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복날에 개고기 먹이는 대표
나도 삼계탕 먹고 싶다고요..
오늘은 비가 무진장 내리지만, 초복을 기념 삼아
삼복더위 복날에 있었던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내 인생 첫 회사에 다니던 시절, 아주 무더운 여름이었다.
지금은 시간이 흘러 초복이었는지, 중복이었는지,
혹은 말복이었는지 그날을 정확히 기억 못 하지만,
지금도 그날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대표를 비롯하여 의사결정권이 있는 사람들은
개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몸보신을 위해 개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하였고,
나에게 거부할 권리 따위는 없었다.
회사에서 첫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더니
'내가 그 사람이 되겠구나' 하며
도살장에 끌려가듯이 차에 올라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꽤나 허름한 로컬향을 풍기는 곳이었다.
빠르게 메뉴판을 스캔해 보니
아래쪽에 '삼계탕'이라는 글자가 볼드체로 눈에 들어왔다.
나는 눈치를 보고 삼계탕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나 말고도 개고기를 안 먹는 동료가 한 명 있었기에
눈치도 덜 보이겠다 싶었다.
자리에 앉아 메뉴를 주문할 때가 되자
나는 개고기를 안 먹는 동료 한 명의 눈치를 봤다.
그때 그 동료는 삼계탕을 먹겠다고 하였고
나도 재빨리 삼계탕을 먹겠다고 프리라이딩 했다.
그런데 웬걸 동료가 삼계탕을 먹는다는 결의만 승인되었다.
내가 삼계탕을 먹겠다고 하자
대표는 개고기를 먹어봐라고 하며, 내 발언을 기각하였다.
그렇게 대표는 탕 3개에 삼계탕 1개를 외쳤고,
내 의지와 무관하게 주문이 들어갔다.
곧이어 음식이 나왔다.
음식을 남기는 것이 익숙지 않은 나였지만,
도저히 나와는 맞지 않아
예의고 나발이고 수저를 빨리 내려놓았다.
나는 아직도 그 허름한 공간과 향을 잊지 못한다.
이건 생명의 차등 문제가 아니라
그냥 먹기 싫은 건 먹기 싫은 거다.
이보게 대표양반. 내가 만만했나 본데
인생 맘대로 살다가 큰코다치는 수가 있을 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