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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했던 1세기여

그리스

by 미우나고우나

모든 카메라 렌즈가 타오르며 지는 해를 바라본다. 군중과 인증샷 속에서 조용히 빠져나와 한단 아래를 내려가 풍경을 살폈다. 또 한단 내려간다. 시야 앞 줄의 건물들이 선명해진다. 또 한단 아래. 풀벌레 소리가 뚜렷해진다. 그러다 자리 잡은 그늘 밑 벤치에 앉아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도시의 불이 켜지는 때를. 시내 중앙에 솟아있는 신전에 태양빛과 같은 조명이 켜질 때를.


2024년인 지금도 여기 있는 모든 이의 시선 끝에 있는 저 신전이.

까마득한 과거, 숫자로 치환하면 1세기 혹은 2세기 정도의 시기에도,

아고라의 온 시민들이 무언가를 갈망하며 바라본 그 풍경이었을지도.


수평선 너머, 어선일지 유람선일지, 선박들의 불이 켜진다. 마치 바다의 반딧불이와 같이.

그리고 아크로폴리스를 중심으로 빛이 번져가며, 도시가 깨어난다.



20240630_211825-1.jpg 아크로폴리스(Acropolis)와 아테네 시내



파편들만 남은 터를 유추해 본답시고 안내판을 읽었으나, '추정된다', '밝혀진 바가 없다', '예상된다'의 종결어미로 문장이 맺는다. 엄숙한 박물관의 설명 판에도 물음표가 한가득이다. 과거의 영광. 무한할 줄 알았던 그들의 전성기는 고작 한 세기로 막을 내린다. 그들의 신이 외면한 걸까. 거룩한 100년 흔적이 후대의 거친 역사에 의해 쓸려 갔다.


지금은 아고라 북쪽 지역 발굴 작업이 한창이다. 발견 후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터에 유물의 파편들이 그대로 방치한 것에 대한 나의 불만을 철회했다. 사학자들이 집어 든, 혹자가 보면 겨우 돌덩이 하나하나가 몇 세기 전의 산물이니, 섣불리 단정 짓지를 못한다. 지금 사학자들은 땡볕 아래 호미와 붓 등으로 열심히 땅을 긁고, 양동이로 돌덩이 비슷한 것을 나르고 있더라. 그들이 과거의 역사를 전달해 줄 이 시대의 '헤르메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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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크테이온 (Erechthe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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