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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구름 Mar 19. 2024

화요일엔 화장실 청소

안 했을 때의 찜찜함 보다 했을 때의 짜릿함을 위해

일주일 동안 매일 한 가지씩 살림 루틴을 정해서 실행하고 있다. 월요일에는 온 집안의 먼지 청소와 공기 청정기 청소, 화요일은 거실 화장실 청소, 수요일은 안방 화장실 청소, 목요일은 장보기, 금요일은 냉장고 정리정돈, 토요일은 쉬는 날, 일요일은 가계부 쓰기와 장보기다.      




물론 살림 루틴 한 가지를 끝낸다고 해서 하루치 모든 살림을 마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하루에 하나씩만이라도 제대로 하려고 마음먹었더니, 하루 종일 살림만 하다가 내 시간도 갖지 못하고 지나갔다는 허무한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마음이 가볍다. 그런 날은 잠도 달다.      




오늘은 화요일, 거실 화장실 청소를 해야 하는 날이다. 날씨에 기분이 자주 저당 잡히는 사람으로서 오늘 같이 흐린 날씨엔 화장실 청소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하지 않는다고 뭐라고 할 사람도 없고, 검사를 할 사람도 없으니 온전히 내 선택에 달린 문제다.      




오전 10시면 에세이 쓰기 수업도 있는데 그때까지 커피나 한 잔 마시면서 여유를 부리고 싶기도 했다. 9시 20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티셔츠를 바지 속에 집어넣고, 바지 단을 접어서 최대한 위로 올린 다음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뜨거운 물을 뿜어 대는 샤워기로 화장실 구석구석을 충분히 적신 뒤에는 수세미를 손에 쥐었다. 더 이상 쓰지 않는 샴푸를 수세미에 꾹 짜서 거품을 낸 뒤에는 인정사정없이 문질러 때를 벗겨 낸다. 변기 솔로 변기의 구석진 곳까지 부지런하게 닦아 내고 나서야 겨우 허리를 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화장실 바닥에 있는 하수구 뚜껑을 열어 안쪽까지 솔로 문지른다. 샤워기를 찬 물 방향으로 돌린 뒤 거품이 하수구 안쪽으로 빠르게 사라지는 모습을 한동안 지켜본다. 



화요일엔 화장실 청소지. 이 맛에 청소하는 것 아닐까? 비포 앤 에프터가 확실한 결말은 화장실 청소만 한 게 없다. 특히 남자가 셋이나 사는 우리 집에서는. 아 정말 개운하다.  안 했을 때의 찜찜함 보다 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짜릿한 감정이 나를 오늘도 움직이게 한다.  화장실 청소하길 정말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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