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쉼표구름 Mar 26. 2024

배려와 오해는 한 끗 차이

뚜벅이 엄마가 남자아이 둘을 데리고 외출한다는 건 말 그대로 감행이었다. 아기 띠에 안긴 둘째는 툭하면 몸을 뒤로 젖히기 일쑤였고 그 힘을 감당하느라 이미 허리와 다리가 저리는데, 첫째 아이는 연신 잡은 손을 뿌리치고 저만치 달아난다. 아이는 신날지 몰라도 엄마는 주저앉아 울고 싶을 때가 많았다. 외출 한 번 하는 일이 용기를 내지 않으면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한 해 한 해 지나갈수록 아이들과의 외출이 더 이상 용감하지 않아도 괜찮을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이번엔 첫째가 사춘기로 “그냥 집에 있을래.”라고 선포하며 외출을 거부하고 나섰다. 첫째를 설득하는 일이 외출의 시작이 된 지 오래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열렬한 구애와 설득이 필요했다. 택시를 타고 가는 것으로 극적 합의를 본 뒤에야 우리 셋은 길을 떠날 수 있었다. 그날의 일정은 여권 민원실에 가서 만료된 여권을 새로 신청하고 이마트 푸드코트에서 점심을 사 먹고, 애플 스토어에 가서 새로 나온 아이폰 15를 구경하고, 건너편 메가박스로 가서 위시라는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이었다. 어릴 때와 또 다른 이유로 외출 한 번 하는 게 쉽지 않으니 이렇게 세부 일정 계획을 탄탄하게 세워 나온다.



    

첫 일정인 여권 만들기를 수월하게 끝내고 이마트 푸드코트에 들어섰다. 아이들과 주문한 메뉴 호출을 기다리고 있던 그때, 아기 띠를 맨 엄마 셋이 나란히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기저귀와 아기용품으로 채워졌을 가방이 한쪽 팔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거나 양쪽 어깨에 매달려 있었다. 엄마 셋, 그리고 품에 안긴 아기 셋은 우리 옆자리에 앉는다. 슬쩍 보니 돌은 지났을까 싶은 아기들의 민머리가 아기 띠 사이로 보인다. ‘아 정말 너무 귀엽다.’     




잠시 후 그들이 시킨 음식들이 나왔나 보다. 한 명씩 번갈아 가면서 식판을 들고 오는데, 양팔을 한껏 앞으로나란히 한 상태다. 행여나 아기의 머리에 뜨거운 것이라도 닿을까 조심하는 것이다. 엄마들 앞에 식판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웃음꽃을 피우며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여전히 앞에는 아기 띠 속에 아기가 앉아있다. 어떤 아기는 조금 울먹거려 쌀과자를 손에 쥐었다. 작은 손으로 꽉 쥐지 못한 과자가 벌써 세 번째 바닥으로 떨어진다. 울먹울먹 하는 아기 얼굴과 아기 엉덩이를 연신 두드리는 엄마에게 눈길이 머문다. 아기 띠를 해서 꽁꽁 묶여 있는 허리를 바라보면서 ‘제대로 소화나 될까? 집에서 편하게 먹는 게 나은 거 아닐까?’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루 종일 말도 통하지 않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다가 어른과의 대화 시간이 얼마나 귀할까 싶어서 이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 마음에 동의하는 것이다. '내가 안고 있을 테니 편하게 먹어요.'라고 말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또한 어쭙잖은 배려임을 깨닫는다. 나의 입장에서만 배려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 엄마가 선택한 지금의 시간을 존중하는 것만이 최선의 배려일 것이다.     




불현듯 엄마이기 전,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식당에서 뛰어다니거나 울음을 그치지 않는 어린 아기를 볼 때면 ‘엄마는 뭐 하고 있길래 달래지도 않고 있나?’ 하면서 얼굴을 찌푸리기도 했다. 아기 띠 속 아기에게 국물이라도 떨어질까 조심하느라 불편하게 먹을 수밖에 없으면서도 우는 아기 엉덩이를 연신 토닥이며 주변 눈치를 살피면서까지 쐬고 싶었던 바깥바람의 숨겨진 의미도 몰랐다. 그저 남이 해주는 밥을 먹고 싶은 것만은 아니었다. 나와 같이 아기를 키우고 있는 엄마 사람과의 달고 다디단 대화였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나의 옛 모습이 겹쳤다. 아기 띠를 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앉아있는 나의 모습이다. 둘째가 울음이라도 터뜨릴까 싶어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연신 몸을 들썩이고 있고, 동시에 호기심 많은 첫째의 손을 놓칠까 봐 버스 안에서도 내내 잡고 있다.      




그때의 나는 우는 아기를 달래주려고 애쓰며 주머니 속에서 사탕을 꺼내 드는 할머니에게도 뾰족한 마음이 들었다. 그냥 나를 내버려 뒀으면 했었다. 아기를 예쁘다고 바라보는 것도 귀찮고 부담스러웠다. ‘맘충’이라는 말이 들리던 시절이었다. 원래도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편인데 버스와 같은 공공장소에서는 훨씬 더 예민해진다. 버스에 오르며 말귀를 알아듣는 첫째에게도 알아듣지 못하는 둘째에게도 “절대 버스에서 시끄럽게 하면 안 돼.”라고 단단히 다짐을 받곤 했다. 잘하거나 잘못하거나 어떤 것으로든 주목받고 싶지 않았다. 그랬기에 할머니들이 내민 사탕 하나에도 ‘우리 아이가 시끄러워서 사탕을 주시려는 걸까?’ 하며 마음이 뾰족해진 것이다. 더 깊은 속에는 이런 마음도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사랑을 받아 본 사람만이 온전한 사랑을 줄 수 있다고 믿었다. 부족한 사랑을 받고 자랐다고 여겼던 나로서는 엄마의 자리에서 줄 수 있는 사랑이 남들보다 한참 모자란다고 생각했다. 모자란 모성애가 들킬까 봐 두려워 스스로를 모질게 대했다. 우리 아기가 예쁘다고 말을 한다던가, 우는 아기를 안쓰럽게 바라볼 때도 내 마음대로 오해해 버렸다. 다 지나고 나니까 조금은 알 것 같다. 아기 엄마였던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던 어른들의 마음과 지금 우리 옆에 앉아 식사하는 아기 엄마들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각자에겐 다들 자신만의 사정이 있는 법이다. 그렇기에 섣부른 배려나 오해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배려와 오해는 한 끗 차이니까 말이다. 그제야 옆 테이블의 엄마들에게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눈길을 거둘 수 있었다.      




내 눈앞에는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 둘이 앉아있다. 다음에도 오면 이 메뉴를 시킬 거라면서 맛있게도 먹는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가지 않겠다고 하면서 애를 태우더니, 지금은 다음에 또 온단다. 내 품 안에서 꼬물대던 작은 아기였던 시간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날이 올 줄 그때는 몰랐다. 엄마가 먹여주지 않아도 혼자서도 잘 먹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렇게 금방 자랄 줄 알았다면, 아이들 어릴 때 좀 더 너그럽게 대할 걸 그랬다. 부족한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잘 자라준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고마운 마음이 든다. 사춘기가 조금 더 짙어져서 설득과 회유에도 같이 외출하지 않는 날이 오기 전에 사랑한다고 자주 표현하고, 안아줘야지 다짐하게 되는 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화요일엔 화장실 청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