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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성 Jul 03. 2020

신주쿠에서 돈가스를 사준 그 남자는 어디로 갔을까?

마음의 부채에 대하여

나리타행 비행기를 타고 일찌감치 자리에 앉아 있는데 짐을 올리는 사람들 사이로 눈에 띄는 남자가 있었다. 루이비통 추리닝을 아래 위 세트로 입고 커다란 루이비통 가방을 든 남자가 루이비통 쇼핑백을 선반에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무심코 보게 된 그의 신발도 역시 루이비통이었다. '아무리 루이비통을 좋아하기로서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루이비통 차림을 하다니' 굉장히 독특하다고 생각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그 남자가 갑자기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이 아닌가.


"저기요. 그곳이 당신 자리가 맞나요? 제 자리에 앉으신 것 같습니다만..." 


다행히 그의 일본어를 대충 알아들을 수 있었던 나는 그럴 일이 없다는 단호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비행기 티켓을 확인했다. 이럴수가. 내가 착각한 게 맞았다. 나의 원래 자리는 그의 바로 옆이었다. 순식간에 얼굴이 확 더워지는 걸 느꼈다. "아! 스미마셍!"


그 날은 난생 처음으로 혼자 일본에 가는 날이었다. 지하철 노선도가 복잡하기로 소문난 나라에서 신주쿠까지 홀로 찾아 가야 한다는 걱정 때문이었는지 평소에 하지 않던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건 마치 로맨틱 코미디에서나 나올 법한 스토리가 아닌가. 살짝 진부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남주와 여주의 우연한 만남이 시작되는 계기로 더할 나위 없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로맨스가 펼쳐지지 않을 거라는 표식은 또 있었다. 나는 그에게 반하지 않았다는 것. 상상은 자유니까, 이런 저런 공상을 하며 비행기가 이륙하기를 기다렸다.   


비행을 하는 내내 '혼자 신주쿠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기대감으로 설레고 떨리는 마음과는 별개로 여행은 현실이기도 했으니까. 가이드북을 뒤적거리고 있으니 그가 한국인이냐고 물어봤다. '한국인이에요' 라는 대답 외에는 딱히 할 말이 없었기 때문에 이후 별 다른 이야기가 오고 가진 않았다. 그러다 착륙이 30분 정도 남은 시점, 신주쿠까지 가는 길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막막했던 나는 용기를 내 그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공항에서 신주쿠까지 어떻게 가나요? 아무리 노선표를 봐도 모르겠어요”


그는 매우 친절한 사람이었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천천히, 중간중간 ‘할 수 있다’는 응원의 말도 섞어가며 설명을 해줬다. 그러다 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공항에 주차해 둔 차를 타고 갈건데 네가 괜찮다면 신주쿠에 데려다 줄게. 어차피 나도 그쪽으로 가야 하거든.”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 그의 제안을 수락하기로 했다. 만약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테이큰>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 장담할 수 없지만 그냥 내 직감을 믿어보기로 했다.


다행히 동생과 만나기로 한 호텔에 무사히 도착했고 체크인도 무사히 마쳤다. 동생과의 약속 시간은 아직 한 시간 남아있었다. 그는 동생을 기다리는 동안 점심이라도 먹자고 했다. 낯선 곳에서 베풀어준 호의에 보답하고 싶었던 나는 ‘점심도 살 겸 잘됐다. 빚을 갚을 기회야’라고 생각하고 돈가스를 먹으러 갔다. 그런데 그 돈가스마저도 그가 계산해 버려 밥까지 얻어먹은 셈이 됐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고맙고 미안했지만 일본어가 서툴러 그저 '고맙다'는 인사만 연신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한국에 오게 되면 꼭 연락하라고, 한국에서는 내가 정말 맛있는 걸 대접하겠다고 하면서 약속하며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간간이 안부를 물으며 지내다 몇 달 뒤 서울에 오게 됐다는 연락이 왔다. 언제, 어디서 보자는 약속까진 하지 않았고 서울에 오면 전화를 하겠다고 했다. 마침내 그에게 전화가 걸려왔는데 그가 뭐라고 하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전화로 소통하는 건 꽤 난이도가 있었다. 나는 이해하려고 애썼지만 모르겠다는 말만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카톡이나 라인이 아직 나오지 않은 시기였다. 나는 일본어를 못하고 그는 영어를 못해 문자를 주고 받을 수도 없었다. 그와의 연락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이 났다.


나이를 먹을수록 마음의 부채도 늘어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까. 누군가가 기꺼이 내어준 마음에 제 때 고마움을 표하지 못한 일들에 자꾸만 머릿 속이 어지러워진다. 적절한 타이밍을 찾지 못해 하지 못한 감사의 인사, 어쩐지 겸연쩍어 미루고 미루다 영영 놓쳐버린 보답의 기회, '나중에 하면 되지' 하다가 잊어버리고 만 고마운 마음들. 마음의 빚이 많다는 건 다시 말해 나라는 인간이 무너지지 않고 제 몫을 다해 살아갈 수 있게 해준 도움의 손길이 많았다는 뜻일테다. 그동안 이룬 크고 작은 성취들과 행운이라 여겼던 일이 가능했던 건 '보이지 않는 손' 덕분이었다는 걸 왜 몰랐을까. 빳빳하게 들고 살았던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차라리 그 때 그 자리에서 우겨서라도 돈가스를 내가 샀으면 어땠을까, 그에게 메일이라도 보내 상황을 설명하고 우편으로 자그마한 선물이라도 보냈다면 좋았을텐데. 지금은 그의 연락처도 메일주소도 남아 있지 않지만 만약 그가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메일이라도 보내줬으면 좋겠다. 'To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당신에게. 그 때는 정말 고마웠어요. 한국에서 맛있는 양념갈비라도 대접할게요.'


글 김희성 (@heeseongkim)

그림 김밀리(@kim_milli_)



 글을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신 브런치 독자분들 덕분에 <질풍노도의 30대입니다만> 7,  권의 책으로 나오게 되었어요. 30대를 지나며 세상에 홀로 거센 바람을 맞고 있는 듯한 느낌이  , 머리맡에 두고 조금씩 꺼내 읽으며 위로가 되는 존재가 되었으면 합니다. 앞으로도 30대에 대한 이야기들은 브런치에 계속 써나갈거구요, 조금  소소한 30대의 일상과 책과 관련한 다양한 소식은 인스타그램(@heeseongkim)에서 공유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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