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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Nov 05. 2022

미술관 가는 길

프리즈에서 얻은 인테리어 아이디어

 지난 9월 초는 한여름보다 더 뜨거웠다. 특히 아트 씬에서는. 세계 3대 아트 페어인 프리즈가 아시아 최초로 서울에서 열리면서 미술 관련 업계뿐만 아니라 예술에 관심 많은 일반 대중들에도 축제의 낮과 밤이었다. 나도 처음 시작부터 과열된 기분으로 ‘아트 위크’를 맞이했다. 첫 포문을 열었던 리움의 vip 오프닝 파티에서 해외 갤러리나 미술계 인사들을 보고 마치 유명 연예인을 만난 것처럼 들떴는데, 이후 삼청동 길거리, 키아프 플러스가 열린 세텍, 그리고 프리즈 서울이 열린 코엑스, 어딜 가나 그들을 마 주칠 수 있었고, 하이파이브라도 해야 될 것 같았다. 온 우주의 기운이 서울로 흐르고 온 세상이 아트로 대동 단결하는 느낌에 흠뻑 빠져 버린 나는 홀린 것처럼 프리즈 서울에 매일 출근했다.

 이번 프리즈 서울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대단했던 것은 실제 숫자로 증명된다. 4일 동안 7만여 명이 관람했고, 총수익이 6000억 원에서 8000억 원 사이를 오갈 것으로 예상돼, 같은 기간 열렸던 키아프 매출의 10배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래도 처음 개최되는 프리즈에 언론의 관심도 컸고, 프리즈 명성에 걸맞게 이번 프리즈 서울에 참여한 해외 갤러리들이 들고 나온 작품들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프리즈 서울을 다녀온 내 지인들은 고대 유물부터 피카소, 마티스, 몬드리안, 에곤 쉴레 등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대가의 작품들을 보고 나니, 뭔가 문화적 충격으로 얼이 빠진 것 같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프리즈 서울에 들어갈 때랑 나올 때랑 눈높이가 달라진 것 같다면 과장일까. 당분간은 어떤 전시를 가도 그렇게 큰 감흥이 올 것 같지 않다.

에곤 쉴레 작품 앞 풍경

 이렇게 벅찬 감동으로만 끝나면 코엑스에 열심히 출근한 보람이 없지 않은가. 흥분된 마음은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프리즈 서울에서 봤던 작품들과 전시 기획들을 들여다본다. 대기업 회장님이나 미술계 큰손들이 범접할 수 있는 작품을 내 집에 들여놓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인 테리어 팁은 몇 가지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먼저 갤러리 현대 부스부터 살펴보자. 박현기, 이승택, 곽인식 세 작가 만으로 ‘돌의 세계’를 꾸몄는데, 특히 이승택 작가의 경우 5월에 갤러리 현대에서 개인전을 했기 때문에 더 반가웠다. 바닥에 설치한 돌의 조형물들도 좋았지만, 나무 창틀에 돌을 묶어, 벽에 창문처럼 아니 그림처럼 걸어놓은 세 개의 연 작이 인상적이다. 자연을 대표하는 소재인 돌이 주는 묵직함과 견고함, 영원성 같은 것들이 집안에 좋은 기운을 들여올 것만 같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취향이라면 돌의 단순한 물성이 찰떡으로 집에 어울릴 것이고, 자연을 느끼기 힘든 고층 아파트라든지, 식물이 없는 공간이라면 마음을 위로하는 돌 하나쯤은 필요할 것이다. 특히 우드톤 인테리어로 완성된 집이라면 더더욱 잘 어울리는 조합이 아닐까 싶다. 나무와 돌은 가까이서 서로를 채워주는 존재이니까. 이 작품을 보면서 벽에 거는 용으로 회화 작 품만 고집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입체나 설치 작업들도 벽에 고정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얼마든지 연출이 가능하다.

 Ugo Londinone 우고 론디노네의 형형색색의 청동 조각상들도 달리 보게 된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사막 한복판에 있는 9미터 높이의 7개의 돌탑인 <세븐 매직 마운틴(Seven Magic Mountains)>을 보면서 이런 돌들을 집안에 들여놓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지난번 국제 갤러리 전시 때 봤던 수도승 닮은 조각상을 봤을 때만 해도 그랬다. 그러나 이보다 크기가 작은 작품들을 글래드스톤 갤러리에서 보니 마음이 바뀐다. 돌을 닮은 청동이라는 묵직한 소재에서 오는 기운이 예사롭지 않다. 거기에 언뜻 어 울리지 않게 발랄한 형광톤의 색상들은 어쩐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외계의 매력을 발산한다. 이런 인공의 돌에서는 시간을 초월할 것만 같은 에너지가 느껴진다. 그의 다른 작품인 새벽 4시의 해나 새벽 6시 반의 달은 어떨까? 해나 달을 볼 수 없는, 여유 없는 삶을 사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만들어진 해와 달이라도 작지 않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돌이나 해와 달을 주제로 한 작품들, 혹은 이를 응용한 오브제들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 집 안에 작은 우주를 들이는 프로젝트로 봐도 무방하다.

 이번 프리즈 서울에서는 어마어마한 대가들의 작품들을 무심하게 걸어놓은 갤러리들이 단연 핫플레이스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줄이 길었던 곳은 리처드 내기 갤러리였는데, 오직 에곤 쉴레 작품, 40여점으ㅓ로만 승부를 냈다. 에곤 쉴레여서 기도 했지만, 관람객들이 이 갤러리의 전시를 좋아했던 이유는 한가 지 테마에만 집중해 강렬함이 더 극대화되었기 때문이다. 돈 갤러리에 있었던 렘브란트의 야경을 재해석한 Hu Zi의 녹색 연작들을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 같은 색과 주제로 연결된 작품들이 함께 있으니 그림도, 공간도 함께 사는 효과가 있다. 인스타그램 속 매일매일이 다른 팔색조보다는 한우물을 파는 모습에 더 끌리는 것처럼, 집 인테리어도 어느 정도의 통일성은 필요하다고 본다. 아래위 블랙 패션이 알록달록한 색으로 꾸미는 것보다 더 완성된 감각으로 느껴지듯이, 하나의 방향성은 단순하고 명료한 연출을 가능하게 만들고, 보다 강렬한 메시지를 준다.

물론 이렇게 작은 작품들로 공간을 꾸미는 일이 생각보다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것은 인테리어 고수들이라면 눈치챘을 것이다. 공간의 느낌을 지배하고 남을 큰 작품 하나로 승부하는 게 어쩌면 더 쉽고 효율적일지도 모른다. 이번 프리즈에서 생 로랑과의 콜라보로 섹션 하나를 전부 채운 이배 작가의 신작은 조현화랑에서도 만나볼 수 있는데, <불로부터-흰 선(Issu du feu white Line)>이다. 검은 숯 바 탕에 흰 선들이 물결치듯 그어진 여섯 개의 연작인 이 작품은 중세 시대의 묵직한 성문처럼 우뚝 서 있다. 처음에 나는 이 여섯 점이 하나의 작품인 줄 알고, 과연 이렇게 큰 작품을 받아들일 수 있는, 아니 소화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을까 의문스러웠다. 큰 회사의 로비라든지, 층고가 어마어마한 대저택의 거실 정도면 부담스럽지 않으려나 말이다. 크기도 크기지만 이 작품이 내뿜는 기운이 보통은 아니지 않는가. 무려 불로부터 나오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 기세에 너무 주눅 들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런 거대한 작품으로 거실 벽 전체를 틈 하나 남기지 않고 채우면 어떨까. 작품이 하나의 벽이 되어 공간을 더 웅장하게 만드는 연극적 효과가 있지 않을까. 내가 처음에 이 작품을 보고 하나의 거대한 벽으로 느꼈던 것처럼 말이다. 또 작품이 크다고 반드시 큰 벽에 걸 필요는 없다. 어중간하게 공간을 남겨서 어설프게 보이는 것보다는 작은 벽면을 꽉 채워서 큰 작품을 걸면 공간을 더 확장시켜 보일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인테리어의 마무리이자 하이라이트는 조명이다. 이번 프리즈 서울에서는 조명의 역할처럼 빛을 다루고 빛을 연상시키는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눈에 띄었다. Tomás Saraceno 토마스 사라세노의 작품을 보면서 처음에 진짜 조명인 줄 알았다. 거미집 같기도 하고 구름같이 보이기도 한 그의 작품이 테이블 위 천장에 매달려 있어서 착각을 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간접 조명이 시공된 거실에, 소파나 테이블에 어울리는 느낌으로 조명처럼 매달 수 있는 오브제를 활용하는 것은 괜찮은 생각이지 않을까 싶다. 굳이 조명의 기능이 없어도 장식 효과만으로도 충분하다. 작품의 소재에 따라서는 빛이 반사되면서 조명 같은 기능이 연출되기도 한다.

 내 공간에 빛 이상의 빛이 필요하다면 Olafur Eliasson 올라퍼 엘리아슨의 무지갯빛 유리알들이나 장 미셀 오토니엘의 유리구슬 같은 느낌의 오브제들을 창문 옆에 붙이거나 걸어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물방울 모양의 은도금 유리 파편들이 길게 늘어진 화려한 목걸이 같은 Teresita Fernández 테레시타 페르난데스의 작품도 침대 헤드 위나 빛이 슬며시 들어오는 복도 끝, 그 어디에 두어도 환상적일 것이다. 다이닝룸 벽면을 장식한 그녀의 작품 덕분에 리먼 머핀 갤러리의 공동 대표, 데이비드 머핀의 다이닝 룸은 매력적인 공간으로 변신했다. 반지 하나에 내 손가락이 화려 해지는 것처럼, 이런 아이템들은 내 공간을 환하게 바꾸고, 그 안에서 나도 함께 빛나게 만들어 줄 것만 같다. 빛을 머금은 이런 오브제를 아이방에 두면 아이의 미래도 더 영롱하게 빛나지 않을까.


#여성조선 10월호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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