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가요무대가 방영되고 있었다.
"오! 주현미 아줌마다!"
과거에 친했던 옆 집 아줌마를 오랜만에
다시 만난듯한 느낌이 들어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나이도 많으실 텐데 진짜 예쁘시다...'
'목소리도 여전하시고...'
"한 번 불러 봐라~ 용돈 줄게~응?"
좀 전에 친척 언니가
예쁘게 땋아준 머리를 하고
짧아진 한복을 내복 위에 입은 어린 내가
큰 큰 아빠네 안방 문 뒤에 숨어 있다.
부끄러워서 숨어 있는 나를 보며
어른들은 귀여운지 웃으며
살살 달래기 시작한다.
노래 한 번 들어 보기 참으로 힘들다고
급기야 한숨을 폭폭 쉬며 아쉬워하는
큰 아빠들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몸은 그대로 문 뒤에 둔 채로
노래를 시작한다.
몸은 여전히 부끄러워 배배 꼬면서도
목소리만큼은 당차고 간드러진다.
'마주치는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난 아직 몰라 난 정말 몰라
가슴만 두근두근
아 사랑인가 봐~'
리틀 주현미라도 된 듯
트로트의 묘미,
꺾기 기술까지 선보인다.
지금은 결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사랑받고 있는 아이만이 할 수 있는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가
내 귓가에 선명하게 들리는 것만 같다.
여전히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큰 환호를 받았던 것은
아마도 그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솔직히 노래를 잘해야 얼마나 잘했을까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는 말이 있듯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들 틈에서
안심하고 재롱부릴 수 있다는 걸 알았기에
눈치 보지 않고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 나의 노래를 좋아해 줄지,
잘 부른다고 평가해 줄지,
네가 지금 태평하게 노래할 때냐고
타박하지는 않을지,
그런 걱정 없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기회는
인생에서 그리
흔하게 오는 게 아니었으므로
그 기억이 소중하다는 걸 안다.
온전히 나의 모습 있는 그대로
사랑받았던 경험이 많진 않지만,
불현듯 떠오르는 이런 기억이 있다는 건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이런 식으로 자꾸 떠올리다 보면
아마도 내 주머니가 응원가로
가득 찰지도 모를 일이다.
살다 보면 야금야금 모아둔
다람쥐의 식량처럼
주머니 속 응원가가 필요할 때가 있다.
괜한 오해를 받았거나
몸이 아픈데 홀로 있어야 할 때
가까웠던 사람과의 이별을 마주했을 때
너무 긴장될 때
잘하고 싶은데 마음만큼 안될 때
아무리 설명해도 아무도 내 진심을
이해해 주지 않을 때
주머니를 열어 하나씩 꺼내어
귀를 기울여 본다.
그날의 노래를 다시 들으며,
조금은 섣불리 단정 지었다는 걸 깨닫는다.
주머니는 이제 더 이상
채워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주머니를 묶어버린 것 같다.
하지만 사랑은 받는 것에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주는 사랑으로도 충만해질 수 있다.
둘째 아이는 약간 음치다.
이상하게 모든 노래가 트로트 같다.
그 모습을 보면,
절로 '푸하하' 하고 웃음이 터진다.
아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웃는
내 주머니가 갑자기 두둑해진다.
주는 사랑은 너와 나에게 동시에
응원가로 채워진다고 믿게 되었던
순간이었다.
우리 아이들의 주머니 속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엄마 아빠의 응원가가 가득 담겨 있을까?
우리 아이들에게도 언젠가 힘들 때
꺼내어 들을 수 있는
사랑의 응원가가
주머니에 가득 찼으면 좋겠는데.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