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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몽 Jul 31. 2022

설마가 사람 잡더라. 내 집에 갇히다니!

전대미문의 2022봉쇄령 _ 상하이에 갇히다.

주부의 주말은 총성 없는 전쟁터다. 삼끼 양간을 준비하고 가족들의 소소한 부탁들을 들어주다 보면 방긋 웃던 아침의 해님은 서산 너머로 뽕! 그림자도 안 보인다. 달님 별님 이미 반짝반짝 중인 거 실화임? 사실 3월 초부터 아이들은 온라인 수업 중이라 주중과 주말에 큰 차이는 없다. 그래도 동그란 뷰파인더로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고 있음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오프라인 수업과 절대로 같은 순 없다는 거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덜컥 방학이라도 해버리면! 이불속에서 눈감고 헤엄치는 모습을 아침마다 볼걸 생각하면 자다가도 이불 킥 각 나온다. 전 세계 맘들이 한맘 한뜻일 듯. 사는 곳마다 그 기간은 다르겠지만 까맣게 타들어간 부모의 맘은 희뿌연 재가 되었을듯하다. 부처님 사리탑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아픈 상처의 훈장들이 줄줄이 대기 중일 것이다. 겨우내 이어지는 온라인 수업에 지쳤다는 북경 언니들의 한숨소리가 잦아들기도 전에 상해의 학교들도 교문을 걸어 잠갔다. ‘자유로운 상해를 마음껏 즐겨!’ 그녀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한데, 자유는 무슨… 그나저나 상해가 봉쇄될지도 모른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나돌고 있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무늘보 형제는 점심때가 다 되어 일어나 아점, 점저 두 끼로 방어전을 마칠 수 있었다. 일주일의 마지막 날 주퇴 시간이 조금 당겨질 듯. 빨리 설거지를 마치고 내 시간을 가질 생각을 하니 마냥 즐겁네. 거실을 내다보니 남편의 표정이 영 이상하다.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티브이는 혼자 떠들고 그의 손가락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회사에 일이 생겼나? 월요일부터 골치 아프겠네. 조금 쉬다 일찍 잠자리에 들라고 해야겠다.’ 거품이 가득한 개수대를 따뜻한 물로 닦아내며 본업을 마무리 지으려는데 다급히 나를 부른다. 자세한 설명도 없이 차키를 들고 나온 남편은 당장 까르푸에 가야 한다고 신발을 꾸겨 신었다.


“야야야!!! 빨리 나와!!!”

“왜? 무슨 일이야?”

“상해시에서 금방 공식 발표가 떴어. 내일 새벽 5시부터 상해는 푸동, 푸서로 나뉘어 우리 동네부터 봉쇄가 시작된다고. 집에 물이랑 일주일 정도 먹을 것들은 있니? 일단 당장 나가자! 빨리 가자!”


세상에나… 봉쇄란 절대로 없을 거라며 큰소리 땅땅 치던 게 며칠 전일인데. 가짜 뉴스라고 상해시의 공식 발표는 대체 뭐야! 시계를 보니 곧 8시 꼬여버린 생각은 나중에 풀기로 하고 서둘러 까르푸로 향했다. 다행히 어제 쌤스에서 계란과 우유, 야채와 참치 등을 주문한 것은 나의 예지력인가? 간만의 폭풍쇼핑을 한 나를 칭찬해주고프지만 까르푸를 다녀와 남은 안도의 한숨을 쉬기로 하고 빨리 가자. 쿵쾅거리는 마음을 좀 안정시키고 무엇을 사 와야 할지 리스트업을 하는 게 급선무다. 주차장은 이미 만원.


“ 나 먼저 내려서 장보고 있을 테니까 전화 줘. 일분일초라도 빨리 가야 뭐라도 사 오지 않겠어? 계산하는 줄도 장난 아닐 텐데.”


나는 용수철처럼 뛰쳐나와 달렸다. 우유, 과일, 햄, 계란, 야채, 또 뭐를 사 와야지? 들어가 보니 공산품들은 그나마 많이 있었다. 그러나 야채 코너는 이미 난장판. 남아있는 과일도 얼마 없었다. 창고에서 자루채 끌고 나온 당근 뭉치에 사람들이 매달려 하나라도 가져가려고 아우성이고 가격표를 붙여주는 줄이 야채 매장을 한 바퀴는 돌고도 넘는듯했다. 정신없이 이것저것을 담던 나도 남편의 전화를 받고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을 한 시간 안에 할 수나 있으려나? 계산대를 향한 줄이… 꼬리잡기라도 하는 듯 끝이 보이지 않게 늘어지기 시작했다. 산처럼 쌓인 카트의 물건들을 보고 있어도 불안한 마음의 불길은 잡히지 않고 하나 더 가지고 올까 말까 하는 고민도 줄처럼 늘어지고. ‘4일이라라니까 이 정도면 괜찮을 거야. 쌤스에서 산 것들도 아까 배송 중이라고 문자가 왔으니 괜찮아.’ 여기저기 줄 서며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들렸다. 급하게들 장을 보니 선반의 물건들은 쏟아지고 사방에 깨진 유리병들이 떨어져 있었다. 쌤스에서 물건이 출발했는지 확인하려 해도 핸드폰은 먹통이 돼버린 지 오래였다.


두 시간 만에 집에 도착해 장바구니를 내려놓고 쌤스를 열었다. 이런 망했다. 배송 취소. 집었다가 내려놓은 계란 한 판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거지 같은!!! 배송 못한다고 문자를 줬으면 사 왔을 거 아냐!!!이고 지고 온 먹거리들을 냉장고에 넣으며 투덜거려도 이미 늦었다. 4일만 버티면 된다. 그러니까 괜찮다. 괜찮다. 안 괜찮다. 괜찮다. 아니다. 4일을 넘길 수도 있으니 안 괜찮다. 잘 지나갈 거야.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듯. 천국은 아니지. 불지옥과 얼음 지옥을 오가는 마음을 다잡으며 일단은 누웠다. 눈뜨면 난 갇히는 건가? 정말로 아파트 밖에 나갈 수 없는 걸까?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이런 일이 가능하다니… 길어야 2주 정도겠지라며 이불을 끌어올리고 잠을 청했다. 2주가 2달을 넘길 거라는 건 상상도 못 했던 3월 27일 밤. 그렇게 나와 식구들 그리고 2500만 명이 상해라는 커다란 우리 속에 갇혀버렸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잘못한 것이라고는 상해에 살고 있다는 단 하나뿐인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잘못한 것이라고는 상해에 살고 있다는 단 하나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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