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컬러는 무엇입니까?
글로벌 색채 전문 기업 팬톤 Pantone이 발표한 2023년 올해의 컬러는 비바 마젠타이다. 비바 마젠타는 레드 계열의 색으로 진홍색과 비슷한 편이다. 팬톤은 이 비바 마젠타를 선정한 이유로 따뜻함과 차가움 사이의 균형을 제시하며 용감하며, 두려움 없는 활기 넘치는 색상으로 낙관과 즐거움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균형, 용감, 활기, 낙관, 즐거움이라는 듣기만 해도 좋은 말들이 이 색상 안에 다 들어있다. 몸에 좋은 알찬 성분으로 구성된 종합비타민처럼 말이다.
이름부터 이미 만세(비바)를 품었으니 앞으로 승승장구할 것 같은, 너무나도 당당한 레드 계열의 비바 마젠타가 최애 컬러인 사람도 있겠지만,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후자가 나의 경우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비바 마젠타 컬러의 옷은커녕, 굴러 다니는 쿠션도 없다. 그나마 자주 바르는 립스틱의 색상이 흡사한 것 같기도 한데, 실은 잘 어울리지 않아 손이 가질 않는다. 다행인 것은 올해의 컬러는 올해의 컬러일 뿐, 영원한 컬러는 아니라는 것이다. 비바 마젠타 말고도 나와, 혹은 당신과 결이 잘 맞는 컬러들은 얼마든지 있으니 그것 또한 다행이지 않은가.
올해의 컬러를 넘어서 아예 나만의 컬러를 만들어버린 사람도 있다. IKB란 색을 개발해서 특허를 신청한 프랑스 작가 이브 클랭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IKB는 인터내셔널 클랭즈 블루의 약자로, 어떤 환경에서도 동일한 밝기와 농도를 지니도록 합성수지에 건조시킨 안료를 섞어 울트라마린의 짙은 버전을 만들어냈다. 그는 IKB 색으로만 200점에 달하는 IKB 회화를 남겼고, 짙은 청색의 모노크롬 화면은 그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모든 기능적 정당화로부터 해방된, 파랑 그 자체”라며 클랭은 자신의 IKB 색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전시회를 열어 화제를 일으켰던 그는 어떤 아티스트보다 실험정신이 강했고, 어떤 속박에서도 자유로웠다. 팬데믹으로 답답하게 갇혀 있었던 우리의 일상을 클랭이라면 어떻게 그려냈을까.
이브 클랭의 청색을 이야기하다 보니, 얼마 전 김환기 화백의 청색 전면점화를 한참을 넋 놓고 바라봤던 기억이 떠오른다. 김환기는 생의 마지막을 맞이한 뉴욕에서 이 점화 시리즈를 그렸다. 몇 년 전 뉴욕에 갔을 때 김환기의 스튜디오가 있었던 건물 앞을 일부러 찾아갔다. 그가 어디서 살았는지, 작업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어퍼웨스트에 위치한 그의 공간은 센트럴 파크와 무척 가까웠다. 건물 앞에서 센트럴 파크 방향을 바라보니, 작업을 하다 잘 풀리지 않으면 센트럴 파크로 머리를 식히러 산책 나오는 김환기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상상되었다. 작업에 대한 고민도 많았지만 김환기는 뉴욕 시절을 힘들어했다고 한다. 무미건조한 고층 건물의 도시, 뉴욕에 본인도 마비되는 것 같다고 체념조로 이야기하곤 했다. “조국이라는 게, 고향이라는 게, 내 예술과 우리 서울과는 분리할 수 없을 것 같아…” 해가 유독 짧은 12월, 못 견디게 고향이 그리워지는 시간들이 자주 찾아왔다. 그렇게 그는 절절한 마음을 담은 미묘한 푸른 빛깔을 얻었다.
김환기의 작품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푸른 점들이 모여 세상, 아니 거대한 우주를 이룬다. 서울을 그리워하며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찍어가는 점들. 그 점들에는 조국에 대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 있다. 그가 대작의 전면점화를 시작한 1970년, 공교롭게도 암스트롱이 몇 달 뒤 달에 도착했다. 우주의 기운은 이때부터 캔버스와 우주선과 도킹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김환기가 캔버스에 그려낸 점들은 미묘한 푸른 빛깔로 절절하게 빛나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 지 알 수 없는 우주로 우리를 데려간다.
피카소를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로 추앙했던 김환기는 마크 로스코도 엄청 좋아했다. 마크 로스코는 몇 가지 색면으로 분할한 화면을 스며드는 표현기법으로 구성했다. 한지에 먹이 스며들고 번지게 표현하는 동양적인 기법과 비슷한데, 실제로 그는 동양의 선 사상을 바탕으로 정신수행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지향했다. 다른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의 작품에 비해 그의 작품에 유독 친밀감이 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나 보다. 그는 자신의 작품과 관람객이 교감하기를 강렬히 원했는데, 그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그의 작품 앞에 서면 알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몰려와 울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간증들을 너도나도 하는데, 그가 작업했을 때 느꼈던 것과 같은 종교적 경험이라고 한다. 물론 큰 캔버스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숭고한 감정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관람객의 마음을 가장 먼저 압도하는 것은 색채가 아닐까. 선과 면의 경계가 모호한 색의 블록들은 서로 밀어내기도 하고 어우러지기도 하면서, 우리의 감정을, 우리의 영혼을 어루만지듯 품어준다. 마치 내 앞에선 어떤 표정을 지어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처럼.
마크 로스코는 이런저런 조합으로 여러 가지 색들을 많이 사용했는데, 그중에서도 레드를 가장 아꼈고,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도 역시 레드였다. 레드는 강렬하고 매혹적이다. 때론 너무 강해서 부러질 것 같기도 하고, 때론 너무 유혹적이어서 옴짝달싹 못하게 만든다. 로스코는 그의 레드와 함께 소멸해 버렸다.
이브 클랭이나 김환기, 마크 로스코와 같이 색에 집중한 작가들의 작품을 접하다 보면 색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색에 눈이 떠지게 된다. 저렇게 쨍한 파랑의 니트가 내게 어울릴까. 이런 여리여리한 톤의 푸른빛 스카프는 어떨까. 옷이나 액세서리에서 시작된 관심은 내가 사는 공간으로 자연스레 확장된다. 흰색 접시들 사이에 IKB 색 컵이 올려진 식탁 아래에는 은은한 푸른빛의 러그가 깔려있다. 로스코의 그림 포스터를 걸어두는 것으로 만족했지만, 로스코의 레드에 끌려 붉디붉은 소파를 내 공간에 들일 과감한 결단을 내린다. 그 위에 두면 어울릴 쿠션들까지 배치하고 나니, 마치 한 폭의 로스코의 그림 같다. 회색의 대리석은 뻔하다. 파란색 벽타일에 노란색 바닥 타일을 깐 화장실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작가 베르메르의 색들을 빌렸다. 이런 공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삶이 재밌어지지 않나. 유명한 작가들이 내 공간과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색은 공간에 적절한 포인트로 지루함을 없애고, 삶에 활기와 생기를 가져다주는 신비한 힘이 있다.
우리 집 거실에 놓인 허먼밀러의 파이버글라스 파란 의자는 김환기의 푸른빛과 닮았다. 스크래치처럼 보이는 수많은 선들은 마친 김환기의 화폭 속 푸른 점이 우주 속 별이 되어 움직이면서 생긴 자국처럼 보이니 말이다. 김환기를 좋아하는 내가 김환기의 색을 쫓아가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김환기의 그림을 소유할 수는 없다. 대신 그의 작품을 보면서 얻은 시각적 자극들을 흡수해 취향, 감각, 그리고 언젠가는 안목으로 발전할 날이 올 것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예술을 찾아가 기꺼이 영향을 받으려 하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다양한 시도와 실패는 필수이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나의 컬러들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적절히 배치해 나의 공간을 꾸밀 감각과 안목을 갖추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새해에는 미술관이나 갤러리와 더 가까워지라는 조언을 반복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어렵다면 이 아트 칼럼을 읽는 것만으로도 조금의 도움이 되길 새해를 맞아 희망해 본다.
#여성조선 1월호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