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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Aug 25. 2021

박아나의 일상뉴스

오랜만이라

 오랜만에 글을 쓴다. 나는 마음이 답답할 때 글을 쓰는 모양이다. 그동안 별로 답답할 일이 없었나, 그것은 또 아니지만, 어쨌든 한참을 쉬었다.

 기대치 못한 행운이 오면 좋을 텐데, 좋은 일은 당연한 것 같고 금방 잊힌다. 기대치 못한 엉뚱한 일들은 가끔 일어난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잊지 못할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적절한 예를 들고 싶지만, 간신히 눌러놓은 마음이 다시 뒤집힐 것 같아 그냥 마음속에 담아 두기로 한다. 언젠가는 밝힐 날이 올지도 모른다.

 오래전부터 책을 내고 싶었다. 알고 지내던 편집자로부터 이제는 때가 되지 않으셨냐고 연락이 왔다. 뭐든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될 것 같아 그와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계약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책에 담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 목차는 어떤 식으로 구성할 것인지, 고민해 보기로 했다. 나는 엄청 의욕에 불타 거기에 맞는 샘플 원고도 내친김에 써보았다. 그러나 내가 보낸 원고가 문제였던 것 같다. 뭔지 모르게 미지근해진 편집자의 반응에 나는 풀이 죽어 버렸다. 다시 읽어 보니, 어떻게 이런 원고를 보낼 생각을 했나 싶을 정도로 엉망인 글이었다. 남편은 내 글이 뭔가 남성적인 느낌이라 했다. 감정을 담은 에세이라기보다는 정보 전달류의 내용이 많다고 한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다시 보니 그랬다. 쇼팽의 발라드 1번이 내게 어떤 영감을 주었는지 이야기하는데, 내 생각이나 감정보다는 발라드 1번과 관련된 영화와 책에 대한 감상평 위주다.

 솔직히 내 생각에는 나의 이야기에 얼마나 사람들이 관심이 있겠냐 싶어, 나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도 그렇더라 식이면 독자들이 더 흥미로워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최대한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줄이려고 애썼다. 내 개인적인 부분을 어디까지 오픈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또 나의 개인사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꾸 늘어놓으려고 해서 멈추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전개는 발라드 1번 곡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거기서 연상되는 어떤 이미지나 생각이 있으면 관련된 내 에피소드를 자연스럽게 곁들이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글을 통해 독자들이 작은 부분이라도 공감을 느낀다면 꽤 괜찮은 구성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마음이 조급해진 나는  책이 나올 후배에게 조언을 구했다. 후배는 브런치에서  글을 종종 읽었던 터라, 꽤나 날카로운 지적이 기대됐다. 그녀도 일단 남편과 비슷한 생각이었다. “선배님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요. 정보도 너무 많이 담고 있고요.  편을  편으로 나눠도   같아요.” 인정한다.  요리에 재료가 너무 많이 들어간다. “선배님 이야기에 신나게 빠져들라고 하면 갑자기 멈춰버리고, 다음 정보를 던져버려요. 선배님이  정해놓은 선이 있는  같아요.”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야기다.  정해놓은 . 나는 사람들과  지내는 편이지만, 정해놓은  같은  있다. 아니, 벽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별로 비밀도 없는 사람인데,  그런지 모르겠다. 겁이 많아서 그런 걸까. 아무튼 그런 이유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줄이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런 사람이 에세이를    있을까.

 출간을 앞둔 작가님의 눈은 날카로웠다. 그녀는 선배님이 그동안 브런치에 썼던 이야기들을 주제별로 나눠도 책 몇 권은 나올 것 같다며 브런치에 있는 글들부터 다듬어 보라고 한다. 따끔한 이야기다. 알고는 있었지만, 그전에 써놓은 것들은 왜 다시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건지… 그렇게 잘 쓴 글도 없는 것 같고… 이렇게 변명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후배 말이 맞으니까.

 편집자에게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메일을 보냈다. 그도 정중하게 답변이 왔다. 충분히 고민하고 시간을 가지라고. 그랬는데, 내게 그렇게 여유 부릴 시간이 없는 것 같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원고를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사실 편집자는 샘플 원고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고 했는데, 나는 이 한 편의 원고라도 정말 멋지게 써낼 수 있어야 나머지 글들도 잘 쓸 수 있을 것 같아 어쩔 수 없었다. 정말 다듬고 또 다듬었다. 그 덕분에 브런치에도 오랜만에 글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다른 말 다 필요 없고, 이제는 정말 속도를 내야 될 때가 온 것 같다. 나만 빼고 모두 알고 있었다고?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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