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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우나고우나 Jul 17. 2024

촉발(觸發)의 사라예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낯선 이에게 동지애가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7시간 동안 좁은 버스 안에서 전선줄 하나 보이지 않은 고속도로를 같이 달릴 때 비로소 동지가 된다.


 국경을 넘을수록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 몇몇은 통역을 해주기도 하고, 여권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며 알려주기도 한다. 버스 안의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친절하다. 쪼그마한 동양 여자애가 무얼 하러 가는지 궁금한지, 말 섞고 싶어 하는 듯 보이지만 언어가 닿지 않아 싱긋 미소로 대체한다.


 크로아티아 출국 검문과 보스니아의 입국 검문을 거쳐, 두 번째 휴게소에 정차했건만. 아직도 3시간이 더 남았구나. 대낮에 출발한 버스가 이제 내부 등이 하나씩 켜지기 시작한다. 겨우 전봇대 하나 보이던 차 밖 풍경도 이제 마을로 들어서고, 어둠이 드리운다.



사라예보 시청 (Sarajevo City Hall)



 사람들이 노을빛 한 줌을 카메라에 담겠다고, 언덕 위에 다닥다닥 자리를 잡고 있을 때. 낭만을 아는 한 중년 남자는 언덕 한 단 아래의 도로 끝, 가드레일 넘어 간이 의자에 앉아 있다. 바로 옆에 주차해 놓은 그의 차에선 깊은 풍미의 재즈음악이 흘러나오고. 그는 여유 있게 담뱃재를 뭉쳐 종이에 올려 돌돌 말고 있다.


 흔쾌히 옆자리를 내어주는 그의 옆에 멀찍이 걸 터 앉아, 지는 해를 감상했다. 시야 아래의 하얀 묘역들이 진한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It will be better". 남자의 말에 참을성 있게 앉아 기다리니. 시간이 지날수록 색상표처럼 오묘한 색들이 번져간다. 그윽하게 깔리는 재즈음악 때문인지, 괜스레 누구에게나 솔직해지고 싶어졌다.


 아재요. 아재 덕분에 좋은 음악과 함께 좋은 구경 했네요. 고마워요. 아재는 유럽은 어딜 가나 다 똑같이 생겼다고 했지만, 오늘 당신 덕분에 나는 '사라예보'를 찾았어요. 유럽 어딜 가나 똑같지 않을 '사라예보'를 요. 낭만, 그거 별거 없죠. 이 순간도 먼 훗날 나의 낭만이 될 것을.



노란 요새 (Yellow Fortres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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