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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준 Jun 21. 2019

제노베제 페스토 파스타

유럽 여행에 품격을 더하다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틈틈히 모아둔 글들을 모아서 책으로 내는 작업을 하느라 미친듯이 바빴습니다.

이게 금방 끝날 것 같아서 집중하느라 글 올리는 것을 잠시 중단했었는데 생각보다 손이 엄청 많이 가고 아직도 다 마무리가 안되어서, 그 사이 다녀온 이야기를 모처럼 올려봅니다. 책을 한권 낸다는 것이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엄청난 고생을 해야 비로소 탄생된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끼네요. 작가님들 정말 대단하신 분들입니다!!


제노베제 페스토 파스타(Genovese Pesto Pasta)는 말 그대로 제노바의 페스토 파스타입니다. 그럼 페스토는 뭐냐, 이제 한국에도 많이 들어와있지만 아직 대세라 하긴 좀 부족한 소스로, 신선한 바질 잎과 잣을 절구에 빻아서 올리브유에 버무린 소스입니다. 독일에서 참 많이 먹었던 파스타인데요, 뭔가 좀 다른 점이 느껴지나요? 그렇습니다. 전혀 가열하지 않은 소스입니다. 모든 것이 신선합니다. 특히 제노바가 속한 리구리아 주는 가장 섬세한 고급 올리브유가 나오는 곳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당연히 파스타는 바질향이 코를 간지르고 잣의 고소한 맛과 과하지 않은 섬세하고도 신선한 올리브유가 중심을 잡아주는 요리입니다. 올리브유가 되직해도 안되고 군내가 나도 아웃입니다. 신선함을 강조한다고 요즘 유행인 미숙 올리브를 섞는 것도 안됩니다. 그러다보니 한국에서 접하는 병입된 완제품으로는 절대로 이 페스토의 진가를 할 수 없습니다.

제가 독일에서 살면서 먹어왔던 페스토 파스타는 대부분 가열을 하지않은 소스라는 신선함을 강조하는 파스타들이었습니다. 다소 심심할 수있는 부분을 파르메쟈노 레쟈노 치즈가 흔들림없이 맛을 잡아줍니다. 종종 여행가는 이탈리아에서도 페스토 파스타는 독일에서 자주 먹던 그것과 그리 큰 차이는 없었습니다.


글 쓰는 요리사로 유명하신 박찬일 셰프님의 글 중에 제노베제 페스토 파스타에 대한 이야기를 우연히 읽게 되었습니다. 제노바의 진짜 원조 페스토 파스타는 멸치젖인 안초비가 들어가고, 치즈도 파르메쟈노 레쟈노가 아닌 양젖 치즈인 페코리노가 들어가서 이러한 재료들에 익숙한 유럽동료들도 거의 못먹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분명 맛이 없다고 누군가 경고해도 기어코 자기 입으로 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좀 미련한 사람들 있잖아요, 제가 딱 그런 류의 인간입니다. 그 글을 읽은 후에 너무너무 궁금해 죽겠는것입니다. 독일에도 정말 많은 이탈리아 레스토랑이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탈리아 요리를 너무 좋아해서 거의 하루 한번은 먹는데 그렇게나 많은 페스토 파스타를 먹었음에도 제 머리 속에 각인된 페스토 파스타는 항상 바질의 싱그럽고 섬세한 올리브유의 매끈함에 잣의 고소함이 어우러진 요리인데, 멸치젖에 페코리노 치즈? 상상이 잘 안되었습니다. 도대체 무슨맛일까? 그리고 왜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래서 갔습니다. 오로지 페스토 파스타를 먹어보기 위하여.

제노바는 지중해 패권을 두고 베네치아와 경쟁하던 항구도시국가였습니다. 지중해를 통해 멀리 동쪽 끝 비잔틴제국과도 교역을 많이 했습니다. 비잔틴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 지금의 이스탄불을 가면 갈라타다리와 탑으로 유명한 갈라타지구가 과거 제노바상인들의 집단 거주지역이었습니다. 숙소로 정한 삐에몬테의 알바를 떠나 리구리아주로 들어가는 길은 높은 산지를 넘어야합니다. 마치 태백산맥을 넘어 동해안에 붙어있는 강릉이나 속초처럼 산맥의 급경사면이 끝나는 끝자락의 좁은 바닷가에 빽빽하게 제노바는 자리잡고 있습니다. 비잔틴풍의 건물들이 있나 유심히 살펴봅니다. 제노바 대성당에 슬적 들어가 봅니다. 외관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웅장한 건물이고 내부의 앱스(Apse)는 바로크풍의 전형적인 이탈리아 성당입니다. 그런데 신랑과 측랑을 구분하는 기둥들이 묘합니다. 스페인쪽에서 볼 수있는 이슬람식 무어양식의 스멜이 뿜뿜 그리고 뒤를 돌아보니 주정문 위의 파사드를 장식하고 있는 벽화들이 역시 비잔틴풍의 그림들입니다. 기대한 것처럼 도시 곳곳에 비잔틴의 향기가 많이 배어있진 않지만 그래도 유서 깊은 도시의 내공은 충분해 보입니다.



트립 어드바이져로 검색해 둔 식당 몇군데를 돌아봅니다. 드디어 먹어보는 제노베제 페스토 파스타입니다. 엄허, 색부터 다르네요. 일단 아주 농밀하고 질척한 소스이고 미리 면에 충분히 비벼져서 나옵니다. 이러면 가열하지않고 신선한 맛에 먹는다는 이미지와 많이 다른 것 아닌가? 아무튼 천천히 먹어봅니다. 몇 입 더 먹어보지만 안초비 맛은 전혀 없습니다. 웨이터를 불러서 물어봅니다. 여기 안초비 안들어갔지? 너무 당연하다는듯이그럼(그걸왜넣어?)라는 표정이라 더 못물어 봤습니다. 맛이 진합니다. 바질의 신선함보다는 잣을 엄청나게 많이 넣어서 고소함을 넘어 잣죽을 먹는 듯한 농밀함입니다. 그리고 페코리노의 양젖 향은 흐미하게만 느껴집니다. 거슬리는 수준은 결코 아닙니다. 가게를 옮겨봅니다. 물론 페스토 파스타를 주문합니다. 이번엔 뇨끼입니다. 뇨끼여서 그런지 미리 비벼지진 않았지만 역시 독일보다는 훨씬 농밀합니다. 첫번째 식당만큼은 아니지만역시 잣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이 집은 그래도 독일에서 먹던 소스와 많이 다르진 않습니다. 페코리노 치즈도 들어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올리브 오일의 풍미가 잘 살아있습니다. 잣보다 바질의 맛이 우선 합니다. 이미 배는 불렀지만 마지막으로 한군데 더 들러봅니다. 이것저것 미리 먹어둔 것이 많아 맛을 잘 느끼긴 힘들지만 역시 안초비와 페코리노는 모르겠습니다. 한끼로 페스토 파스타만 세 그릇을 먹고 도시를 걸어봅니다. 골목골목 마치 나폴리의 시가지처럼 낡고 조금은 더럽지만 나폴리만큼 경계하게 만드는 음습함이 아닌 정겨운 골목길입니다.

박찬일 셰프님이 주장한 안초비 들어가는 원조 페스토는 이제 더 이상 대세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제노바가 역사적 의미에 비해 여행으로는 참 안가지는 곳이긴 합니다만, 굳이 시간을 내서 와 볼만한 곳인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와인은 베르멘티노를 추천합니다.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등 뒤로 솟구친 높은 산맥의호쾌한 풍광만큼 허브 향이 살작 풍기는 청징한 와인입니다. 산과 바다의 기분을 다 느낄 수있는 아주 기분 좋은 와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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