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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Sep 23. 2021

박아나의 일상뉴스

연휴 끝 일상 복귀

주말을 포함해서 5일간의 제법 긴 연휴가 끝났다. 출근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연휴가 끝나고 나니 아쉽긴 하다.

이번 연휴에 부모님 댁을 다녀오는 것 외에는 특별한 일정은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많이 먹고 많이 자며 그렇게 연휴를 흘려보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의 곳에 가야만 했다.

친한 언니의 아버님이 소천하셨다는 문자를 받고 나는 전주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추석 전날이라 버스표가 없으면 어떡하나 했는데, 다행히 자리가 있었다.

버스 전용 차선으로 달리니 추석 전날인데도 크게 밀리지 않고 제시간에 전주에 들어섰다. 전주를 찾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걸까. 전주는 연휴를 맞아 사람들이 빠져나간 서울처럼 무척 차분한 기운이 돌았다. 평상시에도 전주 분위기가 이럴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빈소를 찾는 내 착잡한 심정이 이곳, 전주에 투영된 것 같았다. 비교적 한산한 분위기의 전주고속버스터미널에서 곧장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빈소가 차려진 2층으로 올라가니 입관 예배 중이었다. 목사님의 말씀이 간간이 들려오는데, 고개 숙인 유족의 모습을 보니 진짜 장례식장에 온 실감이 들었다. 예배가 끝나고, 영정 사진 앞에서 언니를 만날 수 있었다. 검은 상복을 입은 언니는 불과 2주 전에 나와 점심을 같이 먹었고, 그때 아버님의 상태에 대해 자세히 들었었다. 식사를 잘 못하시기는 해도 어디 크게 문제가 있는 상태는 아니어서 나는 곧 괜찮아지실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희망적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상태가 갑자기 나빠지신 아버님은 병원에 실려가셨는데, 조금 회복되시는 것 같더니만 갑자기 임종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언니를 만나고 2주 만에, 이런 이야기를, 전주에서, 듣고 있게 될 줄 몰랐다. 눈이 퉁퉁 부은 언니는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다. 그녀의 차분함에 마음이 더 아팠다.

부모님께 잘해. 돌아가시면 아무것도 못해. 엄청 후회된다.” 언니의 말에 나는 움찔했다. 전주에 내려오기 전날 부모님을 뵈러 갔었다. 서울이 아닌 곳에 살고 계시기 때문에 자주 만나지는 못하고 있고, 그렇게 된 지 십 년도 훨씬 더 지났다. 내가 바쁘니까, 해야 될 일이 있으니까, 부모님 만나는 일은 늘 후순위였다. 회사 다닐 때는 추석 연휴에 숙직 근무가 걸린 적이 꽤 많았다. 연휴 중간에 걸린 숙직을 바꾸기도 어려운 일이었지만, 숙직을 핑계로 부모님 댁에 가지 않았던 경우도 많았다. “엄마, 나 이번에 추석에 숙직이야. 못 갈 것 같아.” 엄마는 단 한 번도 근무를 바꿀 수 없냐고 묻지 않았다. “그래, 추석에 근무하느라 고생하네, 우리 딸. 회사일이 중요하지. 근무 잘하고 다음에 보자.” 엄마의 이런 반응은 나를 죄책감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그렇게 대단한 근무까지 해가며 다니던 중요한 회사를 과감히 그만둔 나는 그냥 불효녀였다.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서는 연휴에 걸린 숙직을 꽤나 열심히 바꿨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이 자꾸 커져만 갔다. 만나도 죄스럽고, 만나지 않아도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예전의 엄마와 아빠가 더 이상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그런 죄책감이 더 심해진 것 같다. 물건을 종종 떨어뜨려서 튼튼한 그릇이 좋으시다는 엄마, 수동 핸드밀을 돌리기 힘드시다는 아빠는 나를 슬프게 만든다. 엄마의 전문영역이었던 잔소리는 더 이상 따갑지 않았고, 근육이 남달랐던 아빠는 가늘어진 허벅지를 부질없이 쓰다듬는다. 연세가 들면 예전 같지 않은 게 당연하지만, 속상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그런 부모님 앞에서 “엄마, 나도 이제 나이 엄청 들었어. 예전 같지 않아.” 이런 이야기나 내뱉고 오다니…

멀리 떨어져 살아서 그런 것일까. 명절에 만나면 특히 현재나 미래의 이야기보다는 과거의 추억을 곱씹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 소현이가 그랬지.”,”그때 우리가 어딜 갔었는데 말이야…” 자주 만나지 못하니, 공유할 일상이 줄어드는 것일까. 전화 통화를 해도 걱정할까 봐 힘든 이야기는 대부분 생략한다. 고통을 나누면 반이 되는 게 아니라, 자식의 고통을 전해 들은 부모는 엄청 힘들어하실 게 분명하다. “어떻게 지내니?”라는 질문에 나는 늘 “잘 지내고 있다. 별일 없다.”라는 대답만 되풀이했다. 부모님도 마찬가지겠지. 아마도.

최근에 읽은 시그리드 누네즈의 소설 “어떻게 지내요”에서 읽은 구절이 떠오른다. 이웃을 오롯이 사랑한다는 것은 그저 “어떻게 지내요?”하고 물을 수 있다는 뜻이라는 시몬 베유의 말을 작가는 이렇게 풀이했다.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

“어떻게 지내세요?”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이렇게 여쭤보면 여느 때처럼 “아무 일 없다. 건강도 괜찮다.” 같은 대답이 돌아오겠지. 그리고는 내게 “어떻게 지내니?”라는 질문이 돌아오겠지. 별일 없다는 말 대신, 이제부터는 약간의 앓는 소리를 , 너무 걱정할 정도의 수준으로는 말고, 아주 조금만 해야겠다. 그리고 당장 전동 핸드밀을 보내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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