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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린 Oct 26. 2022

밸런스 잡고 뻔뻔하게 발레 하기

낯 가리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이지만 나도 모르게 뻔뻔해지는 순간이 있다. 주위에 아는 사람이 없을 때, 또는 맥주 한잔 마실 때 얼굴이 두꺼워지고 비로소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한다. 그렇다고 막 나가는 건 아니고요. 글을 쓸 때 역시 얼굴이 드러나지 않아 말할 때보다 뻔뻔해지는 편이다.           


특히 아는 사람 만날  없는 해외여행지에서 뻔뻔하게 잘도 돌아다니는데  뻔뻔함을 유지하기 위해 혼자 여행 가는  좋아한다.  말고 나를 아는 사람이 없기에 모든 것이 자유롭다. 물론 외로움도 따르지만 자유와 평화가 있다면 그깟 외로움 견딜 만하다. 외국인과 대화할  나의 뻔뻔함은 극치에 다다른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문법이 맞거나 틀리거나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순서  틀리면 어떤가.  나라 사람도 아니고 그네들 입장에서 나는 외국인인데 주어 동사 위치 틀렸다고 지적하는 외국인  명도 없다. 우리나라에서 만나게 되는 외국인이 한국말  틀렸다고 흉보지 않는 것처럼 그네들도 신경 쓰지 않는다.      


해외여행 때 뻔뻔하게 생존 영어를 구사하듯 발레 역시 뻔뻔하게 부딪치는 분야 중 하나다. 제대로 요가를 배워본 적 없고 근력 운동을 해본 경험이 없는 나의 몸은 어떻게 근육을 사용하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발레를 시작했다. 발레 선생님이 알려주는 대로 팔 뻗으세요, 하면 팔을 뻗고 다리 올리세요, 하면 다리를 올렸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의심할 생각이 1도 안 들 정도로 백지상태였다. 그래서인지 딱히 부끄러울 것도 창피할 것도 없었다. 다른 사람은 되는데 나는 왜 안 되지, 싶은 생각이 가끔은 들지만  대회 나갈 것도 아니고 그냥 운동만 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회원님, 자세 잘 잡으셔야 해요. 다른 분들이 회원님 쳐다보고 하잖아요.”     


여느 때와 같이 되든 말든 최선을 다해 동작을 따라 하던 중 2번 발레 선생님이 곁으로 와 속삭이듯 귀에 대고 말을 건다. 응? 무슨 말이지? 주변을 살펴보니 자리 잡은 곳이 앞줄 중간 자리 즘이었다. 아, 센터에 있으려면 제대로 신경 써서 하라는 얘기구나. 센스 있게 돌려 말하는 2번 발레 선생님의 의중을 파악한 후 결코 앞줄 중간 자리는 탐내지 않았다. 뻔뻔하게 발레 하더라도 타인에 대한 배려는 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그 자리는 피하고 가능한 구석 자리를 잡아 발레를 하고 있다.   


무용을 전공한 지인 한 명이 있다. 그녀는 웬만해선 본인 전공을 밝히지 않았다. 멈추지 않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면서 유독 그 부분은 꺼려했다.      


“사람들이 무용 전공한 사람 몸매가 왜 그러냐고 흉볼까 봐.”     


남의 시선 때문에 본인의 전공을 숨기다니. 처음엔 놀랍기도 하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후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나 또한 일상생활에서 타인의 시선이 두려워 아예 나서지 않는 일이 부지기수니까.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가 삶의 모토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살아보니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의 이야기에 지속적인 관심이 없더라. 관심이 많은 것 같다가도 결국 본인들 먹고살기 바쁘다. 대화를 하는 그때 그 상황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할 말 못 하면서까지 남을 의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주변을 살피지 않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건 문제지만 눈치만 보다 속으로 상처받는 건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 특히 상대가 솔직함을 무기로 무례하게 선을 마구 넘어대는데 나 혼자 예의 차리며 끙끙 앓을 필요는 없다. 한동안 그런 부류의 사람에게 대응하는 건 똑같은 사람이 되는 거 같아 슬쩍 피해만 다녔다. 한데 피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더라.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정문정 작가는 “나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을 자꾸 참으면 내가 무기력해진다. 무례한 사람을 만난다면 피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나만의 대처법을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무례하게 언행 하는 사람이 매일 보는 회사 상사 거나, 가족이거나, 어린 시절 친했던 죽마고우 거나 할 때 고민의 시간이 길어지고 내적 갈등은 더욱 심해진다. 안 볼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나의 격이 떨어지지 않으면서 무례한 사람 또는 무례하게 변한 사람을 대응할 수 있는 레시피 하나 즘은 만들어 놔야겠다. 영화 <친절한 금자 씨>에서 핏기 없는 얼굴로 심드렁하게 "너나 잘하세요"라고 하는 영애 언니가 떠오른다. 일상생활에서 수줍음은 내려놓고 할 말은 하되 취미 활동할 때는 눈치껏 뻔뻔하게 발레 하며 유도리 있게 삶의 균형을 맞추며 살아볼 테다.


"저기요, 너나 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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