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오며 중요한 결정을 할 때면 주변의 누군가는 항상 나에게 물었다.
“그럼 여태까지 이뤄온게 아깝지 않아?”
여기서 여태까지 이뤄온 것은 주로 좋은 대학교와 외국 대학원 졸업장이었다. 대학을 다니며 신생 NGO에서 인턴을 할 때도, 6개월 인도네시아로 봉사활동을 다녀왔을 때도, 진로를 국제개발로 정했을 때도 누군가는 나에게 내 대학교 타이틀이 아깝다고 하기도 했고 한국에서 일하다 직장을 그만두고 결혼 후 싱가폴로 남편을 따라 직장도 없이 이주했을 때도, 아이를 낳고 겨우 다시 싱가폴에서 일을 찾아 직장을 다니다가 발리로 무작정 이주했을 때도, 나를 어렸을 때부터 봐온 어른들이든 나를 새로 알게된 분이든 아깝다고 했다. 대학 졸업장으로 대표되던 열심으로 살았던 나의 과거가.
스트레스에 매일같이 인상을 쓰면서도 매순간 최선을 다하고 나를 몰아부쳐야만 옳은 삶을 사는 것 같았던 나는 남편을 만나 얼굴과 몸에 힘을 빼고 이악물고 버티느라 벌릴 새 없던 입을 열고 실없는 소리에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는동안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은 사회 곳곳 알만한 곳에서 일하는 멋진 사회인들이 되어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 반면 나는 내 졸업장이 “아깝게도” 평범한 아이엄마, 아내가 되어 뭐해먹을지를 궁리하고 아이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눈 옆으로 지나가던 수많은 행복하다 여길 수 있었던 순간들을 이제야 눈에 담고 곱씹을 수 있는 법을 배운 것 같은데 주변에서는 여전히 내가 아깝다고 한다. 어느 하나 낭비된 것이 없는데 왜 아깝다고들할까. 학교에서든 학교 밖에서든 배웠던 크고 작은 지식과 지혜는 이미 내가 되어 충분히 잘 살아가고 있는데 나는 특히 한국 사람, 한국 어른들의 눈에 여전히 아까운 사람이다.
내가 아깝다는 말이 칭찬처럼 느껴졌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되짚어보면 그들의 눈에 나는 지난 날의 나와 같이 열심히 사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충분히 행복한데도 너는 더 행복해질 수 있었을텐데 아깝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살아오며 겪어왔던 모든 경험 중 하나라도 빠졌다면 지금의 나는 없을텐데. 그 모든 경험으로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내가 될 수 있는 것일텐데.
발리에 와서 보잘 것 없는 일을 처음부터 해나가면서도 행복하다 느끼는 순간이 많았다. 아이의 성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고 남편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쁨을 줄 수 있는 일을 한다는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눈에 나는 여전히 과거를 낭비하는 사람인가보다.
사람들은 소소한 행복을 외치지만 실은 소소하게 행복하다 느끼며 사는 사람들을 봤을 때 그대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