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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Dec 07. 2021

코로나 시대의 해외여행 + 어학연수

뉴욕행 일기 7

  번째 시간은 많이 버벅댔지만,  번째 시간은  괜찮을  같다 방심하면  된다.  번째는 문법 시간이라 문법 중심의 주입식 교육을 받았던 나는 수업 내용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러나  번째 시간은 달랐다. 환경문제의 여러 이슈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무엇인지가  질문이었는데,  사람씩 돌아가면서 발표해야 했다. 공기 오염 문제, 수질 오염 문제, 쓰레기 문제  다양한 이슈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문제는 내가  뒷자리에 앉은 것이었다.  번째 시간에 앞자리에 앉아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서 그랬다. 그러나 발표 순서는  앞자리부터였고, 내가 생각했던 것들이 앞에서 답으로 나왔고, 다른 이슈로 생각을 바꾸면 그게  나왔다. 물론 같은 이슈를 언급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학생들은 하나도 겹치지 않게 자신들의 의견을 내고 있었다.  차례에 나는 잠시 망설이다, 앞서 나왔던 주제와 비슷한 미세먼지 이야기를 꺼냈고,  그냥 어떻게  넘어갔다. 한국어로 통역하면 무척 유치한 수준의 이야기였을 테지만.

 선생님은 오늘이 첫 수업인 내 이름을 언급하며, ‘소현’이라는 발음이 쉽지 않다고 했다. 반에 마침 비슷한 이름의 한국 학생이 있어서 선생님은 더 헷갈리는 듯했다. 나는 소현이라고 불러주길 바랬지만, 선생님은 몇 번의 시도와 실패 끝에 ‘미시즈 박’이라고 부르겠다고 했다. 미스 박… 이면 안될까요? 선생님.

아이패드와 펜과 종이 모두 필요한 시스템

 대부분의 학생들은 6개월에서 1년 가까이 장기 어학연수 중이었다. 부럽다. 학생이니까 가능한 시간이다. 잠시 쉬는 시간에 이야기를 나눈 옆자리 학생도 내년 봄에 돌아간다고 하는데, 2주 뒤면 코스가 끝난다는 내 얘기를 듣고 놀라는 눈치였다. 나로서도 2주는 좀 짧아서, 영어가 슬슬 지겨워지려고 하는 4주 뒤즘 떠나면 어떨까 싶다. 그러나 ‘미시즈 박’은 그렇게 오래 집을 비울 수 있는 입장은 아니어서 돌아가야만 한다. ‘미스 박’이라면 가능했을까. 그러나 어학연수 2주기 간과 여행 1주, 이렇게 3주의 시간을 낸 것만 해도 여러 가지로 감사한 일이니, 더 욕심내면 안 될 일이다, ‘미시즈 박’.

 환경오염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나누고 나니, 선생님은 과제를 냈다. 두 명씩 팀을 짜서 환경오염 관련 주제로 3분짜리 영상을 만들고 업로드하라는 것이었다. 일본인 친구, 히타키와 한 팀이 되었는데, “운송수단의 사용으로 비롯된 온실가스가 지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것이 주제였다. 기후 위기나 환경오염에 대해 그 심각성은 익히 알고 있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특히, 과학적으로 아는 게 별로 없었다. 학생들에게는 익숙한 주제일지 모르겠지만 학교를 졸업한 지 너무 오래된 미시즈 박의 입장에서는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어려운 주제였다. 신문에서 잠깐 읽은 내용으로는 온실 가스나 지구 온난화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너무 부족했기 때문에, 여러 자료들을 보며 공부해야 했다. 며칠 뒤, 히타키와 나는 각자 준비한 내용들을 잘 정리해서 영상을 찍었다. 그녀가 다른 숙제로 너무 바빠서 영상 편집은 내가 하기로 했다. 유튜버인 내가 3분짜리 영상쯤이야 뭐 어떻게 못 만들겠나. 오랜만에 실력 발휘를 했다.

열심히 공부했다고요^^

 과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선생님이 지정해주는 나라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했다. 오늘은 서사모아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서사모아가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몰랐고, 어떤 역사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발표한 학생 덕분에 서사모아의 수도가 아피아라는 것을 알았다. 발표하는 과정을 보니 준비할 게 꽤 많아 보였다. 2주밖에 수업을 듣지 않는 내게 설마 이 과제를 시키겠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파워포인트로 작업을 해야 하는데 익숙하지 않아 조금 걱정이 됐다. 대학 다닐 때도, 회사 다닐 때도 ppt를 쓸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현란한 손기술이 없는 내가 잘 만들 수 있을까. 어설프게 몇 번 만들어본 기억을 더듬어 봐야겠다. 단축키가 뭐더라…

 수업이 끝나고 방에 돌아오니 녹초가 돼버렸다. 4시간 가까이 수업을 듣는 일은 무척이나 피곤한 일이었다. 그것도 영어로, 낯선 환경에서. 저녁을 먹고, 방에 돌아와 숙제를 했다. 구글 클래스룸에 들어가니, 과제들이 꽤나 있었다. 퀴즈도 풀고 복습도 하다 보니 10시였다. 세상에. 최근 몇 년 사이 영어라는 문자를 이렇게 열심히 들여다본 적이 있었던가. 알파벳이 꿈틀꿈틀 춤을 추는 것 같다. 이러다 꿈도 영어로 꾸는 거 아닐까. 뉴욕에 살 때, 그리고 뉴욕에 돌아와서도 한참을 영어로 꿈을 꾸면서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이야 절대 그런 일이 없지만.

 그리고 며칠 뒤, 나는 영어로 꿈을 꾸기 시작했다. Oh My God!

지금 다시 사진을 꺼내보니, 라운지도 그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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