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행 일기 5
맨해튼을 떠나 태리타운으로 이동하는 날, 아쉬운 마음에 아침 일찍 서둘러 어퍼이스트 쪽으로 올라갔다. 오전에 구겐하임 미술관을 돌고, 센트럴 파크에서 호텔까지 걸어올 생각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비가 온다. 전시회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빗방울이 조금씩 강해지기 시작했는데, 준비성 넘치는 여행자는 우산을 가지고 왔기에 일단은 걸어본다. 처음에는 걸을 만했는데, 80가에서 70가, 70가에서 60가로 내려올수록 거세게 몰아치는 비바람 덕분에 내 바지는 상당히 젖은 상태다. 빗속의 낭만을 즐기고 싶었지만 우산이 휘어질 것 같은 날씨의 기세에 꺾여 가까운 지하철 역으로 피신했다. 결국 지하철을 타고 호텔로 돌아와,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타는 건데, 미리 예약해 놓은 택시로 태리타운으로 향했다. 아니, 내가 떠난다고 맨해튼이 섭섭했던 것일까. 이렇게 소리 내어 울 일인가.
태리타운은 사실 호텔 앞 그랜드 센트럴 역에서 4,5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지만, 짐도 있고 초행길이라, 아무래도 택시로 가는 게 여러 가지 면에서 편할 것 같았다. 게다가 오늘 날씨를 보니 우산이 몇 번은 뒤집혔을,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지 않아서 결론적으로 택시 부르길 잘했다. 차 막히는 빗속 바깥을 보니, 뉴욕 양키즈의 양키 스타디움과 밴 코틀랜드 파크 같은 익숙한 지명들이 눈에 들어온다. 밴 코틀랜드 파크는 지하철 1 라인을 타고 마지막 정류장인 밴 코틀랜드 242 st에서 내리면 닿을 수 있다. 여기를 갔던 이유는 골프장 때문이었다. 시립이라고 해야 될까, 그래서인지 골프 치는 비용이 많이 들지 않았고, 동네 주민들도 편하게 이용하는 골프장이었다. 다만 거기까지 갈 때 골프백을 메고 지하철역을 오르락내리락하고 공원 안에서 좀 걷기도 해야 하지만, 맨해튼에서 차 없이 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골프장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 지금 그렇게 하라고 하면 힘들어서 못 가겠지만, 그때는 골프에 대한 열정과, 시간, 무엇보다도 젊음이 있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골프 실력은 꽝이지만, 거기서 누릴 수 있는 큰 기쁨, 햄버거 카트만은 잊을 수 없다. 햄버거를 그릴에서 구워 그 자리에서 만들어줬는데, 약간 탄 듯한 고기 맛과 널찍하게 들어간 치즈의 고소함 그리고 그릴에서 나오는 연기 맛이 어우러져 어떤 유명한 햄버거집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골프를 치러 간 게 아니라 햄버거 먹는 맛에 거길 갔던 것 같기도 하다. 골프는 안 늘고 체급만 올렸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그 골프장에 지금도 그때 그 햄버거 카트가 돌아다니고 있을지 궁금하다.
골프장 햄버거 생각까지 하다 보니, 어느덧 태리타운으로 빠지는 길이 나왔다. ‘슬리피 할로우’의 기운이 내려오는, 팀 버튼의 영화 속 목 없는 기사가 안갯속에서 나타날 것만 같은 그런 분위기를 기대하며 예전에 이 동네를 지나간 적이 있다. 내 기억으로는 필립스 버그 매너에 가던 길이었던 것 같은데… 팀 버튼 영화의 원작인 ‘슬리피 할로우의 전설’을 쓴 뉴욕을 대표하는 문학가 워싱턴 어빙의 집도 남아있고, 유명 재력가의 별장인 린드허스트 같은 맨션들도 볼만하다. 포칸티코 힐 유니언 처치는 록펠러 가문에서 세운 것인데, 여기서 샤갈의 스테인드 글라스와 마티스의 로즈 윈도도 볼 수 있다. 심지어 내가 공부하게 될 EF 뉴욕도 원래는 1907년에 세워진, 유서 깊은 로만 가톨릭 여자 대학이었던 메리마운트 대학 캠퍼스를 2008년에 인수한 곳이라도 한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유물들이 많이 남아 있는 태리타운은 뉴욕 주 내에서도 살기 좋은 안전하고 조용한 동네로 손꼽힌다고.
내릴 때가 되니 줄기차게 내리던 비도 어느덧 그쳤다. 그리고 드디어 내가 2주 동안 어학연수를 할 EF 뉴욕에 도착했다. 체크인 과정부터 거쳐야 할 단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부터 모든 대화는 영어로, 물론 뉴욕에 도착한 이래 한국어를 쓸 일은 전혀 없었지만, 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약간의 긴장감이 몰려왔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기숙사 방이 어디로 배정됐는지, 식사는 어디서 하는지, 수업 시간표는 어떻게 확인하는지… 등등, 여러 가지 정보들을 확인했다. 내 신상 정보를 확인하던 담당자는 정말 40대냐고 놀란다. 물론 마스크를 하고 있어서 가려져 있으니 더 그렇게 보일 텐데, 기분 좋기도 하면서, 그렇게 좋아하기에는 내 나이가 이젠 정말 훅 들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혹시 여기서 내가 제일 나이 많은 학생이냐고 물었다. 담당자는 크게 웃으며 아니라고 했다. 72세 학생도 있다고. 어머… 세상에…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고 하다니, 진짜네. 나이로 첫 번째 자리는 뺏겼지만 두 번째 자리는 한 번 노려봐도 될라나.
안내하는 직원을 따라 방으로 왔다. 기숙사라니… 세상에… 대학 생활할 때도 해본 적이 없는데, 이게 웬일이람. ‘세상에’란 단어가 두 번째 등장한다. 앞으로 더 많이 등장할 것 같은 예감이다. 내 방엔 싱글 침대와 옷장, 책상 겸 테이블, 화장실이 있었다. 딱 필요한 것만 갖춰져 있다. 창 밖으로는 앞 건물 하나와 그 뒤로 산이 보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크라이슬러가 보이는 건물 숲이었는데, 오늘은 뭔가 휑한 느낌이랄까. 그러나 반전이 있었다. 내 방 창문의 풍경은 해가 뜰 때마다 갖가지 아름다운 색으로 변신하는 꽉 찬 공간이었다. 블라인드를 치고 지내서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래, 창문은 그냥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밖을 보라고 있는 것이다.
1인실이어서 2주 동안 혼자 지낼 생각을 하니 심심할 것 같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완벽한 독립의 순간이 언제였던가 싶기도 하다. 이 시간들을 어떻게 채울지 앞으로가 기대된다. 가방에서 짐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가지고 온 컵라면 4개를 보니까 웃음이 났다. 3주를 해외에서 지내는 거라 짐이 다른 여행 때보다 많은 상황에서 꾸역꾸역 컵라면 4개를 끼워 넣는라 다른 짐을 덜어냈기 때문이다. 다 먹고살려고 하는 일인데, 금강산도 식후경이고, 뉴욕도, 영어 공부도, 잘 먹고 해야 잘 될 거라고 그렇게 믿어본다. 그런 의미에서 학교 탕비실에서 물 끓이는 전기 주전자를 빌렸다.
지하에 있는 세탁실로 내려갔다. 세탁실 하면 10년 전, 뉴욕에서 살 때가 떠오른다. 그 전에는 공용 세탁실을 이용해 본 적이 없어서 세탁실에 가는 것 자체가 내겐 꽤 낯선 문화였고 번거롭기도 했다. 세탁기에 갈 때 한번, 세탁기의 옷들을 건조기에 옮길 때 한번, 최종적으로 건조기의 옷들을 꺼낼 때 한번. 이렇게 총 세 번을 셀 수 없이 왔다 갔다 했다. 자주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세탁실에서 나던 세제의 향이 강력히 기억에 남아서, 길을 지나갈 때도 ‘이 사람 막 건조기에서 꺼낸 옷을 입었나 봐…’ 할 때도 있었다. 여기 세탁실에 오니 여전히 같은 향이 나는 것 같다. 실제로 같은 건지, 아니면 옛날 기억 속의 향기에 취한 건지 모르겠지만. 세탁실 의자에는 거기서 그냥 기다리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세탁물을 지키려고는 아닐 테고, 오고 가는 게 귀찮아서 책을 읽든지, 전화기를 들여다보든지, 이어폰을 꽂고 있었다. 그러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뭔가 편안해 보이고, 여기 사람인 것 같고, 자연스러워 보여 부러웠었다. 10년 전의 나는 세탁실이 그리 편한 공간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여기 사람도 아니었고, 사교성도 떨어지는 터라 누가 말 시킬까 봐, 한 번도 거기서 기다린 적이 없었다. 이번에는 좀 여유 있게 세탁실에 머물러 볼 수 있을까. 뭐, 오늘은 아니고, 다음번부터.
세탁실을 세 번 왔다 갔다 하니 밤이 되었다. 내일은 오리엔테이션이 있고, 스피킹 테스트까지 마치면 반이 확정된다. 정식 수업은 그다음 날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여기 오기 전에 서울에서 리스닝과 리딩 테스트를 이미 봤는데, 안 들리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주입식 영어 교육에 잘 적응했던 나는 글을 읽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오해였고, 착각이었다. 단어의 뜻이 생각 안나는 것은 그렇다 치고, 한 줄 해석하는데 왜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지. 제대로 뜻을 이해했는지 확신이 생기지도 않았고, 어떤 문장은 뭔 소리야? 하고 얼렁뚱땅 넘어가기도 했다. 역시 계속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늘지 않는다. 아무것도 안 하고서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의 일은 내일 걱정하기로 한다. 영어 못한다고 잡아가지는 않겠지… 그래… 슬슬 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