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환 선생님과는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성함을 기억하게 된 것은 그 보다 훨씬 이전이었다. 2007년무렵 석사논문을 수정해 책으로 낼까하고 국학자료원에 출간 의뢰를 하러 갔다가 그곳에서 선생님이 수집하여 발간한 “태평양노동자”의 영인본을 접했다. 영화배우 주인규가 관여했던 태평양노동조합에서 발행하던 “태평양노동자”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이것을 수집해 온 박환 선생님도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선생의 이름을 기억하였다. 그땐 막연히 선생님이 신용하 선생님 정도의 원로인줄 알았다.
페이스북을 주로 활용하면서 뵌 적은 없지만 페북을 통해 소통하는 페북 친구들이 다수 생겼다. 박환 선생님도 그 중 한분이었다. 2020년 홍성후 선생과 “평양, 1960”을 내고 그 책을 박환 선생님께도 보내드렸다. 그 이후 선생님께서 당신이 쓴 책이 나오면 내게 보내주셨다. 그렇게 페이스북을 통해 근황을 알고 지냈다. 그러던 중 개업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노마만리로 박환 선생님이 찾아오셨다. 처음 뵈었는데도 불구하고 페이스북을 통해 알고 지낸 탓에 마치 오랜 지인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2022년 6월 9일 노마만리 방문 기념
그때 2층에서는 1980년대 영화운동과 관련한 “영화운동의 최전선”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선생께서 당신의 저서들도 그 숫자가 꽤 되는데 이런 식으로 전시를 하면 좋겠다며 지나가는 식으로 말씀하셨다. 좋은 생각인 것 같았다. 언제 기회를 만들어 선생님의 저서 전시회를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박환 선생님은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에 오실 일이 있으면 꼭 노마만리에도 들러주셨다. 평일의 카페는 한산하기에 커피를 앞에 두고 선생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오랫동안 나눌 수 있었다.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북한 방문 이야기나 독립운동사에 관한 것을 질문 드리면 항상 친절하게 알려주셨기에 선생님께 이야기 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가끔 골동품을 감정하듯 내가 가진 자료들을 봐 달라고 부탁을 드릴 때도 있는데 이때 자료에 관한 이야기를 새롭게 알게 되는 경우들도 많았다.
2022년 12월 28일 중앙대학교 접경인문학 라키비움 전시 방문 왼쪽부터 전우형, 김명우, 한상언, 박환
2023년 1학기를 마지막으로 정년을 하게 되셔서 그런지 선생님은 정년 이후의 삶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시고 계셨다. 역사를 테마로 카페, 전시장, 도서관이 구비된 복합문화공간을 마련하는 것도 하나의 가능성 있는 모델이라고 생각하신 듯, 그와 같은 공간인 노마만리에 대해 관심을 보이셨다. 공간 운영에 관해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들려드리면 선생님이 생각하는 구상을 말씀해주시기도 하셨다. 정년 후 선생님이 본격적으로 만들어 운영하실 “문화당”의 모습이 어떠할지 궁금하다.
매일 아침 38년간 사용하던 연구실을 조금씩 비우고 있다는 박환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선생님의 정년을 기념해 그간 선생이 발간한 저작을 한곳에 모아 보는 전시회를 열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뜻깊은 선물이 될 것 같았다. 올 초 “박환, 역사가의 길”이라는 저작 전시에 관한 계획을 말씀드렸고 선생님도 흔쾌히 내 제안에 찬성하셨다. 그러면서 정년을 준비하며 그간 논문으로만 발표해 두었거나 아예 발표하지 않았던 글을 모아 책을 발간하고 있는데 그 마지막 책이 출간될 8월 이후에 전시를 열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원래 계획보다 두 달 일찍 정년퇴임 논총의 마지막권이 세상에 나왔고 9월에 개최하기로 했던 박환 선생님 저작 전시 역시 7월로 앞당겨 졌다.
김종원(좌), 이효인(우)
동쪽바다 선한이웃 육수희 선생님
2023년 7월 4일 "박환, 역사가의 길" 개막식
7월 4일을 전시 오픈일로 정하고 차근차근 전시를 준비했다. 박환 선생님은 틈날 때 마다 오셔서 본인의 저서와 논문 별쇄본 등 전시에 필요한 책들을 가져다 주셨다. 그 중에는 조부 중산 박장현 선생과 부친 박영석 선생의 책들을 비롯해 역사가 가족답게 형제들의 책과 논문, 제자들의 학위논문, 한국민족운동사연구의 학회지 그 외 개인적 기록물 등도 포함되었다. 나는 흩어지기 쉬운 자료들은 전시대 안에 넣고 그 외 자료들은 공간을 구획하여 배치하였다. 그리고 현수막과 간판 등을 제작하고 홍보에 쓰일 포스터는 김명우 선생에게 만들어 달라 부탁했다.
애초 개막식은 조촐하게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선생께서는 자녀 두 분과 사위만 참석하겠다고 했다. 그렇다고 손님이 너무 적어도 안 될 것 같았다. 개막식 후에 있을 식사를 위해 주문한홈파티 음식은 최소 10인분이기에 10-15명 정도의 손님은 오셔야. 했다. 박환 선생님의 제자인 독립기념관의 김용진 선생에게 참석을 부탁하고 꽃다발 증정식이 있으니 꽃다발을 사와 달라고 했다.
한상언영화연구소 측으로 김종원, 이효인, 이진숙 고문님께 연락을 드렸고 참석해주시기로 했다. 여기에 김수덕, 최두영 선생님도 이효인 선생님과 함께 오셔서 축하해주기로 했다. 노마만리를 물심으로 지원해 주시는 심혜경, 김명우 선생도 참석을 약속했다. 심혜경 선생님은 때마침 천안을 방문한 박문칠 감독과 동행하기로 했다. 천안의 지인들에게도 행사 소식도 알렸다. 식사를 대접하자는 생각으로 오카리나 연주자 육수희 선생님께 연락을 드리자 개막식에서 오카리나 연주를 하시겠다고 하셨다. 천안사랑의 황인아 선생님도 취재 차 오시기로 했다. 조촐하게 준비했던 개막식이 풍성해졌다.
전시장을 방문한 희망레일, 대륙학교 선생님들
행사 당일 오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분당에 사시는 김종원 선생님을 모시고 천안으로 왔다. 박환 선생님 가족분들을 포함해 손님들이 하나 둘 도착했다. 개막식 소식을 듣고 한준택 선생님, 안병민 박사님 내외, 정명희 선생님 등 박환 선생님의 손님 몇 분이 오셨다. 개막 전에 오신 첫 손님들이었다.
6시부터 2층 전시실에서 시작된 개막식은 동쪽바다 선한이웃 육수희 선생님의 오카리나 연주를 시작으로, 김종원 선생님의 인사말, 이효인 선생님의 개막사, 박환 선생님의 기념사, 가족과 제자들의 꽃다발 증정, 기념사진 촬영 순서로 진행되었다. 김종원 선생님은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을 예를 들어 가며 덕담을 해주셨다. 저녁 무렵부터 빗발이 거세게 내렸지만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모두들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박환 선생님 저작 전시는 8월 27일까지 열리며, 이후에는 "천안 사람, 민촌 이기영" 전시가 이어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