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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린 Oct 26. 2022

'포르드브라'를 함께 하고픈 그녀에게

거리에 은행나무가 노랗게 노랗게 물들어간다. 노랗게 물들기 전 은행나무라 생각 못했던 것들도 지금 보니 은행나무다. 그러고 보니 베란다 창밖으로 보이는 벚꽃나무가 어느새 갈색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팝콘처럼 화사한 꽃잎들로 봄을 알리던 게 얼마 전 같은데 벌써 반년이 지나간다. 자연의 이치가 참 신비롭다. 여름 내내 매일 똑같아 보이던 초록 나무들이 노란색으로 붉은색으로 갈색으로 제각각 다채로운 색을 뽐내는 걸 보면 가을이 한창 무르익어가는 중인가 보다.

     

봄에 피는 봄꽃들은 찰나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종적을 감추는데 가을 단풍은 봄꽃보다 조금은 오래 감상할 수 있어 그나마 덜 아쉽고 위안이 된다.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 살고 있어 불편한 점도 있지만 자연의 변화를 오롯이 감상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필리핀 친구는 한국의 사계절이 부럽다고 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사진을 보내달라고 귀엽게 조른다.  


“언니, 난 체리블라썸이 너무 좋아. 아직 눈으로 직접 보진 못했지만 언젠가 꼭 보고 싶어. 언니가 너무 부러워.”     


지난봄, 아파트 단지 앞에 핀 벚꽃 사진을 보내준 것뿐인데 그녀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벚꽃을 소재로 시 한 편을 적어 보내기도 했다. 가을이 되면 나뭇잎의 색깔이 변한다는 사실에 또 한 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다.

      

“언니, 나뭇잎 색이 정말 아름답다. 믿기지 않아. 사진 속 저 나무는 원래 무슨 나무였어? 곧 겨울이 오는 거야? 첫눈은 언제 내려?”

     

나에게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지 않게 반응하는 모습에 우리나라 사계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BTS가 좋아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알고 싶어 한국인인 나와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는 그녀. 내가 유럽의 이국적인 풍경과 문화에 매력을 느끼는 것처럼 한국 문화와 언어, 한국 사람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언니, 오늘은 뭐해?”    

“발레 가는 날이야.”

“와우! 언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댄스가 발레야. 발레를 정말 배우고 싶은데 여기는 발레 배울 곳이 없어. 그럼 발레 대회 같은데도 나가는 거야?”

“응? 그건 아니고 그냥 운동 삼아하는 거야.”     


그녀는 내가 발레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발레 사진을 보내달라고 요청해왔다. 난감했다. 취미 발레를 시작한 지 어느 정도 시간은 흘렀지만 실력은 늘 제자리고 다리 찢기는커녕 균형 잡고 다리 올리기 조차 할 수 없는데  발레 사진이 웬 말인가. 나만 느끼는 미세한 복근 사진을 보내줄 수도 없고. 생각해보니 코로나 기간 쉬었던 기간을 제외하고 3년째 발레를 하고 있는 중이다. 남들이 들으면 어느 정도 자세가 나오겠구나, 할 수도 있지만 취미 발레로 3년은 그리 긴 시간은 아니다. 1번 발레 선생님에게 꾸준히 배웠다면 마음고생은 해도 실력이 쑥쑥 늘었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취미 생활만큼은 맘 편하게 하고 싶었다.


지난번 새로 산 레오타드를 입고 찍은 사진 한 컷을 보내줬다. 묘한 뉘앙스로 놀리던 후배의 반응과 사뭇 달랐다.      


“발레복이야? 예쁘다, 언니. 다음에는 발레 동작하는 사진도 보내줘. 사진 보니까 나도 발레 하고 싶어.”     


K 여배우처럼 시원하게 다리 찢기 사진은 언제 즘 보낼 수 있을지, 이번 생은 글렀을 수도 있지만 언젠가 그녀가 한국에 오면 포르드브라 발레 동작을 함께 해보고프다. 포르드브라는 크게 힘들이지 않고 발레리나 기분을 만끽하기에 충분한 동작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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