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모든 카메라 렌즈가 타오르며 지는 해를 바라본다. 군중과 인증샷 속에서 조용히 빠져나와 한단 아래를 내려가 풍경을 살폈다. 또 한단 내려간다. 시야 앞 줄의 건물들이 선명해진다. 또 한단 아래. 풀벌레 소리가 뚜렷해진다. 그러다 자리 잡은 그늘 밑 벤치에 앉아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도시의 불이 켜지는 때를. 시내 중앙에 솟아있는 신전에 태양빛과 같은 조명이 켜질 때를.
2024년인 지금도 여기 있는 모든 이의 시선 끝에 있는 저 신전이.
까마득한 과거, 숫자로 치환하면 1세기 혹은 2세기 정도의 시기에도,
아고라의 온 시민들이 무언가를 갈망하며 바라본 그 풍경이었을지도.
수평선 너머, 어선일지 유람선일지, 선박들의 불이 켜진다. 마치 바다의 반딧불이와 같이.
그리고 아크로폴리스를 중심으로 빛이 번져가며, 도시가 깨어난다.
파편들만 남은 터를 유추해 본답시고 안내판을 읽었으나, '추정된다', '밝혀진 바가 없다', '예상된다'의 종결어미로 문장이 맺는다. 엄숙한 박물관의 설명 판에도 물음표가 한가득이다. 과거의 영광. 무한할 줄 알았던 그들의 전성기는 고작 한 세기로 막을 내린다. 그들의 신이 외면한 걸까. 거룩한 100년 흔적이 후대의 거친 역사에 의해 쓸려 갔다.
지금은 아고라 북쪽 지역 발굴 작업이 한창이다. 발견 후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터에 유물의 파편들이 그대로 방치한 것에 대한 나의 불만을 철회했다. 사학자들이 집어 든, 혹자가 보면 겨우 돌덩이 하나하나가 몇 세기 전의 산물이니, 섣불리 단정 짓지를 못한다. 지금 사학자들은 땡볕 아래 호미와 붓 등으로 열심히 땅을 긁고, 양동이로 돌덩이 비슷한 것을 나르고 있더라. 그들이 과거의 역사를 전달해 줄 이 시대의 '헤르메스'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