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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리안러버 Mar 11. 2024

끄적임의 여유

사춘기 시절부터 한 끄적임했던 나는 혼자 어딘가로 이동할 때든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때든 불현듯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그 생각을 머릿 속에서 정리해서 글로 적어내는게 유일한 낙이자 취미였다. 다른 비싼 취미에 비해 별다른 비용이 드는 일은 아니었지만 단 하나 중요했던건 나 혼자 조용히 머릿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필요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쫓으며 스스로 그 생각에 대해 정리하고 결론을 내기 위해선 혼자 골똘해질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일상에서 지쳐갈 때 한 번씩 심호흡을 하듯 나는 그렇게 끄적이며 생각의 호흡을 가다듬곤 했다.


아이가 생기고 난 이후 나는 더 이상 내 생각 안으로 들어가 헤엄치기가 힘들어졌다. 변명같지만 아이가 말을 시작하기 전엔 아이에게 손이 너무 많이 가서 내 생각을 꺼내볼 여유가 없었다. 가끔씩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었지만 아이가 낮잠을 자는 사이 모처럼 다시 꺼내볼라치면 생각 조각들은 이미 밀린 설거지 속으로 숨어버린지 오래였다.


 아이가 말을 시작하고 혼자 어느 정도 놀 수 있게된 이후 우리 집에서는 고요함을 찾기가 불가능해졌다. 아이는 24시간 양치질을 하고 잠에 드는 순간까지 조잘거림을 멈추지 않았고 아이를 조용히 시키기 위해선 이야기를 읽어주는 팟캐스트나 동요, 티비 등의 또다른 소음으로 입막음을 해야했기에 우리 집은 한 시라도 조용해질 수 없었다.


이러다보니 언젠가부터 짧아지던 내 생각의 호흡은 시간의 여유가 생긴들 좀처럼 다시 길어지지 않았다. 가만히 멍을 때릴라치면 들려오는 아이의 “엄마!“ 소리를 듣는 기분은 마치 깊은 잠수를 하려고 단단히 마음 먹고 다이빙을 해서 물 속으로 들어간지 1초 후 강제로 머리채를 잡혀 수면 위로 올라오는 느낌이랄까. 이런 일이 반복되다보니 나중에 풀어봐야지 했던 생각의 알맹이들은 일상에 치어 머리 속에서 말라비틀어져 어느 새인가 사라져버리기 일쑤였고 생각의 끝을 겨우 낚아채 어떻게든 골똘해져보려해도 어느 깊이 이상 가라앉기가 어려워졌다.


예전에 남편이 아이가 생기고 나서 2시간짜리 영화 한 편을 한 번에 앉아 보기가 버거울 정도로 집중력이 흐려졌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요새 넷플릭스에서도 영화보단 20분 단위로 재생할 수 있는 외국 TV 시리즈를 자주 시청하는 버릇이 들었다. 엄마 아빠를 5초에 한 번씩 불러대는 아이에게 소모되어버린 우리의 집중력은 얇은 책 한권, 아니 의미있는 글 한 문단 소화하며 읽기 힘든 알량한 것이 되어버렸다.


지금 이 글을 쓰기 위해 내가 몇 번의 저장과 발행을 반복하였는지, 아이의 물병을 찾아주고 물음에 답해준 후 돌아와 저장된 글을 다시 열어보았을 때는 항상 이미 탄산이 날아가버린 사이다병을 여는 느낌이 든다. 글쓰기 버튼을 누르던 들뜸이 사라지고 어떻게든 이 글을 끝내보자는 의무감만 남는 이 느낌.


아이 엄마들은 아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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