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영화 1960.2.
땅
1959년 작
수 백 수천 년의 력사를 두고 우리 농민들의 생활과 신분을 얽매여 놓았던 기본 고리는 토지에 대한 지주들의 사’적 소유 제도에 있었다. 그처럼 오랜 세월을 두고 봉건 사회가 군림할 수 있었던 유일한 지반도 바로 다름 아닌 토지에 대한 봉건적 독점에 있었다.
력사에 물어 보자. 땅을 두고 얼마나 많은 눈물겨운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가!
더욱이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가장 야만적인 방법으로 조선 농촌을 수탈하였으니 그로 인해 빚어진 가지가지의 참상은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다.
땅을 뺏기고 땅을 잃은 우리 부모 형제들이 선조 대대의 백골이 묻혀 있는 고향을 등지고 이역 천리 만주 땅으로 건너 간 사람은 그 얼마였으며 현해탄을 눈물로 메우며 일본으로 건너 간 사람은 그 얼마였더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문전의 옥답은 다 어데 두고
쪽박의 신세가 웬 말이냐
이 노래는 간악한 일제 식민지 략탈 정책이 빚어 낸 조선 농촌의 몰락상, 남부여대하고 고향을 떠나는 우리 농민들의 쓰라린 심정을 그대로 말해 주고도 남음이 있다.
리득홍 씨나리오, 전동민 연출, 박경원 촬영으로 된 예술영화 《땅》의 제1부 전편과 후편은 이미 관객들이 잘 알고 있는 작가 리기영의 동명 소설의 제1부를 기본적으로 포괄하고 있다.
물론 원작이 가지는 방대한 화랑을 그대로 다 형상화하지는 못하였으나 각색자와 연출자를 비롯한 창조자들은 원작의 사상에 충실히 의거하면서 지난 시기 조선 농촌의 발전에 질곡으로 되었던 지주의 토지 소유 제도를 없애고 땅을 직접 밭갈이하는 농민들 자신의 소유로 전변시킨 북조선 림시 인민 위원회가 1946년 3월 5일에 발표한 력사적인 토지 개혁의 법령 실시가 어떻게 북반부의 농촌 경리를 그 세기적인 침체와 락후로부터 건져 내여 급속하게 개변시켜 나가는가 하는 것을 중심 주인공 곽바위의 운명(어제’날의 머슴으로부터 인민의 대표자로)을 통하여 극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제1부 전편에서는 프롤로그에서 곽바위 일가의 쓰라린 생활사를 간략하게 보여 주면서 인간 이하의 천대와 멸시, 힘에 겨운 고역, 철창… 등 곽바위의 머슴살이의 역겨운 나날과 위대한 쏘베트 군대에 의한 8.15 해방, 3.7제, 토지 개혁 법령의 실시에 이르는 조선 력사에 특기할 력사적 대 사변들을 수록하고 있다.
화면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몰락하는 계습들의 악랄한 반항을 제압하면서 《깨끗한 백지에 써 놓은 글과 같이 분명한》(김일성) 총명성과 소박성, 근로 애호적인 정신의 풍부성으로 이름 높은 우리 인민들의 정신적 풍모의 특성들이 새로운 조건하에서 발전 공고화되는 과정들은 우리에게 깊은 인상과 공감을 자아내게 한다.
회상은 어느 때나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사랑하는 주인공들의 비참한 생활의 화폭들을 더듬지 않을 수 없다.
가난에 시달리고 빚에 쪼들리다 못해 제사 공장으로 팔려 가 병들어 죽게 되는 곽바위의 단 하나 밖에 없는 누이동생 분이, 소가 아니라 사람이 연장을 끌며 밭을 갈다 왜놈에게 매 맞고 쓰러져 한줌의 흙을 움켜 쥔 채 《땅!》 이 한 마디를 유언으로 남기고 운명한 곽바위의 아버지, 진종일 어두컴컴한 물방아’간에서 백설 같은 입쌀을 섬으로 찧어 냈댔자 식은 밥 한 덩이도 변변히 차례지지 않는 곽바위 (전두영 분), 빚값에 첩살이를 살기보다는 풀’길 없는 자기 운명을 차라리 죽음으로 택하려던 순옥이 (리춘자 분), 황무지에 옥수수 몇 포기를 심은 것조차 몽땅 앗기워야 하는 박첨지(김동규 분) … 설음에 겨워 소리 한 마디를 불렀다고 하여 순사놈에게 뺨을 맞고 벌금까지 물어야 하는 왜놈의 세상, 지주가 쥐락펴락하는 세상에서 인민들의 처지는 바로 이러했다.
이것은 벌말이라는 자그마한 조선의 한 농촌에 국한된 현상이 결코 아니다. 이것은 일제 식민지 통치하에서 사’적 토지 소유 제도가 빚어 낸 과거 조선 농촌의 전형적인 현상인 것이다.
우리는 화면들에서 우리 부모들이 어떻게 살았으며 우리 자신들이 어떻게 살아 왔는가 하는 것을 다시금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곽바위는 굴욕에 찬 머슴살이를 하면서도 어떻게든 누이동생을 공장에서 데려내 다 행복하게 살아 보리라는 한 가닥 희망을 품고 고병상(황민 분)의 갖은 학대와 멸시를 참아 가면서 황소같이 억센 자기 힘을 깡그리 바쳐 종살이에 충실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차례지는 것은 온몸에 흐르는 비지땀, 노닥노닥 찢어진 베잠방이, 해진 초신발… 이것이 전부였다.
고가 놈은 누이의 죽음을 접하고 비통해 하는 곽바위에게 참새가 조밭을 들짱낸다며 빨리 조밭으로 나가라고 호령질 한다.
인간의 탈을 썼을 뿐 량심이라고는 손톱눈만큼도 없는 이 자에게는 한 인간의 생명보다도 자기의 좁쌀 한 알이 더 귀중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가장 간악하고 교활하며 린색하고 교만하며 내흉스럽운 지주의 추악한 형상과 함께 참기 어려운 인간적 모욕과 울분과 심’적 고통을 온 육신의 안’간 힘을 다 쓰며 참고 있는 곽바위의 형상을 보게 되는 바 (푸들푸들 떠는 그의 안면 표정, 서리’발이 어린 그의 눈초리) 진실한 생활의 체험을 통해서만이 창조도리 수 있는 이때의 전두영의 연기는 또한 얼마나 진실한가.
드디어 해방의 날은 왔다! 만세와 환호성에 들끓는 군중들 속에 힘껏 만세를 외치는 곽바위의 기쁨 가득한 얼굴을 보라. 쏘베트 군대에 의한 조선의 해방은 비단 민족적 해방만이 아니라 계급적 해방도 동시에 가져왔으니 더욱이 곽바위와 같이 십여 년을 머슴으로 살아 온 사람에게 있어서 해방의 기쁨은 한량없는 것이다. 징용에 끌려갔던 강균(김주성 분)이며 동수(김상운 분)도 돌아왔다. 감격과 흥분 속에 기쁨의 나날은 흘러갔다.
3.7제가 실시되었다. 농촌의 일부 동요하는 계층들이 낡은 농촌과의 사상적 련계를 끊고 자기를 개진하면서 민주 건설의 대렬로 넘어 오는 과정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으니 여기서 창조자들은 토지개혁에 앞서 3.7제를 사건적으로 깔면서 농촌의 복잡한 계급투쟁의 한 단면을 보여 주고 있다. 동요하는 인물들로서는 유첨지(김걸 분), 순이 어머니(김춘실 분) 등의 형상이 바로 그러하다.
김일성 원수를 수반으로 하는 북조선 림시 인민위원회는 토지개혁 법령을 발표함으로써 진정한 인민의 주권임을 실증하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일제와 매국적 친일 분자들의 토지를 무상으로 몰수하여 밭갈이하는 농민에게 무상으로 분배할 데 대한 문제는 이미 조선 인민의 가장 암담하던 시기에 김일성 원수에 의하여 직접 작성된 조국 광복회 10대 강령에 명백히 지적되어 있었던 것이다.
해방 후 우리 사회 제도의 근본적 변화는 곽바위를 인간 최하층의 머슴으로부터 농촌 위원회 위원으로, 당원으로 즉 벌말의 핵심적 인물로 장성시켰다.
창조자들은 벌말 토지 개혁 실시의 지도자로 면당 위원장 강균과 함께 원작에는 없는 기관구 로동자인 김제화(홍치권 분)를 등장시킴으로써 로동계급의 령도에 의한 로농 동맹의 불패의 사상을 강조하고 있는바 실지 토지 개혁으로 인한 북반부 농촌의 급속한 발전과 농민들의 투쟁은 로동 계급과 그의 전위 부대인 조선로동당의 령도가 없이는 불가능하였다.
강균이나 김재호가 일치하게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바로 우리 당의 당원으로는 곽바위와 같은 사람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곽바위가 토지 분여 증명서를 량 손에 받든 채 눈물에 젖어 김일성 장군의 초상화를 우러르며 김일성 장군 만세를 힘껏 외치는 것이라든가 자기 이름으로 패’말이 박힌 논판에 엎드려 한 아름 흙을 움켜쥔 채 지난날의 뼈아픈 자기 생활을 회상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생활의 진실인 것이다.
박첨지가 《여보! 마누라 우리 집에도 논이 생겼소. 임자도 가서 인사를 하란 말이야.》
하고 너스레를 놓으며 땅에 대하여 입을 맞추었다는 이야기 등을 어찌 눈물 없이 그냥 지나칠 수 있을 것인가.
이와 대조적으로 화면은 력사 무대에서 물러 나갈 운명을 지닌 고병상과 주태로와 같은 인간들이 토지개혁을 두고 랭가슴을 앓으며 낡은 사회의 환상에 사로 잡혀 소위 《진정서》에 다까야마(高山)란 도장을 그대로 찍는 거라든가 산신에게 비는 형상 등을 보여 주고 있는바 이것은 또한 얼마나 희극적인가!
이와 같이 제1부 전편에서는 해방 전으로부터 토지개혁에 이르기까지의 력사적 시대상을 포괄하면서 농촌에 실지 있은 다양한 성격들을 등장시키고 새 것과 낡은 것과의 갈등 속에서 개변되는 농촌의 주요 사변들을 해명하고 있다.
물론 우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영화에서는 원작자에 의하여 설정된 등장인물, 디테일들을 화면상 제약으로 다 살리지는 못하였으나 그렇다고 하여 원작이 가지는 사상 – 예술성을 약화시킨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원작의 사상에 충실히 의거하면서 디테일들을 발전적으로 보강시킨 것도 있는바 례하면 전순옥을 윤상렬(허백산 분)의 첩으로가 아니라 처녀로써 이야기를 엮어 간 것이라든가 순옥이를 강균이가 아니라 직접 곽바위가 구원케 함으로써 반봉건 사회의 같은 희생아들의 사랑의 계기를 지어 준 것도 타당한 해결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이밖에도 서울로 도망쳤던 윤상렬을 간첩으로 등장시킨 것도 슈제트 발전에 무리 없이 력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상응하게 치렬한 계급투쟁의 면모를 더욱 부각시켰다고 본다.
《땅》의 제1부 후편에서의 중심 사건은 토지 개혁 이후 땅의 주인으로 된 곽바위를 비롯한 박첨지, 조대모(박민 분), 천석(리종건 분) 등 농민들을 중심으로 하여 농민들이 당의 지도 밑에 두레를 뭇고 솔버덩 개간 공사를 진행하는 사업이다.
날이 갈수록 곽바위와 순옥의 사랑은 무르익어 갔다. 곽바위는 읍에 드나드는 참에 짬짬이 나무’짐도 해다 주고 터’밭도 가꿔 준다. 순옥이는 물론 순옥의 어머니도(리숙 분) 《저 사람을 사위로 삼았으면-》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이들의 사랑은 결국 강균의 중매로 결실을 보게 되었다. 머슴이던 곽바위가 땅의 주인이 되고 장가를 든다는 것은 크낙한 경사가 아닐 수 없다.
결혼식 장면을 포함하여 이 영화에서 특히 소박하고 근면한 우리 인민들의 내’적 감정에 알맞게 민족 음악을 도입함으로써 연출가와 창조자들이 민족적 특색 구현에 심중한 노력을 기울인 것은 기쁜 일이다.
영화의 전편에서 이미 그 조직을 본 두레는 연장과 축력, 로력이 부족한 조건하에서 서로 힘을 모아 일하는 우리 민족의 고전 전래의 아름다운 풍습인 것이다. 여기서 두레는 새로운 제도 하에서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된 사회주의 집단화에로의 이행을 안받침하고 있는바 우리는 더욱 원작자의 발전하는 농촌 현실 생활에 대한 깊은 파악과 통찰력에 감탄하게 된다.
개간 사업과 증산 투쟁의 선두에 선 곽바위! 그는 자체의 성격 발전 속에 토지 개혁 후의 북반부 농민들의 생활과 투쟁의 일반적 정형을 내포하고 있는 우리 농촌이 낳은 주인공이며 전형인 것이다.
무지와 몽매 속에서 허덕이던 바로 곽바위와 같은 농민들이 새로운 조건하에서 어떠한 난관도 묵묵히 극복해 나가면서 말보다 행동에 앞서 사업에서 적극성과 창조적 재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성격적 발전의 특성은 저절로 이룩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우리 당의 령도의 현명성과 직접적으로 련결되어 있다.
때문에 곽바위가 벌말 앞벌의 물’줄기를 당겨 큰 보를 막고 황무지-솔버덩을 30정보의 논으로 바꿀 창조적 지혜를 발휘하는 것은 우연하지 않다. 바로 다름 아닌 이러한 사람들의 성격 발전의 특성 속에 혁명적 랑만-위대한 꿈은 간직되어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절대 다수 농민들의 지지와 당의 지도 밑에 개간 공사는 진행된다. 그러나 개간 공사는 처음부터 식은 죽 먹기로 수월히 진행된 것은 아니다. 고병상과 같이 공사를 파괴하려고 갖은 음모 술책을 다하는 낡은 계층과의 투쟁 속에서 또 《애초에 땅을 얻을 욕심만 부렸지 난공사인 줄 몰랐던가…》하며 동요하는 유첨지와 같은 농민들을 설복하면서 김재화를 비롯한 로동자들의 지원 밑에 공사는 진행되었다.
야장’간에서 밤이 깊도록 곽바위와 동수의 일’손을 돋는 로동자 김재화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는 로농동맹의 사상으로 굳건하게 얽혀진 참다운 동지애의 발현을 본다.
로동자 동무들은 곽바위의 부탁대로 쇠써레까지 만들어 보내주는 것이다.
온 두레가 한 집안 식구처럼 다정히 떨쳐나서 모내기 한 벌판에 가을이 왔다.
하늘은 유리처럼 맑다. 금물’결 치는 논판에서는 농민들의 벼가을이 한창이다. 바람에 나부끼는 기’발도 정답고 농악 소리도 흥겨웁다.
탈곡을 끝낸 곽바위의 집은 벼’가마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어머니의 태’줄을 끊은 지 30여년, 언제 한번 그에게 이런 행복이 깃든 때 있었던가! 깊은 생각에 잠긴 채 그가 안해를 불러 놓고 《여보! 현물세를 선참으로 바치고 애국미로 나라에 한 이십 가마니 더 바칩시다》고 하는 이 말은 못 살고 천대 받던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마음인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람을 인민들은 도인민회의 대의원으로 립후보(원작에서는 최고 인민회의 대의원)했던 것이다.
영화는 이와 함께 력사 무대에서 자기 시대를 다 산 추악한 인간들의 형상도 또 드러내고 있는바 윤상렬(허백산 분)과 그의 앞장이 고병상은 어떻거면 몰수당한 토지를 다시 찾아 볼가 하는 야망에서 집요하게 발악하는 것이다.
이 자들은 현물세 야적장에 불을 지르며 야장’간을 폭발시킨다. 그러나 이 자들의 헛된 술책은 인민들에 의해 수포로 돌아가며 결국 체포되어 인민들의 응당한 심판을 받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곽바위가 부상당한 팔을 들고 열렬하게 호소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이 자들은 결코 우리 행복을 빼앗을 수는 없다.
우리에게는 당이 있고 그를 승리에로 이끄시는 김일성 원수의 현명한 령도가 있는 것이다.
이 영화의 후편은 흥분된 군중들 앞에서 력사적인 1946년 11월 3일 첫 민주선거를 앞두고 더욱 빨리 공사의 일’손을 다그칠 것을 호소하는 곽바위의 연설로써 끝난다.
우리는 이 영화의 전후편을 보면서 오늘과 같이 사회주의적 공업 농업 국가로 장성 발전될 수 있었던 영광에 찬 승리의 년륜으로 아로새겨진 과거를 돌이켜 보게 된다.
이러한 때의 회상은 또한 얼마나 즐거운 것인가!
곽바위, 강균, 박첨지 등의 형상은 우리들에게 깊은 공감과 감명을 주고 있다. 이들은 자기들에게 땅을 준 김일성 장군과 당을 떠나서는 생활도 행복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자기들의 과거 생활을 통하여 누구보다도 가슴 깊이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천대 받고 어렵게 살던 조선 사람들이 해방을 맞이하여 자기 손에 주권을 틀어쥐고 자기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가지게 되었을 때에 어찌 용기백배하여 더욱 적극적으로 투쟁하지 않겠습니까!…》(공산주의 교양에 대하여)라고 김일성 원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일제의 식민지 통치와 사’적 토지 소유 제도가 인간에게 가져다 준 최대의 비극을 체험한 곽바위와 같은 인간들이 당과 수령의 부름에 어찌 적극 나서지 않으랴, 당이 준 과업에는 물불을 헤아리지 않는 모범적 역군으로, 계급적 원쑤에 대하여서는 무자비한 투사로 더욱 장성 발전될 영화의 제2부를 우리는 손꼽아 기다린다.
(본사기자 계훈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