을 꽂는 일은 거의 없었다.

공상하는 것을 좋아하고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지 못하는 성격 탓도 있었겠지만, 귀에 이어폰이 꽂혀 있으면 좀처럼 집중이 되질 않았다. 그러니 음악을 들으며 다른 일을 동시에 잘 하는 사람을 보면 신기하기까지 했다.


스마트폰과 무선이어폰이 세상에 나오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어폰 속 세상으로 들어가는 동안에도 내게 이어폰은 무용지물이었다.

라디오는 거의 듣지 않았고, 음악은 TV나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음악을 좋아했지만 보급형 스피커를 통해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앞선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내 삶은 결혼 전과 후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육아 전과 후로 나뉜다.

벌써 8년차 육아중이지만, 아직 고단함과 피로감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아이가 클수록 또다른 고민과 어려움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몸과 머리를 쉬는 일이 쉽지 않다.

게다가 나는 워킹맘이지 않은가.

9시경 아이를 재우면서 함께 잠드는 일이 다반사이므로, 밤에 가질 수 있는 고즈넉한 자유의 시간을 누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된 한 음악 프로그램에서 접하게 된 음악은 신선한 충격과 큰 울림을 주었다. 가슴을 쿵쿵 두드리는 듯한 그들의 음악에 전율을 느끼게 되었고, 밤이면 아이들이 잠든 깜깜한 방에서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찾아 듣게 되었다. 나는 뒤늦게 '포레스텔라'의 음악에 푹 빠져 뒤늦은 사춘기를 앓았다.

아이들 때문에 귀에 꽂게 된 블루투스 이어폰은 나를 또다른 세계로 안내했다.

더이상 배경음악으로서가 아니라 음악 자체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고, 온 세상이 그 안에 가득 차 있는 경험. 볼륨을 높이면 높일수록 더욱더 그 세계로 깊이 들어가 나를 잊고, 내가 처한 상황과 고민과 갈등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음악과 그것을 듣는 나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하루종일 집에서 아이들에게 치인 미세먼지 짙은 저녁, 양손에 쓰레기를 버리고 들어오는 길, 석양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들었던 이어폰 속 음악에서, 나는 치유받았고 위로받았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몇 년 동안 그토록 갈망했던 진짜 '자유'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가 보면 내가 되게 불행하거나 괴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평범한 직업을 갖고 있으며, 때때로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스스로 치유하며 살아가는 감정이 조금예민한 보통 사람이다.

모든 평범한 사람이 그렇듯, 혹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 그렇듯, 사람이라면 누구나 외로움을 느끼고 자유를 갈망한다.

이제야 나는 사람들이 왜 이어폰을 꽂고 자신만의 세상으로 들어가려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적어도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으며 쉴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라는 것을 나는 안타깝게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오래전 한 스포츠용품 회사에서 이런 광고를 한 적이 있다.

한 사람이 달리기를 하고 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달리는 시간 그 자체를 즐긴다. 온전히 그 자신만을 위한 시간임을 내세우며 그 시간을 해당 스포츠용품이 함께 한다는 내용의 광고이다.


사람마다 방식은 다르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자신만을 위한 시간은 꼭 필요할 것이다.

하루를 마무리한 후 깊은 밤에 열리는 블루투스 이어폰 속의 거대하고 평화로운 세상.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는 누구나 자기의 세계에 파묻힐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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