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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AUM Sep 06. 2018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관계



그녀는 다시 한 번 그들을 생각했다. 그들은 가끔 이웃 마을에 가서 호텔에 묵었다. 편지의 이 대목이 그녀에겐 충격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행복했다는 것을 증명했다.



1. 사비나의 상상은 시몽의 편지로부터 시작된다. 상상의 끝은 충격이다. 그 편지엔 사비나가 상상한 '그들이 행복했다'는 내용은 없다.



2. 얼마 전 '대화'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트윗을 봤다. 관계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오해는 사실과 다르며, 그 오해의 시발점이 상상과 추측이란 것이다. 즉 대화로 그 오해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3. 의문이 들었다. 사비나가 편지를 읽고 상상한 것이 전혀 뜬금 없는 것인가? 내가 특정 관계에서 드러나지 않는 이면을 상상하는 것이 전혀 근거 없는 상상인가? 무언가를 상상할 땐 대체로 그 또는 그녀가 나에게 보여줬던 언행을 토대로 그림을 그린다. 사비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4. 그렇다면 상상이 망치는 관계는 늘 풀어야만 하는 과제일까. 모든 상상을 늘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수고로운 것 아닌가. 어떤 개인의 개인에 대한 병적 집착이 아닌 이상 평범한 사람의 상상은, 상대에게도 원인이 있는 건 아닌가.



4-1. 그리고 그렇다면 지나친 상상과 그 상상의 끝에 파괴가 떡하니 버티는 관계야말로 병 든 관계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상상이 필요 없는 관계. 상상의 틈을 믿음이 채우고 있는 관계. 그래서 상상을 할 이유조차 없는 관계. 때로 상상이 뿅-하고 내 자의와 다르게 내 정신을 채우더라도 그것으로 충격받지 않는 관계.



그런 관계가 주변에 가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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