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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민 Nov 21. 2023

수요 없는 공급

일 그리고 사랑의 관점에서



  언제부터 알게 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요 없는 공급'이라는 말이 젊은 층에서 유행하는 것 같다. 대학시절 경제학원론, 경제수학, 미시경제, 거시경제 등 소위 경제학이라 불리는 학문을 '찍먹'한 경험이 있어서 수요와 공급이라는 말은 익숙하다. 한데 도통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일이 없는 단어이기도 하다.


  P-Q 그래프 상에서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두 곡선이 만나는 점에서 균형점이 형성된다는 게 수요-공급 개념의 출발인데 경제신문을 읽을 때가 아니면 이런 생각 할 일이 잘 없기도 하다.


 그런데 웬걸 상황이 달라졌다. 요즘은 심심찮게 '수요 없는 공급'이라는 말을 듣는다. 단어의 뜻은  필요한 사람이 있어야 주는 사람이 있는 건데 필요하지도 않은 걸 줄 때를 의미한다. 요즘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데 자꾸 생산하거나 내보내는 상황에서 사용한다고 한다. 유튜브, 틱톡 등 콘텐츠 플랫폼이 성장하고 다양한 콘텐츠가 과공급되면서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 같다. 최근'그쪽도 홍박사님을 아세요' 챌린지가 대표적인 수요 없는 공급이다. (최근이 아니면 말고..)


  나는 '수요 없는 공급'이라는 말을 듣고 일과 사랑이 떠올랐. 얼마 전 TV를 돌리다 '성적을 부탁해 티처스'라는 예능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학생들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열정을 다해 노력하는 강사들의 삶이 눈에 들어왔다. 소위 1타 강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전국의 수많은 학생들이 그들의 강의를 원한다. 그들을 찾는 어마어마한 수요가 있기 때문에 많은 돈을 벌고 또 그렇게 열정을 가지고 공급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나는 요즘 열정도 보람도 없다. 스스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수요가 느껴지지 않나 보다. 왜 나는 그들처럼 열정을 다해 일하지 않는가? 나를 찾아주는 사람은 어디 있는가. 나는 정말 수요 없는 일을 하고 있는가.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이 균형점에서 만나듯이 사랑을 하면 사랑하는  상대방을 만날 수 있다. 나도 한 때 균형점에서 사랑을 했다. 한데 지금은 아니다. 이 순간 너무 보고 싶은 사람이 있지만 이제 그 친구는 더 이상 나를 원하지 않는다. 수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더 이상 만날 수 없다. 우리가 만날 균형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사랑은 이제  '수요 없는 공급'다. 그렇지만  나는 그 친구가 너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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