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배달앱에 서서히 중독된 것인지도 몰라
내 옷장에는 비싼 옷이 없다. 그렇다고 명품 가방이 많은 것도 아니다. 내 돈으로 산 명품 가방은 딱 하나인데, 책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에 어느 옷에 메도 어울리는 생로랑 니키백(미디움 사이즈)이 바로 그것이다. 새로운 것, 좋은 것을 많이 보는 직업이라 가지고 싶은 가방은 많았지만 선뜻 구매로까진 이어지진 않았다. 내겐 너무도 비싸게 느껴졌고, 또 그만큼 간절하게 갖고 싶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집에 디자이너의 조명이나 구하기 어려운 가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항상 돈은 부족한 기분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카드값은 항상 많이 나와 월말이 되면 당혹스럽다. 대체 뭐가 문제일까?
'안되겠다...' 짠테크로 1억, 2억 모으기에 성공했다거나 지출 줄이기에 성공했다는 유튜브 영상들을 틈틈이 보면서 대체 나의 문제는 무엇일지 생각해봤다. 통장이 텅장이 사람들을 위한 재테크 전문가들의 조언을 종합해 보면 공통적인 조언이 있었다. '신용카드를 자르라'는 것. 이 조언조차 아주 예전부터 지겹게 들어왔던 것이지만 이번에야말로 한 번 적용해볼까 싶었다. 신용카드를 쓰지 않으면 지출에 덜 둔감해질 수 있을까? 나는 돈을 덜 쓰게 될까? 신용카드가 이 모든 문제의 원흉이었을까?
신용카드를 당장 가위로 자르진 못했지만, 이번 달부터는 신용카드를 절대 쓰지 않고 '체크카드로 한 달 살기'를 해보기로 했다. 여기에 더해 가계부 쓰기로 대체 나는 어디에 돈을 쓰는지 지출을 파악해 보기로 했다. 재테크에 성공했다는 사람들의 조언 중 '가계부를 쓰라'는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가계부를 쓰려고 보니 그 세계도 어마어마했다. 거꾸로 쓰는 가계부, 만원을 쓸 때마다 칸을 칠해 한 달의 지출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가계부 등 여러 종류의 가계부를 보다 가계부 고르기를 포기했다. 생각해보니 집에는 안 써서 방치되어 있는 노트가 많고, 가계부를 덜컥 샀다 앞장만 쓰고 다시 방치하는 일이 벌어질까 싶어서다. (나는 나를 잘 안다. 귀차니즘이 정말 심한 사람이다)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쓸 수 있는 '위플' 가계부 앱을 깔아 돈을 쓸 때마다 기록해 보기로 했다. 밖에서 이동할 때나 잠자리에 누워 뭔가를 결제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를 다시 노트 형태의 가계부에 옮겨 적는 건 나에게 불가능한 일일 것 같고 차라리 바로바로 위플 앱에 금액을 적고 소비 카테고리를 선택하는 게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그 시도는 실패. 두 달 정도 해본 결과 신용카드 안쓰기, 가계부 쓰기는 지출을 줄이는 데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쓰는 돈은 비슷한데 그걸 가계부에 적느라 귀찮기만 했다. 느낀 점은 있다. 가계부에 막상 지출을 적어보니, 내가 생각보다 돈을 자주 쓰고 있음을 발견했다. '많이'보다는 '자주'가 문제였다. 잠자리에 누워 컬리, 오아시스로 식재료 구경을 하다 최소 배송비를 채워 최소 3만원 이상씩 구매, 유튜브 보다가 좋아 보이는 화장품 충동 구매, 쿠팡으로 청소용품이나 생활 용품 구매, 인스타그램 보다가 추구미 장착한 옷 구매 등. 하지만 이 중에서도 가장 문제적인 소비는 습관적인 배달앱 사용이었다. (가계부 쓰기를 통해 문제점을 파악하게 되었으니 가계부 쓰기를 실패라고 할 순 없겠다. 이만하면 성공이다.)
나는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라 특별한 약속이 없는 한 삼시세끼를 집에서 해결한다. 회사에 안 다니면, 회사에 다니느라 쓰게 되는 비용이 주는 것도 많지만 이 생활도 연차가 쌓이면 집에서 숨 쉬듯 쓰는 돈이 늘어나게 된다. 처음 프리랜서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카페, 베이커리 메뉴들이 이렇게 다양하게 배달되지는 않았는데(그 때만 해도 거의 맥모닝을 애용했다) 요사이는 집 근처 핸드드립 최애 카페, 소금빵 맛집, 브런치 가게 등에서도 배달이 되니 매일 아침 다양한 종류의 빵과 커피를 먹는 재미가 있다. 문제는 그만큼 늘어나는 소비다. 한때 아이돌 샌드위치에 빠져 아침마다 아이돌 샌드위치와 커피를 주문해 아침 식사 겸 먹곤 했는데, 요즘에는 누네띠네 휘낭시에를 파는 카페에 꽂혀 자주 시켜 먹곤 한다. 그러고 나서 점심이 되어 출출해져 올 때면, 또 배달앱을 켜서 뭘 먹을지 고른다. 저녁도 배달로 간편하게 해결할 때가 많다. 하루 최소 1~2회 배달로 먹을 걸 공수하는 금액을 찬찬히 복기해 보니 별 생각없이 주문하던 배달 커피와 식사가 내 잔고를 야금야금, 무서운 속도로 갉아먹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이고, 내 돈.
일단 지금까지 나의 문제는 돈의 크기보다 돈을 쓰는 빈도에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 중 가장 큰 문제는 습관적인 배달앱 사용이고. 오늘도 아침에 눈을 떴는데,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소금빵이 먹고 싶은 기분이 들어 습관적으로 배달앱을 켜 행복한 기분으로 먹을 걸 골랐다. 예전 같으면 그냥 주문했을텐데, 이제는 고민이 된다. 이걸 아예 안 시킬 순 없을까? 그럴 땐 과감하게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일단 일어나서 매일 아침 루틴인 양치를 하고, 체중계 위에 올라간다. 아침마다 빵을 먹은 영향인지 조금씩 불어난 몸무게를 보면 빵을 주문하고 싶은 욕망도 사라진다. 미리 구매해 둔 드립백을 내리고, 냉장고에 있는 CCA 주스로 건강한 아침 식사를 한다. 진심으로 소금빵이 먹고 싶었다면, 그 이후에도 계속 생각이 나야하는데 거짓말처럼 먹고 싶은 감정이 사라진다. 어쩌면 나는 배달앱에 서서히 중독된 것일지도 모른다. 아침마다 맛있는 걸 구경하고, 고르고, 그 맛을 상상하며 기다리기. 나의 도파민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